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FA 제도 첫 도입 이후 1호 계약자는 한화 이글스와 3년 총액 7억 원에 사인한 송진우였다. 사진=연합뉴스
제도 도입 초창기에는 선수들에게 새로운 ‘이적’과 ‘대박’의 길이 열렸다는 것만으로도 화제였다. 투수 송진우가 1999년 11월 원 소속팀 한화 이글스와 3년 총액 7억 원에 사인하면서 역대 1호 FA 계약 선수로 기록됐는데, 당시 한화와 송진우 사이의 협상 과정과 내용이 매일 언론을 통해 생중계됐을 정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원 소속구단 해태 타이거즈와 협상이 결렬된 언더핸드 투수 이강철이 3년 총액 8억 원을 받기로 하고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면서 다시 한 번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이강철은 역대 1호 FA 이적 선수로 기록됐다.
도입 첫해인 1999년 FA를 신청하고 계약한 선수는 총 5명. 그들의 몸값 총액은 24억 5000만 원이었다. 1년 뒤 홈런 타자 김기태가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삼성으로 옮기면서 4년 18억 원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이 금액에 ‘천문학적 몸값’이라는 표현을 썼다. 선수들의 몸값은 200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치솟기 시작했다.
KBO와 구단들은 결국 2009년부터 FA 선수들의 다년 계약과 계약금 지급을 금지하기로 결의했다. 4년 계약을 한 선수가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을 때 손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었다. 여기에 ‘FA가 타 구단으로 이적할 때 전년도 연봉의 50%를 초과해 받을 수 없다’는 규정도 만들었다. 그 시기에 FA 자격을 얻은 선수들은 당연히 거세게 반발했다.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이면 계약’ 타협인가 꼼수인가
그 과정에서 구단과 선수가 찾아낸 타협안이 ‘이면 계약’이라는 꼼수다. 실제로는 계약금이 포함된 4년짜리 계약을 해놓고 공식적으로는 연봉만 받는 단년 계약으로 발표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다른 구단의 이면 계약을 비난하던 팀들도 정작 자신들이 급하면 FA 선수에게 서로 다른 내용이 적힌 두 장의 계약서를 내밀었다. 다년 계약 금지 조항이 FA 선수들의 몸값을 낮추기는커녕 최악의 결과로 이어진 셈이다.
이 규정은 2년 만에 사라졌다. 2011년에 FA가 된 선수들부터 다시 다년 계약과 계약금 지급이 허용됐다. 그러나 이미 구단과 선수들은 이면 계약에 대한 죄책감을 없앤 뒤였다. 이후에도 꾸준히 발표 금액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의 이면 계약서에 사인한 선수들이 속속 나왔다. ‘공식적으로’ FA 100억 시대를 연 선수는 삼성에서 KIA 타이거즈로 간 외야수 최형우로 기록돼 있지만, 실은 그 벽이 이미 수년 전에 깨졌다는 게 야구계 정설.
2016년엔 꾸준히 유지돼 오던 원 소속 구단 우선 협상 기간도 폐지됐다. 이전까지는 FA 시장이 열린 첫날부터 일주일간 원 소속 팀과 계약을 우선 논의하고, 이때 계약이 성사되지 않으면 다시 일주일 동안 원 소속 팀을 제외한 다른 팀들과 협상할 수 있었다. 이 기간이 모두 지난 뒤에야 비로소 모든 팀과 협상할 수 있는 진짜 FA의 문이 열렸다.
하지만 우선협상기한 역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던 상황이다. 탬퍼링(사전 접촉)은 야구 규약상 명백하게 금지돼 있지만, 매년 시즌이 끝나갈 때쯤엔 “어느 선수가 어느 구단과 이미 합의까지 마쳤다”는 소문이 돌곤 했다. 일부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지만, 현실이 된 얘기도 꽤 많았다.
#선수들 숙원 풀 수 있을까
구단들도 탬퍼링에 대한 경각심이 사라진 지 오래라 구체적인 계약 조건은 제시하지 않더라도, 시즌 중반 대어급 FA들에게 슬쩍 다가가 “지금 소속팀이 얼마를 부르든 무조건 그것보다는 많이 주겠다”는 얘기를 툭툭 던지는 구단 관계자들이 많았다.
유명무실한 제도는 폐지되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일부 구단은 “우선협상기한이 그나마 탬퍼링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라며 반대했지만, 급변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또 2018시즌이 끝난 직후에는 선수들의 몸값 인플레이션을 막으려는 구단들이 ‘FA 4년 총액 80억 원 상한제’ 도입을 추진했다가 선수협의 강력한 반대와 부정적인 여론에 부딪혀 무산되는 일도 있었다.
FA 등급제 도입은 이후 FA 제도에 찾아온 가장 큰 변화이자 선수들의 숙원을 풀 수 있는 움직임이다. 특급 FA들의 몸값이 높아질수록 준척급 FA나 베테랑 FA들의 입지가 축소되는 양극화 현상이 점점 심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A급 FA가 아닌 선수들은 이전보다 자유롭게 다른 팀에서 기회를 노릴 수 있는 길이 열렸고, 구단들은 그리 비싸지 않은 몸값의 FA 선수들을 보상선수 출혈 부담 없이 영입할 수 있게 됐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