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결과 사회 기득권층은 야당이던 한나라당에 줄을 섰고, 정치자금 역시 그쪽으로 집중됐다. 게다가 당시 한나라당에는 천재적인 변호사가 있었는데, 그는 선거자금을 받기 위해 차떼기라는 기발한 방법을 동원한다. 배추를 나르는 트럭이 하는 것처럼, 트럭에 현금을 가득 채운 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만나 그 자동차를 통째로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민주당이라고 해서 불법 대선자금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 규모가 한나라당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이런 불리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기적적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 1주년에 즈음해 다음과 같은 폭탄선언을 한다. “(우리가 쓴) 불법자금의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대통령직을 걸고 정계를 은퇴할 용의가 있다.”
서민 단국대 교수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지금, 진보가 보수보다 더 깨끗하다고 믿는 사람은 많이 줄었다.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이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지만, 나머지 인사들도 만만치 않다. 백원우를 비롯한 전·현직 청와대 비서관들은 유재수 감찰 무마와 울산시장 선거개입 등의 혐의로, 공직기강비서관 최강욱은 인턴서류 허위작성 혐의로 우르르 기소됐다. 낙하산 인사는 이전 정권보다 덜하지 않고, 각종 특혜 의혹이 쏟아졌다.
예컨대 운동권 출신인 허인회는 자신의 전공과 무관한 태양광 발전을 한답시고 서울시로부터 37억 원의 보조금을 받았다. 당연하게도 사업은 망했고, 그 돈은 이제 회수가 불가능하게 됐다. 더 어이없는 건 이런 일련의 사태에 대해 집권세력이 미안해하는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년 기자회견에서 조국 전 장관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한 대통령의 발언도 그랬지만, 선거개입 혐의로 검찰에 소환된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 포토라인에 서서 한 말은 무섭기까지 하다. “저는 우리 검찰이 좀 더 반듯하고 단정했으면 좋겠습니다.”
이게 다가 아니다. 대통령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임명해 현 정권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에 관여하고 있다. 청와대 관련 수사를 한 검사들을 교체하고, 정권 입맛에 맞는 검사를 요직에 앉혔다. 공수처 설치가 검사와 판사를 길들이기 위한 기구라는 세간의 의심도 괜한 것만은 아닌데, 그러면서도 이를 검찰개혁이라 하는 것을 보면, 이들이 내가 알던 그분들이 맞는지 헷갈리기까지 한다. 능력이야 없을 수 있지만, 최소한 민주주의를 신봉한다는 점은 틀림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다 내 착각이었던 거다.
그래서일까? ‘문빠’로 불리는 극성 지지자들의 뻔뻔함도 극에 달한 느낌이다. 현 집권층의 실정을 언급하는 이에게 ‘그래서 자유한국당 찍을 거야?’라고 윽박지르는 모습은 박사모 저리 가라다. 이제야 깨닫는다. 진보가 보수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청렴해 보였던 이유는, 당시 그들이 제대로 된 권력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행정부는 물론 입법과 사법까지 모두 거머쥔 지금, 그들이 잔칫상을 벌이는 것도 그런 의미에선 이해가 간다. 정말 무서운 사실 하나. 이들의 임기가 아직도 2년도 더 남았다.
서민 단국대 교수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