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발원지인 중국 내륙도시 우한은 공포와 불안감이 가득하다. 텅 빈 우한 거리. 사진=현지 제공
2019년 12월 8일 바이러스 감염 환자가 처음 발생했지만 신종 코로나 소문이 본격적으로 돌기 시작한 것은 12월 30일 무렵이다. 해외 언론 등의 보도도 나왔다. 최초 환자 발생 후 22일이 지나서야 알려진 것으로,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우한위생건강위원회가 12월 30일 발표한 ‘불명 폐렴에 관한 구조 상황 긴급 보고’에 따르면 당시 신종 코로나 감염 사례는 27건이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최초 폐렴 소식 유포자 8명을 처벌하는 등 관련 내용이 확산되는 것을 막는 데 급급한 모습이었다. 2020년 1월 14일 우한시 경찰은 취재를 위해 찾은 기자들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고 보도를 통제했다. 1월 17일 우한시는 신규 발생 사례가 없고, 명확한 증거가 없다며 폐렴 소문을 부인했다. ‘통제가 가능하다’는 전문가들의 소견도 연이어 소개됐다.
상황은 중국 호흡기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중난샨 중국공정원 원사가 1월 18일 우한에 도착하면서 바뀌었다. 그는 1월 19일 환자를 직접 진찰한 결과를 20일 언론 등에 발표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람과 사람 간에 전염된다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중난샨 원사는 2003년 중국을 강타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규모를 밝히는 데 공을 세운 바 있다.
중난샨 원사 발표 후 3일 뒤인 1월 23일 새벽 2시 중국 당국은 우한시에 대한 봉쇄령을 선포했다. 당국이 발표한 공식 집계에 따르면 1월 29일 기준 사망자는 132명이다. 확진환자는 5997명, 의심환자는 9239명이다. 하지만 우한 최대 규모의 통지병원 한 간호사는 “지금 언론 등에 보도된 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라면서 “집계된 것보다 최대 10배 이상 정도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텅 빈 우한 거리. 사진=현지 제공
우한은 외부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군사, 교육, 화학기술이 특화된 도시다. 세계 500대 기업 중 265개 기업이 진출해 있을 정도로 무역도 활발하다. 교통 및 물류 운항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인구는 1100만 명가량인데 이 중 500만 명이 봉쇄령 전에 빠져나간 것으로 전해진다.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도시를 떠난 셈이다. 바이러스가 최초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화난수산물 시장은 야생동물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곳이다.
중국에선 우한시가 바이러스 초기 대응에 실패한 것을 두고 여러 뒷말이 나온다. 2019년 10월 18일부터 28일까지 세계군인체육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해 시진핑 주석은 물론 공산당 지도부로부터 칭찬을 받았던 것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그중 하나다. 우한시 당국이 불미스러운 일로 좋은 분위기를 망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의도적으로 숨겼다는 얘기다.
봉쇄령 선포 이후 우한 거리엔 인적이 사라졌다. 초·중·고교 학생들의 개학은 일단 2월 17일로 늦춰졌으나 지금 상황을 감안했을 때 3월 이후에야 등교가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다. 대부분의 회사 역시 2월 2일까지 휴무다. 한 30대 직장인은 “(봉쇄) 조치는 당연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 하고 있지만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우한도 우한이지만 황강 등 주변 도시로 우한 사람들이 많이 빠져나갔기 때문에 이에 대한 경계도 늦춰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물, 식량 등 기초적인 생필품 공급에는 크게 차질이 없는 상태다. 중국 국영기업인 중바이마트와 알리바바 창업주 마윈이 설립한 허마마트가 24시간 운영 중이다. 소규모 상점들은 일제히 문을 닫았다. 우한의 한 주민은 “마트에 가더라도 서로 말을 하는 일은 없다. 판매원과도 대화하지 않는다. 멀찌감치 떨어져 장을 본다. 작은 기침소리에도 질겁하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지금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다”고 토로했다.
마스크를 주워 재활용 하는 것으로 의심 받는 사진. 사진=웨이보 캡처
우한 주민들은 집에 머물면서 언론 등을 통해 실시간 뉴스를 접하고 있다. 다만, 중국 언론보다는 홍콩 전문가들 말을 신뢰하는 기류가 강하다. 정부 통제를 받는 중국 언론이 ‘팩트’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있다는 불신 때문이다. 홍콩대학교에서 전염성 질병 국가중점실험실 주임을 맡고 있는 관이 교수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스보다 전파력이 강하다. 사스보다 10배 이상의 인구가 감염될 가능성이 있다. 올해 4~5월에 절정일 것으로 보이고 7월 정도에 수그러들 것으로 보인다”라고 점쳤다.
인터넷상에선 집에 갇혀 있는 우한 주민들이 시간을 보내는 모습들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어항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 동영상을 틀어놓고 대화를 하는 사람, 아파트 베란다를 통해 이웃과 대화하는 사람들의 영상 등이다. 음력설에 해당하는 춘절 당일엔 SNS를 통해 “저녁 8시 정각 다 함께 국가를 부르자”라는 글이 빠르게 퍼졌다. 실제 몇몇 아파트에선 국가가 울려 퍼졌다.
이를 두고 중국 국민들의 응원이 쇄도하고 있다. 동정 여론도 높다. 우한 통지병원 의료진들의 살신성인 자세가 감동을 주기도 했다. 한 의사가 중국 SNS 웨이보에 올린 감염극복기는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했다. 하지만 우한 주민들을 따돌리는 현상도 나타나 사회적 문제가 될 조짐이다. 비아냥거림과 조롱이 담긴 ‘우한 사람’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우한에서 온 사람들과 기존의 현지인들 사이의 갈등도 점점 커지는 양상이다. 우한 사람들이 물리적 폭행을 당하는 사례도 늘어났다.
중국 우한=배경화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