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을 앞두고 있는 정치권도 신종 코로나 후폭풍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역대 사례를 봤을 때 정부 대응에 따라 여야 희비가 엇갈렸던 까닭에서다.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질환증후군)가 대표적이다.
1월 3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 종합 점검회의에 입장하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2003년 4월 중국에선 때 아닌 ‘김치 열풍’이 불었다. 베이징을 비롯한 대도시 대형마트에선 김치가 불티나게 팔렸다. “김치가 사스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루머가 나돌기 시작하면서다. 이뿐 아니었다. 중국 현지엔 “한국인들에겐 사스를 일으키는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 면역 항체가 있다”는 말도 파다했다. 근거 없는 소문들이 중국인들에게 사실처럼 받아들여진 이유는 한국이 ‘사스 안전지대’로 통했던 것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 이면엔 노무현 정부의 발 빠른 방역 선제 조치가 있었다. 2003년 4월 23일 보건복지부는 국립보건원을 주축으로 한 사스방역대책본부 가동을 시작했다. 사스방역대책본부가 인력 부족으로 인한 격무로 신음하자 정부는 군 의료진 70여 명을 추가 투입했다. 인천국제공항 입국장내 한 대밖에 없었던 ‘열 감지기’도 10대로 늘렸다. 정부는 추가예비비를 긴급 편성해 ‘사스 국내 유입 차단’에 사활을 걸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WHO(국제보건기구)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발생한 사스 확진자는 총 8096명이었다. 사망자는 774명으로 치사율이 9.6%에 달했다. 그 가운데 한국의 방역 성적표는 수준급이었다. 한국 국적 사스 확진자는 3명뿐이었고, 사망자는 없었다. WHO는 한국을 ‘사스 예방 모범국가’라고 평가했다. 한국 정부는 사후 조치에 있어서도 심혈을 기울였다.
2003년 7월 31일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열린 ‘2003년 사스 방역 평가보고회’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 내외. 사진=연합뉴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스 방역 평가 보고를 받은 뒤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와 유사한 조직을 만드는 방안을 공식화했다. 그리고 2004년 1월 19일 정부 산하 질병관리본부가 공식 출범했다. 모범적인 방역뿐 아니라, 추후 유사 상황 발생 시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까지 구축했던 것이다. 위기는 기회였다. 임기 초반 발 빠른 사스 사태 대처는 노무현 정부의 공적 중 하나로 남았다.
2015년 유행한 메르스는 박근혜 정부에 시련을 줬다. 사스가 뚫지 못했던 한국의 방역망을 메르스는 뚫었다. 박근혜 정부는 야당과 국민으로부터 “메르스 방역 초기 대응이 미흡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2015년 5월 20일 국내에서 최초로 메르스 확진자가 2명이었지만 정부는 9일 뒤인 5월 29일에서야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메르스대책본부를 구성했다.
정부가 컨트롤타워 구성 과정에서 늑장을 부리는 사이 확진자 수는 급증했다. 6월 1일엔 메르스 확진자 중 최초로 사망자가 발생했다. 2015년 6월 19일엔 국내 메르스 확진자가 166명으로 늘어났다. 사망자는 24명이었다. 같은 날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지지도는 29%로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메르스 첫 감염자가 나오기 전인 2015년 5월 4주차 박 전 대통령 국정지지도는 40%였다(자세한 사항은 한국갤럽 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메르스 사태 전후로 지지율이 11%포인트(p)가량 추락한 셈이다. 메르스 사태 당시 폭락한 박 전 대통령 국정지지도는 탄핵 정국까지 반등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문제는 중앙메르스대책본부가 구성된 뒤에도 박근혜 정부 방역 컨트롤타워가 혼선을 빚었다는 점에 있었다. 당시 정부는 ‘민관합동대응 TF’, ‘메르스 긴급대책반’, ‘범정부 메르스대책본부’ 등 여러 기구를 창설했다. 질보다 양으로 승부한 방역의 결과는 낙제점에 가까웠다. 2017년 9월 13일 보건복지부가 마지막으로 발표한 메르스 보도자료에 따르면 국내 메르스 확진자는 총 186명, 사망자는 39명이었다. 치사율은 무려 21%였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제1야당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사스와 메르스엔 공통점이 있다. 모두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때 나타나는 질병이란 점이다. 최근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신종 코로나’ 역시 마찬가지다. 이를 일으키는 원인균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스 사태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냈다. 메르스 사태 때는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로 박근혜 정부 비판 선봉에 섰다.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할 때마다 정치권 핵심부에 있었단 셈이다.
신종 코로나가 등장하면서 문 대통령은 갈림길에 섰다. 정부의 방역 성과에 따라 문 대통령은 ‘노무현의 길’을 갈 수도, ‘박근혜의 길’을 갈 수도 있다. 상황은 녹록지 않다. 1월 31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1월 5주차 대통령 국정지지도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 대통령 국정지지도는 41%로 2주 전보다 4%p 떨어졌다. 부정평가는 2주 전보다 4%p 오른 50%를 기록했다. 부정평가 이유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처 미흡(5%)’ 항목이 새로 추가됐다(자세한 사항은 한국갤럽 및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은 신종 코로나 국내 확진자 발생 이후 정부와 여당을 향한 날선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1월 30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야당 대표 시절 문재인 대통령이 질병 대응과 관련해 내놨던 날 선 정권 비판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면서 “문 대통령은 ‘청와대가 컨트롤타워가 돼야 한다, 대통령 무한책임이다’라고 매섭게 강조했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월 31일 김익환 새로운보수당 대변인은 “‘과도한 불안감을 갖지 말라’던 대통령의 한가한 발언은 하루 사이에 ‘과할 정도로 대처하라’고 바뀌었다”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는 정부의 발언 수위는 확진자 증가와 더불어 국민 불안감을 증폭시켰다”고 비판했다. 이 밖에 야당은 ‘청와대의 늑장대응 논란’ ‘대중국 국산 마스크 지원 필요성 논란’ ‘우한 교민 진천·아산 등 특정 지역 격리’, ‘우한 교민 이송 전세기 이용자 중 발열 증상자 18명 발견’ 등을 놓고 연일 십자포화를 쏟아내고 있다.
1월 3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 참석하는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박은숙 기자
더불어민주당은 사태를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1월 마지막주 예정했던 선거대책위원회 발족까지 연기했다. 1월 31일 국회에서 열린 당 회의에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국민 불안이 경제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만큼, 국가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야 할 순간”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더불어민주당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대책 특별위원회’ 첫 회의를 열었다.
정부가 1월 30일 전세기를 통해 귀국한 우한 교민들의 격리 장소로 충남 아산과 충북 진천을 선정하면서 민주당의 ‘충청 민심 공략’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강훈식 민주당 의원(충남 아산을)은 1월 30일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한에서 귀국하는 우리 국민의 임시생활 시설로 아산이 확정되는 과정에서 정부의 대처가 잘못 됐다”고 인정했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 지지율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1월 31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2주 전 대비 5%p 하락한 34%로 집계됐다. 무당층은 2주전 대비 6%p 증가한 33%였고,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21%였다(자세한 사항은 한국갤럽 및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정치권은 총선을 앞두고 터진 대형 변수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두고 계산이 분주하다.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연구위원은 “신종 코로나 확산이 감당할 수 없는 위기 상태로 이어져 공포감이 확산되면, 정부와 여당이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면서도 “지금 정부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긴 했지만 중대한 실책을 하진 않았다고 본다. 신종 코로나가 다가올 총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지 여부는 아직 좀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채 연구위원은 “여당은 문제를 수습해야 하는 입장이다. 야당은 문제를 지적하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이 지나치게 지적을 하고 삐딱하게 나간다면, 국민들이 ‘이 와중에 또 싸우냐’며 실망할 수 있다. 수위 조절에 실패하면, 야당에게도 역풍이 불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