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편성채널 TV조선 예능 ‘내일은 미스터트롯’은 1월 30일 방송에서 전국 시청률 20.815%, 25.709%(닐슨코리아 기준)를 찍으며 비 지상파 프로그램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사진=TV조선
‘미스터트롯’의 인기 이유를 이야기할 때 첫 손에 꼽는 건 단연 출연진의 면면이다. 2019년 ‘미스트롯’이 끝난 뒤 “과연 송가인 같은 스타가 탄생할까?”라는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기우였다. 막상 뚜껑을 열자 그동안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알 수 없었던 실력자들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현재 트로트 가수로 활동 중인 현역부의 장민호, 임영웅, 영탁 등의 실력은 명불허전이었다. 그들은 그동안 현철, 설운도, 태진아, 송대관으로 대변되면 트로트 4대 천왕 구도에 균열을 일으킬 인물로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단단히 받았다. 선배들의 창법을 따라하지 않고 자신만의 매력으로 무대를 꾸미는 이들의 실력에 심사위원들조차 감탄을 금치 못한다.
신동부와 유소년부의 저력도 만만치 않다. 과거 다양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신동’이라 불렸던 이들은 나이를 먹으며 기교까지 갖췄다. ‘리틀 남진’이라는 별명이 붙은 김수찬을 비롯해 양지원, 김희재, 이찬원 등은 예심에서 심사위원 모두로부터 올하트를 받으며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대결을 펼쳤다.
유소년부의 정동원, 홍잠언, 김도형, 남승민 등은 이미 스타가 됐다. 9세 막내인 홍잠언이 부른 ‘항구의 남자’ 영상은 이미 유튜브 조회수 200만 건이 넘어섰다. ‘트로트를 부르는 어린이’ 콘셉트가 귀여운 애교를 바탕으로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한 장치일 것이란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들은 진정 실력으로 승부를 걸었다. 정동원 외에는 모두 탈락했지만, 그들의 인상적인 무대는 ‘미스터트롯’의 든든한 밑거름이 됐다.
#주옥같은 노래 “졸작이 없다”
“트로트가 이렇게 좋았어?” ‘미스터트롯’과 관련된 댓글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시청자들의 반응이다. 출연진의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그들이 부르는 노래가 대중의 공감을 살 수 없다면 콘텐츠가 폭발력을 얻기 어렵다. 하지만 ‘미스터트롯’에서 출연진들이 재해석한 노래들의 빼어난 멜로디와 가사는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초등학생인 정동원이 한을 실어 ‘보릿고개’를 부를 때, 이 노래의 원곡자이자 심사위원인 가수 진성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며 “함께 울었다”는 시청자들의 댓글도 줄을 이었다.
현재 음원사이트 멜론, 지니를 비롯해 전 음원사이트 성인가요 차트 100위권 안에는 ‘미스터트롯’ 출연진이 발표한 40여 곡이 포진돼 있다. ‘댄싱퀸’(장민호랑나비), ‘2대8’(사륜구동)의 ‘내 마음 별과 같이’(지원사격), ‘네박자’(승민이와 국민손자들), ‘토요일은 밤이 좋아’(N.T.G), ‘천년지기’(이재식스맨), ‘흥보가 기가 막혀’(핫해하태하태수), ‘99.9’(세상 모든 대디에게 경래), ‘존재의 이유’(허민영영 못잊을거야) 등 모두 주옥같은 명곡으로 손꼽힌다.
현재 트로트 가수로 활동 중인 현역부 장민호, 임영웅, 영탁 등은 그동안 현철, 설운도, 태진아, 송대관으로 대변되면 트로트 4대 천왕 구도에 균열을 일으킬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사진=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 방송 화면 캡처
또한 트로트 곡들의 가사는 부르는 이들뿐만 아니라, 듣는 이들의 폐부를 찌른다. 게다가 출연진들의 남다른 사연과 맞물리며 그 감동은 배가된다. 아이돌 가수들이 가요계를 쥐락펴락하며 퍼포먼스만 난무하는 ‘가사의 실종’ 시대에 살던 대중에게 깊은 울림과 메시지를 담은 트로트 곡은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서고 있는 셈이다.
‘미스터트롯’을 기획한 서혜진 TV조선 예능국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워낙 좋은 트로트곡이 많은데, 젊은 출연자가 대거 등장해 다양한 퍼포먼스를 곁들인 쇼를 적절한 시점에 보여줬기 때문에 모두가 공감하고 어우러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수긍할 만한 심사 “악마의 편집이 없다”
2010년대 들어 한국 예능 시장의 주요 트렌드였던 오디션 프로그램이 지난해 큰 위기를 맞았다. Mnet(엠넷) ‘프로듀스 101’ 시리즈가 투표수 조작 논란에 휩싸이며 대중의 신뢰도가 크게 하락했다. 공정한 심사가 아닌 몇몇 제작진에 의해 자의적인 선택이 이루어진다는 불신이 팽배했다.
‘미스터트롯’은 심사위원 13명이 각 출연진에게 합격과 불합격을 내리는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며 이런 우려를 일축시켰다. 특히 일대일 대결을 펼치는 데스매치부터는 각 심사위원이 누구에게 표를 행사하는지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방송 초반에는 심사위원 구성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각 심사위원들의 특성이 드러나며 대중의 반감이 줄어들었다. 특히 세미 트로트 시장의 선구자 격인 장윤정은 자신의 경험을 곁들인 전문적인 심사평으로 호평 받고 있다. 히트한 트로트 곡을 다수 만든 작곡가 조영수의 날카로운 심사평도 인상적이다. 전문 음악인이 아닌 방송인 장영란의 호들갑스러운 반응과 감성적인 심사에 대한 의견이 엇갈렸으나, 그는 참가자들의 뛰어난 무대에 누구보다 적극적인 리액션을 보여주며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붐과 박명수 역시 자칫 무겁게 진지하게 흐를 수 있는 분위기를 잡아주며 ‘미스터트롯’의 예능적 요소를 강화한다.
또한 ‘미스트롯’에 이어 ‘미스터트롯’의 MC를 맡은 방송인 김성주의 진행 솜씨는 명불허전이다. 스포츠 캐스터 출신답게 프로그램 전체의 맥을 짚으며 완급을 조절하는 능력이 발군이다. 물 흐르는 듯한 진행 속에서 인간적인 면모도 돋보인다. 탈락자를 위로하고 어린이 출연자와 인터뷰를 나눌 때는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맞춘다.
무엇보다 ‘미스터트롯’은 전 연령층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콘텐츠라는 측면에서 박수 받을 만하다. 서혜진 국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지난 설 연휴 기간 동안 부모와 자녀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함께 보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고마웠다는 반응을 듣고 참 뿌듯했다”고 말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