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시즌 125경기에 출전해 타율 0.344 1홈런 45타점 18도루를 기록하며 생애 첫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던 박민우. 2019시즌 140경기에 출전, 193안타 68타점 13도루 91득점 타율 0.336을 기록하며 두 번째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던 이정후. 두 사람의 남다른 ‘브로맨스’를 인터뷰를 통해 확인해본다.
남다른 ‘브로맨스’를 자랑하는 박민우(왼쪽)와 이정후는 2017년 국가대표팀에서 함께 활약하며 친분을 쌓아 나갔다. 사진=이영미 기자
#첫 만남의 추억
같은 학교 출신이라고 해도 특별한 연결고리가 없었던 박민우와 이정후. 두 사람은 2017년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대회에서 함께 생활하며 그들만의 ‘휘부심(휘문고 부심)’을 자랑했다고 말한다.
이정후(이): 제가 고등학교 때 민우 형이 학교에 놀러와 처음 만난 적이 있어요. 당시 제가 내야수를 맡고 있어 친구들과 함께 민우 형이 ‘실책 내기’를 제안하시더라고요. 실책 많이 하는 사람이 아이스크림 사주기로 한 내기였는데 민우 형이 그때 졌거든요. 다음에 학교 오면 아이스크림 사주겠다고 하고선 그 후로는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웃음).
박민우(박): 솔직히 기억이 안 나요. 제가 기억나는 건 정후가 휘문중학교에 다닐 때 처음 봤는데 이종범 선배님 아들이라고 해서 호기심을 갖고 찾아본 것 정도? (이정후를 바라보며) 진짜 내가 그런 내기를 했다고? 지금이라도 아이스크림 사줘야겠네(웃음).
이: 그러다 2017년 대표팀에서 다시 만난 거예요. 물론 정규시즌 경기에서도 인사를 주고받았지만 대표팀은 또 다른 느낌을 주더라고요. 민우 형이 휘문 후배라고 저를 살갑게 챙겨주셨거든요.
박: 정후는 모든 선배들이 챙겨주고 싶어 하는 후배예요. 야구도 잘하고, 선배들한테 인사도 잘하고, 정말 못하는 게 없는 ‘바르다 이 선생’입니다.
#트라우마와 싸움
운동선수한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실력 못지않은 것으로 강한 멘탈이 손꼽힌다. 멘탈 관련해서는 두 사람도 할 말이 많다. 한때 트라우마와 싸우면서 고통스런 시간들을 보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 송구와 관련된 것이었다.
이: 고3 때 유격수를 맡았던 터라 프로 입단 후에도 자연스레 유격수를 보게 됐어요. 그런데 저는 유격수 자리에 자신이 없었어요. 고교 시절 수비 실책이 정말 많았거든요.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까운 1루로 송구하는 것조차 힘들 정도였습니다. 마음의 병을 얻었던 것이죠. 외야수를 맡고 싶었지만 신인이 포지션을 요구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요. 프로 1년차에 미국 캠프 마치고 일본에서 2차 캠프를 가졌는데 캠프 막판에 삼성 라이온즈와 연습경기 중 (임)병욱이 형이 근육통으로 게임에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어요. 홍원기 코치님이 제게 외야로 나가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날 중견수로 출전해 안타를 기록했습니다. 수비에서의 실수도 없었고요. 그 후로 계속 외야수를 맡게 됐어요.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나게 외야에서 뛰어다녔습니다. 송구도 마음껏 할 수 있었고요. 어느 순간부터 야구가 재미있어졌어요. 어떠한 두려움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당시 홍원기 코치는 이정후에게 “너의 장점은 타격이니까 수비 부담을 내려놓고 타격에 집중하라”라고 조언해줬다. 단점을 수정 보완하기보다 장점을 부각시키는 접근법이 이정후에게 정신적인 편안함을 심어줬다고 한다.
박: 2016년 개막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개막전부터 11경기에서 실책을 3개나 범했거든요. 모두 송구 실책이었고, 다소 납득이 되지 않는 어이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개막전 이틀 연속 실시간 검색어에 제 이름이 올라가 있었어요. 얼마나 수치스러웠겠습니까. 2군으로 내려간 2주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야구장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어요. 숙소에서 벽만 보고 있었던 것 같아요. 야구장, 야구공, 글러브, 방망이 등 야구와 관련된 모든 걸 외면한 채 생활했어요. 그렇게 2주를 보내고 나니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야구가 하고 싶어지더라고요. 송구할 때의 자세를 바꿔보고, 팔 각도를 낮추는 등 연습을 거듭했습니다. 그때 저를 도와주신 분들이 정말 많았어요. 야구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코치님들, 선배님들, 구단 관계자분들이 다양한 도움을 주셨습니다.
이: 사실 내야수가 송구 트라우마를 이겨내기란 무척 어려운 일로 알고 있어요. 저는 외야로 포지션 변경해서 마음껏 던지고 있었지만 민우 형은 그 자리에서 버텨낸 거잖아요. 그게 더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박: 저도 제 자신이 자랑스러워요(웃음). 일본, 미국 통틀어서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야구 선수가 극히 적거든요. 그 과정들을 통해 제가 좀 더 야구선수답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박민우와 이정후는 비시즌 기간 학생 야구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야구 캠프, 동남아 아이들을 위한 기부 등 다양한 행사도 함께하고 있다. 사진=이영미 기자
#영(Young) & 리치(Rich)
이정후는 지난 연말 구단과 연봉 협상에서 2019시즌 연봉 2억 3000만 원에서 1억 6000만 원(69.9%) 인상된 3억 9000만 원에 2020시즌 연봉 계약을 마쳤다. 이정후의 올 시즌 연봉은 역대 KBO리그 4년차 최고 연봉으로 종전 기록이던 류현진(2009시즌)의 4년차 연봉 2억 4000만 원을 넘어섰다.
이: 아직까지는 그 돈의 무게감이 와 닿지 않아요. 부모님이 수입을 관리해주시고 저는 용돈 받아 쓰는 처지라 현재로서는 제 용돈을 인상시키는 게 더 급선무입니다. (한 달 용돈이 얼마나 되느냐고 묻자) 70만 원이에요. 카드 쓰는 건 따로고요.
박: 제 용돈 액수는 밝히지 않을게요. 저도 정후처럼 어머니한테 받아쓰는데 용돈이라고 하기에는 액수가 많은 편이에요. 지금까지는 부모님이 제 수입을 관리해주셨지만 앞으로는 제가 직접 맡아서 해보고 싶어요. (이유를 묻자) 제가 어렸을 때부터 돈 모으는 걸 좋아했어요. 지금도 어머니가 주시는 용돈의 절반을 제가 따로 모아요. 적은 나이가 아니니까 부모님도 저를 믿고 맡기실 것 같아요. 돈 관리하면서 경제 개념을 정립해보고 싶습니다.
비슷한 또래 일반인보다 큰돈을 벌고 있는 그들에게 그동안 소비한 내역 중 가장 비싸게 구매한 물건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먼저 박민우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박: 원래 제 성격은 제 자신한테 돈 쓰는 걸 싫어해요. 지금까지 쭉 그래왔어요. 그러다 이번에 제대로 투자했습니다. 그동안 눈으로 봐왔던 차를 구입했거든요. 문제는 우리 집이 야구장과 1분 거리라는 사실입니다(폭소).
이: 저도 처음으로 제가 타고 싶은 차를 구입했습니다. 아버지가 반대하실 줄 알았는데 허락하시더라고요. 선수는 몸이 재산이니까 능력 있으면 좋은 차 타고 다니라는 게 아버지의 지론이었어요. 이번에 순전히 제가 번 돈으로 구입했어요. 민우 형과 모델만 다를 뿐 같은 브랜드예요. 제대로 된 ‘드림카’입니다.
#상대한테 훔쳐오고 싶은 장점 한 가지
친한 선후배 사이지만 때로는 그라운드에서 상대팀 선수로 만나는 두 사람이라 가끔은 서로 상대방의 장점에 대한 부러움이 존재하지 않을까. 만약이라는 전제하에 상대한테서 뺏어올 수 있는 장점 하나를 꼽는다면 이들은 어떤 내용을 이야기할지 궁금했다.
박: 우리 팀 선배님들이 정후를 볼 때마다 농담처럼 제게 이렇게 말씀하세요. ‘야, 민우야! 가서 정후 방망이 좀 뺏어 와라’라고. 정후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멘탈이 정말 강해요. 기술은 뺏기 어렵지만 정후의 멘탈과 방망이는 꼭 가져오고 싶습니다(웃음).
이: 제가 민우 형을 닮고 싶은 부분은 모든 공을 배트 중심에 맞히는 능력입니다. 투수 유형을 가리지 않고 중심에 맞히는 기술이 대단해요. 저는 코스 안타도 많고 운 좋게 안타로 연결되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렇게 보면 민우 형과 저의 장점을 합치면 최고가 되겠네요(웃음).
박: 정후야, 나보다는 너랑 (박)병호 형이 합쳐져야 어벤져스급이지(웃음).
서로 장점을 가져오고 싶어 하는 선후배. 2020시즌 좋은 성적을 올리고 서로 비슷한 드레스코드로 골든글러브 시상식장에 참석하는 걸 개인적인 목표로 세운 박민우와 이정후는 2020 도쿄올림픽에서도 한국 대표팀의 중심적인 역할을 해줄 젊은 선수들로 꼽힌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