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의료용 대마가 합법화된 지 1년 가까이 지났지만 현재까지도 치료 목적으로 필요한 환자에게 충분히 처방되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마약류관리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공표된 2019년 3월 12일부터 2019년 12월 31일까지 의료용 대마 처방 건수는 608건에 그쳤다. 608건 가운데 606건(973병)이 에피디올렉스고 나머지 2건(5팩)은 사티백스였다. 마리놀과 시사매트는 처방 건수가 0건이었다.
2019년 의료용 대마 처방 건수는 총 608건에 그쳤다. 의사들이 대마에 대해 잘 몰라 처방하길 꺼려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사진은 의료용대마합법화운동본부 회원들이 2018년 4월 국회 앞에서 마약류관리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고 있는 모습. 사진=고성준 기자
국내에서 합법적 의료용 대마는 위의 4종류뿐이다. 에피디올렉스는 뇌전증(간질) 증상 완화에, 사티백스는 다발성경화증 치료에 쓰인다. 마리놀과 시사매트는 항암 환자의 구역질과 구토를 멈추는 효능이 있는 항진토제다. 국내 전문의라면 누구든 의료용 대마를 처방할 수 있다.
의료용 대마가 처방되지 않고 있는 이유로 국내 의사들이 지식과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처방을 꺼리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쉽게 말해 의료용 대마에 대해 잘 몰라서 처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근원적인 원인은 의료용 대마 수입·판매 독점권을 가진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희귀약품센터)의 홍보·영업 부족과 대한의학회 아래 각 학회들의 교육·연구 부족에 있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보통 신약이 나오면 첫 번째 단계로 민간 제약회사가 대한의학회 아래에 있는 각 학회에 홍보하고 영업한다. 각 학회는 신약 효능을 임상시험 하는 등 연구를 거듭한 뒤 세미나를 여는 등 소속 학회 전문의들을 교육한다. 효능이나 부작용 등을 이해한 의사들은 환자의 요구가 있거나 상황에 따라 신약을 처방한다. 안정성이 입증되는 사례가 쌓일수록 신약은 학계에서 인정받고 대중화된다.
강성석 의료용대마합법화운동본부 대표는 의료용 대마의 경우 위 과정에서 첫 단계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강 대표는 “의료용 대마를 수입·판매하는 희귀약품센터가 학회를 상대로 홍보와 영업을 해야 하지만 손 놓고 있다. ‘사회적 합의’라는 이유를 내세우며 희귀약품센터에 독점권을 준 식약처도 책임이 있다. 민간 제약회사에 지금이라도 권한을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희귀약품센터 관계자는 “학회에 의사들을 대상으로 의료용 대마를 교육해 달라는 공문은 보내지 않는다. 영업이나 광고는 우리가 할 일은 아니다. 그럴 여건도 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의료용 대마에 대한 각 학회 반응도 뜨뜻미지근하다. 현재까지 관련 세미나를 열어 소속 의사들을 교육한 학회는 한국신경정신의학회뿐이다. 한국신경정신의학회 소관이라고 볼 수 있는 에피디올렉스가 의료용 대마 처방 건수 가운데 99%를 차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마 시앗 자료 사진. 의료용 대마 처방 사례가 쌓여야 의사도 환자에게 마음 놓고 처방해줄 수 있지만 대부분 의사가 처방을 꺼려서 처방 사례가 쌓이지 않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인 셈이다. 의료용 대마가 필요한 환자들은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다. 사진=우태윤 기자
뇌전증을 앓고 있는 아이의 부모이자 현직 의사인 황주연 씨는 “국내에선 의사가 되기까지 대마에 대해 배우는 커리큘럼이 없다고 보면 된다. 산부인과 담당인 나마저도 의료용 대마에 대해 잘 몰랐다”며 “의사들이 대마를 처방하는 대신 기존의 약을 쓰는 게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큰 종합병원에서 신약 적용 사례가 쌓여야 각 지점 병원에서 쓰는데, 대중화되기까진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의료용 대마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상황에서 급하게 의료용 대마가 합법화됐다는 목소리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국신경정신의학회 소속 의사는 “대마의 중독증에 대한 연구나 처방과 복용 지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가이드라인 부재한 상황에서 합법화가 된 경향이 있다”며 “나마저도 대마의 오남용에 대한 걱정이 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별다른 대체재가 없는 뇌전증 환자를 비롯해 기존 아편 성분이 든 진통제를 거부하는 암 환자나 다발성경화증 환자 등은 의료용 대마를 처방해달라는 요구를 계속해 오고 있다. 국내 합법 의료용 대마 4종류는 미국, 영국, 독일, 호주, 프랑스 등에서 보건 당국의 허가를 받아 쓰이고 있어 안정성이 보장됐다는 설명이다. 현재 국내에선 항암치료로 인한 구토 완화제로 오피오이드가 주로 쓰인다. 중독성 강한 아편 성분이 들어 있어 한 번 복용하면 끊기 힘들고 내성이 생겨 복용량을 꾸준히 늘려야 한다.
식약처는 마약류관리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공표하던 2019년 3월 보도자료를 내고 암 환자 요구에 부합하기 위해 각 학회로 협의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대한의학회나 그 아래 각 학회와 협의할 주체는 식약처가 아닌 것으로 안다”며 “누구나 의사 처방전만 받으면 의료용 대마를 살 수 있는데, 아마 환자들이 의료용 대마를 잘 몰라서 신청하지 않기 때문에 처방되지 않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식약처의 다른 관계자는 “현행법상 대마가 수입품목 허가 약품이 아니다. 법을 한번에 바꿀 수 없기 때문에 2019년 식약처가 제한적으로 희귀약품센터에 권한을 준 것이다. 민간에 권한을 주면 불법 유통될 위험도 있다”며 “중장기적으론 대마를 수입품목 허가 약품으로 지정하는 등의 여러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