알펜루트자산운용 홈페이지 캡처.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대우는 최근 알펜루트자산운용 펀드에 총수익스왑(TRS)으로 제공했던 자금에 대한 회수에 나섰다. TRS 계약은 증권사가 펀드 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형태다. 증권사들은 TRS 계약을 통해 1~2%의 수수료 수익을 거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TRS로 대출을 해준 증권사들은 해당 펀드의 프라임브로커로서 운용과 관련된 모든 활동에 간여한다. 계약상 담보율 조정, 자산 처분 등에 대한 권한이 증권사에게 있다는 뜻이다. 자산을 처분할 경우에도 일반 투자자보다 선순위로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 이 같은 형태로 실행된 금액은 2조 원가량이다.
알펜루트자산운용의 펀드는 대부분 비상장사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 가치를 키워 상장한 후 투자금과 수익을 회수하는 구조다. 상장 전에는 투자금을 현금화하기 쉽지 않다. 증권사가 중도에 대출을 회수하면 펀드가 보유한 우량 자산을 팔아야 한다.
예를 들어 투자금 100억 원에 차입금 100억 원 등 총 200억 원을 A 사와 B 사 주식에 각각 100억 원씩 투자했다고 치자. 중간에 돈을 빌려준 증권사가 100억 원을 돌려달라고 하면, A 사 주식만 팔아서는 부족할 수 있다. 아직 상장도 안 된 주식을 제값 주고 살 곳은 많지 않기 때문. 따라서 A 사 주식을 할인해 80억 원에 판다면, B 사 주식까지 일부 팔아야 100억 원을 채울 수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기대수익률 하락은 물론 당장 20%의 평가손실을 입게 된다.
알펜루트자산운용은 대출금 상환을 위해 투자자들의 환매를 중단했다. 투자자들로서는 뻔히 손실이 나는 것을 보고도 속수무책이 됐다. 대출을 회수한 증권사들은 해당 펀드의 주요 판매사이기도 하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 약 1조 원을 운용하는 알펜루트 펀드의 판매사는 한국투자증권 2971억 원, 신한금융투자 1726억 원, NH투자증권 1436억 원, 미래에셋대우 1003억 원, 메리츠종금증권 629억 원 등이다. 결국 자사에서 펀드에 가입한 고객들의 손해 위험도 감수한 대출 회수다.
서울 여의도의 증권가 건물 전경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박은숙 기자
현행법상 대출을 담당한 부서와 펀드를 판매한 부서 사이에 정보 교류를 막는 내부방화벽 ‘차이니스 월’이 작동해야 한다. 대출해 준 부서가 자금을 회수하는 결정과, 펀드를 판 부서가 투자자들에게 위험 고지를 하는 결정 모두 각자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대출 부서의 손익은 증권사와 직결되지만, 펀드 투자자의 손익은 증권사와는 무관하다. 증권사가 펀드에 빌려주는 돈은 주로 차입으로 마련한다. 원금을 모두 회수하지 못하면 증권사가 이를 ‘생돈’으로 메워야 한다. 반면 펀드의 운용성과는 투자자에만 귀결된다. 증권사는 펀드 판매 과정에서 수수료를 받으면 끝이다. 만약 투자자들에 위험 고지를 먼저 해 대규모 환매가 이뤄진다면 증권사 입장에서는 자칫 담보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
결국 증권사 입장에서는 투자자들의 환매보다 대출금을 회수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TRS로 대출을 해준 증권사들은 해당 펀드의 프라임브로커로서 펀드를 판매한 부서보다 내부 정보에 밝을 수밖에 없다. TRS가 실행된 펀드에서 투자자는 늘 프라임브로커보다 큰 잠재위험을 지는 셈이다.
다만 변수는 남아있다. 증권사들의 펀드에 대한 TRS 대출은 형식적으로는 펀드 가입 절차를 밟는다. 따라서 돈을 빌려준 증권사의 채권회수 순위가 일반 투자자에 우선하는지에 대해서는 법적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아직도 금융당국은 이와 관련된 명확한 해석을 내놓지 않은 상황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