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서울 강남성모병원 앞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가 석방을 요구하며 천막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황교안 대표 발언이 나오기 하루 전인 1월 27일엔 김형오 한국당 공천관리위원장도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했다. 공관위 2차 회의에서 김 위원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수감생활이 3년이 돼 가고 있다. 해도 해도 너무 한다”며 “하루빨리 구속에서 해제되길, 대통령을 비롯한 책임 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결단을 내리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당 대표와 공관위원장이 같은 시기 한 목소리를 낸 건 우연이 아니라고 봐야 한다는 반응이다. 한국당이 총선을 앞두고 ‘집토끼’ 잡기에 나선 것이라는 얘기다. 한국당 한 의원은 “솔직히 갑자기 똑같은 이야기가 나온 구체적 정황이나 배경은 잘 모르겠다”면서도 “결국 총선을 앞두고 표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귀띔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 사면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아 사면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2019년 11월 대법원은 국가정보원에서 특수활동비를 상납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항소심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낸 바 있다. 재판은 아직도 진행 중인 셈이다(관련기사 다시 고개드는 박근혜 사면설 팩트체크…이론상 가능, 변수는 최서원).
박 전 대통령 파기환송심은 3월에도 재판 기일이 잡혀 있는 상태다. 통상 대통령 사면이 예상되는 3·1절에도 박 전 대통령 사면은 쉽지 않아 보이는 대목이다. 이처럼 사면 대상에 포함될 수 없는 박 전 대통령을 두고 자유한국당이 사면론을 꺼내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정치적 노림수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우선 한국당이 총선을 앞두고 보수 성향 유권자들을 향해 구애하고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보수 통합 작업을 서두르고 있긴 하지만 또 다른 보수당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어느 때보다 표 결집이 아쉬운 상황과 맞물린다. 현재 광화문 반문재인 집회를 이끌었던 우리공화당과 이언주 의원이 이끄는 미래를 향한 전진 4.0 등이 각자도생에 나섰고, 김문수 전 경기지사와 전광훈 목사 등이 주도하는 자유통일당도 창당 작업을 진행 중이다.
보수 성향 시민단체를 이끄는 한 대표는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최소한 박 전 대통령 사면이 실제로 이뤄지지 않더라도 사면에 적극적인 노력을 한 당에 표를 줄 수밖에 없다”며 “한국당이 박 전 대통령 사면 노력에 힘을 쏟지 않는다면 사표가 되더라도 지지하긴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런 움직임은 보수 통합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유승민 새로운보수당 의원은 통합 조건으로 “탄핵의 강을 건너자. 개혁보수로 나아가자. 낡은 집을 허물고 새 집을 짓자”면서 “보수 재건을 위해서 3가지 원칙만 확실히 지켜진다면 다른 아무것도 따지지도 요구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한국당에서 박근혜 사면론이 확산될 경우 새로운보수당과의 통합은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가능한 대목이다. 새보수당 한 관계자는 “(박근혜 사면론은) 중도층에게는 ‘표 떨어지는 발언’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박 전 대통령 사면 주장은 손해보다는 득이 크다고 본다”면서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오랫동안 감옥에 수감 중이다. 노태우 전두환 등은 과거 쿠데타를 했는데도 2년 정도 후 감옥을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도 드루킹 문제, 윤석열 수사팀 해체, 울산시장 청와대 하명수사 논란 등이 있다. 박 전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도 약 30년을 감옥에서 전부 살게 하는 건 과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선 총선을 앞두고 박 전 대통령 메시지가 나올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보수진영이 경쟁적으로 구애하고 있는 상황에서 몸값이 올라간 박 전 대통령 측이 정치적으로 이를 활용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실제 측근들로 분류되는 친박계 인사들은 박 전 대통령에게 총선용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건의를 여러 차례 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메시지가 실제로 나온다면 박 전 대통령 사면에는 오히려 불리해진다는 지적도 있다. 신율 교수는 “박 전 대통령 형이 과하다는 것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국민들은 박 전 대통령이 잘못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다. 다만 일종의 동정론이 있을 뿐이다. 메시지를 내는 것은 정치 활동을 한다고 봐야한다. 그렇다면 오히려 박 전 대통령 본인에게 불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