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관 의원이 1월 30일 국회 정론관에서 21대 총선 경남 양산을 출마선언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3김이 떴다.”
최근 영남권에서 회자되는 말로, 김두관 김영춘 김부겸 의원을 지칭한다. 셋 다 차기 후보군으로 분류된다. 김포를 지역구로 뒀던 김두관 의원이 경남 양산을 출마를 선언하면서 ‘3김’이 완성됐다. ‘리틀 노무현’으로 불렸던 김 의원은 1월 30일 “(총선에서) 개혁과 민생의 승리냐, 꼼수와 권력욕의 승리냐는 PK 선거에 달려 있고 그 분수령은 낙동강 전투”라면서 출사표를 던졌다.
PK(부산·경남)은 총선 최대 격전지로 꼽힌다. 원래는 보수 텃밭이었지만 20대 총선부터 판세가 바뀌기 시작했다. 민주당은 27석 중 9석을 얻으며 이변을 일으켰다. 2017년 대선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부산과 울산에서 홍준표 후보를 앞섰다. 경남에서 홍준표 후보에게 지긴 했지만 근소한 차였다. 2018년 지방선거에선 민주당이 부산 울산 경남 광역단체장을 석권했다.
하지만 지금 PK엔 이상 기류가 역력하게 감지된다. 한 지역 언론인은 “한번 바꿔보자 해서 민주당을 밀어줬는데, 도대체 해준 게 뭐가 있느냐는 불만이 팽배한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조국 전 장관을 ‘PK 대표주자’로 키우려던 전략이 오히려 지역 정서에 기름을 끼얹었다는 분석도 뒤를 잇는다. 위기론에 비상이 걸린 여권이 PK에 모든 화력을 동원하기로 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읽힌다.
경남에 김두관 의원이 있다면 부산은 김영춘 의원이 이끈다. ‘김두관 김영춘’ 쌍두마차가 낙동강 벨트 선봉장에 서는 셈이다. 문재인 정부 첫 해양수산부 장관 출신인 김 의원은 정치권에서 다소 저평가됐다는 반응이 많다. 하지만 부산 지역 총선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경우 정치적 체급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 한 의원은 김 의원에 대해 “주식으로 따지면 비상장 우량주라고 할 수 있다. 상장만 되면 대장주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TK(대구·경북)은 험지 중 험지다. 김부겸 의원은 20대 총선에서 김문수 전 경기지사를 큰 표 차이로 따돌리고 입성했다. 그것도 대구의 강남으로 불리며 보수 정치적 상징지인 수성갑에서다. 김부겸 의원이 잠룡군으로 분류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이곳에서 재선에 성공할 경우 김 의원 대권 행보엔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점쳐진다. 흥미로운 대목은 김두관(남해) 김부겸(상주) 김영춘(부산) 의원 모두 영남권 출신이란 것이다. 차기 주자 선호도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낙연 전 총리가 ‘호남 필패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과 맞물리면서 ‘3김’의 총선 역할론에 관심이 모아진다.
영남권과 함께 또 다른 승부처인 수도권은 종로에 출마하는 이낙연 전 총리가 전면에 설 예정이다. 종로 승리는 기본이고, 수도권 전체 성적에 따라 이 전 총리 앞날도 좌우될 것이란 분석이다. ‘이낙연 대세론’ 형성 여부도 마찬가지다. 이 전 총리는 ‘총선 승리→당권 도전→대권 출사표’ 일정을 짜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관건은 이 전 총리 아킬레스건으로 꼽히는 조직력인데, 총선에서 파괴력이 입증된다면 상당 부분 희석될 수 있다는 게 이 전 총리 측 기대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1월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청와대의 울산시장 하명수사 및 선거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해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인천 계양구에서 내리 4선을 한 송영길 의원도 차출 대상이다. 인천 지역 험지에 출마시켜 이 전 총리와 함께 수도권 벨트를 형성하겠다는 당 전략의 일환이다. 송 의원 출마설이 거론되는 지역은 인천 연수구을이다. 이곳은 선거구가 확정된 15대 이후 단 한번도 민주당 소속이 당선된 적이 없다. 황우여 전 자유한국당 의원이 16대부터 19대까지 4선을 한 곳이기도 하다. 20대엔 박근혜 정부 청와대 대변인 출신 민경욱 의원이 승리했다.
민경욱 의원은 송 의원 차출설이 나오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너무 싱거운 싸움이 될 뻔했는데 인천 연수을 지역구 선거 구도가 흥미롭게 변해가는군”이라며 “4선쯤이 와서 붙어야지 좀 재미가 있지”라고 했다. 송 의원을 염두에 둔 글로 읽혔다. 둘 외에도 연수구을엔 정의당 대표 출신 이정미 의원도 출마 선언을 한 상태다. 송 의원 출마가 이뤄질 경우 전국에서 가장 뜨거운 대결이 펼쳐질 전망이다.
PK와 수도권에 비해 호남 지역은 긍정적인 전망이 주를 이룬다.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 돌풍으로 불과 3석을 얻는 데 그쳤던 민주당은 이번엔 전 지역 석권을 노리는 모습이다. 민주당 내부에선 차기 잠룡군 중 한 명인 임종석 전 실장 출마 여부가 ‘뜨거운 감자’다. 지난해 종로 출마 불발과 함께 정계 은퇴 선언을 했던 임 전 실장은 당 지도부의 계속된 러브콜에 호남 출마를 고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에선 울산시장 지방선거 관여 혐의를 받고 있는 임 전 실장이 1월 30일 공개적으로 검찰에 출두한 것을 놓고 사실상 정계 복귀 수순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검찰과의 대립각으로 복귀할 명분을 챙기고, 동시에 지지층 표심까지 잡으려 한다는 얘기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임 전 실장 결단만 남았다”면서 “이해찬 대표 등이 수도권 또는 호남 쪽 출마를 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원조 친노’ 이광재 전 강원지사도 출마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이해찬 대표는 이 전 지사를 만나 공동선대위원장 및 강원 출마 제안을 했다. 선대위원장직은 수락한 이 전 지사는 출마에 대해선 고민해보겠다고 했지만 주변에선 사실상 결심을 굳혔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강원도 총선을 이끌 ‘얼굴’이 필요했던 민주당 측과 정계 복귀를 통해 큰 꿈을 그리고 있는 이 전 지사 이해득실이 맞아떨어진 결과다.
이처럼 민주당은 총선 주요 거점에 차기 주자들을 전면 배치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이른바 잠룡들의 ‘거점 차출론’이다. 이는 비단 총선뿐 아니라 대선까지를 염두에 뒀다는 게 민주당 인사들의 설명이다. 총선을 계기로 최대한 많은 후보들을 띄워 ‘포스트 문재인’을 위한 무한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엔 오랫동안 지지율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이낙연 전 총리에 대한 불안감도 밑바탕에 깔려 있다.
앞서의 민주당 중진 의원은 “솔직히 지금까진 무주공산인 상황이다. 이 전 총리가 무너지면 대안이 없다. 이 전 총리도 이제 스타트 라인에 섰을 뿐이다. 총선에서 누가 어떤 활약을 하느냐에 따라 그 이후가 결정될 것으로 본다”면서 “총선 전략 역시 이런 측면까지 고려해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거론된 잠룡들로서도 총선은 본인의 이름값과 진가를 알릴 절호의 기회다. 한 친문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당 입장에서는 그들에게 빚을 진 셈이나 다름없다. 김두관 의원은 기존 지역구를 버리는 것까지 감수했다. 다른 분들 역시 당의 부름에 기꺼이 응했다. 모두 살아 돌아와 대권을 놓고 경쟁을 벌이면 흥행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들에게도 결코 손해는 아닐 것으로 판단된다. 총선을 통해 전국구 정치인으로 체급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덤’으로 각 지역 ‘맹주’ 자격을 얻는 것도 향후 대권 도전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