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총선) 승리를 향한 여야의 수 싸움이 시작됐다. 핵심은 거센 바람몰이를 앞세워 상대 진영 길목을 미리 차단, 적군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이다. 바둑으로 치면 ‘끊으면서 단수치기’다. 이 전략이 성공하면 반대편은 ‘고립’된다. 선거전략 미스로 역공격을 당하면, 승부처를 모조리 뺏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수싸움에서 이기는 쪽은 전쟁에서 승리한 장수로 남는다. 패배한 장수를 기다리는 것은 참수형뿐이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의원들이 1월 29일 국회에서 ‘청년·신혼 맞춤형 도시 조성 등을 통한 주택 10만 호 공급’ 공약을 발표한 뒤 청년, 신혼부부와 기념촬영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여야의 선거 거점은 크게 서부 벨트(수도권·충청·호남·제주)와 동부 벨트(영남·강원)로 나뉜다. 지역별로 들어가면 서울의 ‘한강 벨트’, 경기의 ‘일산 벨트’, 인천의 ‘동부 벨트’와 부산·울산·경남(PK)의 ‘낙동강 벨트’ 등으로 세분화된다.
서부 벨트는 더불어민주당 등 진보진영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인 지역이다. 반면 동부 벨트는 자유한국당 등 보수진영 텃밭으로 불린다. 양 진영 선거 전략도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민주당은 보완재 찾기다. 낙동강 벨트 탈환을 통한 ‘동진 전략’이 대표적이다. 한국당은 자신들의 강점인 대구·경북(TK)을 앞세워 ‘북진 전략’을 극대화한다.
이 중 4·15 총선 격전지 백미는 서울의 ‘한강 벨트’다. 주요 거점 지역은 마용성(마포·용산·성동)이다. 이곳은 문재인 정부 들어 신흥 부유층으로 부상한 지역이다. 용산구 한남동 한남더힐 아파트는 2019년 최상위 실거래 1∼10위를 싹쓸이했다. 마포래미안푸르지오나 성동구 센트라스 등도 현 정부 들어 80% 가까이 상승한 한강 벨트 대장주다.
지난해 12월 기준 KB부동산 시세에 따르면 시세 9억 원 초과 아파트 비중은 용산이 82.2%로, 서초(93%)와 강남(92%)에 이어 3위였다. 성동과 마포도 62%와 53.4%로 높았다. 마용성의 총선 최대 변수로 ‘부동산 표심’이 꼽히는 이유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정치 1번지’인 서울 종로 대신 마용성으로 출구전략을 모색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한국당 핵심 관계자는 “종로에 중점을 둘지, 마용성을 거점 지역으로 삼을지 고민스러운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한강 벨트의 현재 지역구 분포는 용산(진영 행정안전부 장관), 마포갑(노웅래), 마포을(손혜원), 중구성동갑(홍익표 의원·이상 민주당), 중구성동을(지상욱 새로운보수당 의원) 등으로 민주당이 압도적이다. 다만 중구의 경우 선거구획정에 따라 종로와 통합 여부를 결정한다.
한강 벨트의 첫 승부처는 마용성의 허리인 용산이다. 여당에선 권혁기 전 청와대 춘추관장 등 5명이 일찌감치 출마 채비를 마쳤지만, 당 지도부는 1월 17일 용산을 전략공천 지역으로 묶었다. ‘본선 경쟁력’을 제1순위로 판단하겠다는 의미다. ‘강북의 강남’으로 불리는 용산은 지난 17대부터 진 장관이 내리 4선을 한 곳이다.
하지만 17∼19대까지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이상 한국당 전신) 소속이었다. 그만큼 보수 성향이 강하다는 얘기다. 최근 한국당이 ‘황교안’ 이름을 넣어 여론조사를 돌린 네 곳 가운데 한 곳도 용산인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세 곳은 양천과 영등포, 구로을이다.
마포갑과 마포을 지역도 최근 네 번의 총선에서 민주당이 3승씩 차지했다. 마포갑은 노웅래 의원이 18대 총선만 빼앗기고 나머지 선거에서 모두 이겼다. 마포을은 정청래 전 의원이 17대와 19대 총선을, 손혜원 의원이 20대 총선을 각각 이겼다. 중구와 성동구가 통폐합과 분할을 반복한 중구성동 갑을은 진보진영 강세 지역이다. 두 지역은 동교동계인 정대철 전 의원과 임종석 전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의 향수가 짙게 밴 곳이다.
경기의 주요 거점은 일산 벨트다. 106만여 명인 고양시는 갑을병정으로 나뉜다. 현 주인은 차례로 심상정 정의당 의원, 정재호 민주당 의원,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다. 이 중 유 부총리와 김 장관은 이번 총선에 불출마한다.
고양시의 네 지역구는 진보 우세 속 보수가 간간이 탈환했던 곳이다. 최근 네 번의 총선에서 고양을(2승 2패)을 제외한 세 지역은 3승 1패로 진보진영이 승리했다. 특히 고양갑은 친노(친노무현)계인 유시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난 17대에서 승리했던 곳이다. 당시 고양병은 친노의 대모인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안방을 차지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18대 총선 결과다. 이른바 ‘뉴타운 선거’로 불렸던 당시 총선에서는 고양시 네 지역구 모두 한나라당 손범규·김태원·백성운·김영선(갑을병정 순) 전 의원이 싹쓸이했다. 부동산 표심이 총선 승패를 좌우한 셈이다. 이에 따라 부동산 심판론이 일산 벨트의 핵심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심재철 원내대표가 1월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20 총선 국민승리 공약개발단 출범식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인천의 양대 축은 계양과 부평 등의 ‘동부 벨트’와 중동옹진, 연수구 등의 ‘남부 벨트’다. 동부 벨트는 전통적으로 진보진영의 축이었다. 20대 총선 결과를 보면, 민주당이 부평갑(정유섭 한국당)을 제외한 계양갑(유동수), 계양을(송영길), 부평을(홍영표) 지역을 석권했다. 남부 벨트는 중동옹진(안상수)과 연수을(민경욱) 등을 차지한 한국당이 앞섰다. 4선 중진인 송영길 민주당 의원이 연수구 등 인천 험지 출마 요청을 받은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PK 판세 요충지는 부산 북강서, 사하, 사상과 경남 김해, 양산 등으로 이어지는 ‘낙동강 벨트’다. 이곳은 노동계 표심의 경남 창원·성산이나 울산과는 달리, PK의 교외화와 서부 지대 개발 등으로 젊은 층이 대거 유입된 지역이다. 친노계 영향력도 진보발 낙동강 벨트 형성에 한몫했다. 이른바 ‘노풍(노무현 바람)’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얘기다. 실제 낙동강 벨트가 선거 변수로 등장한 것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출마했던 2002년 대선이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부산에서 29.9%를 기록했지만, 낙동강 벨트에선 이를 웃돌았다.
특히 김해에선 39.7%로, 40%에 육박하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18대 대선에 출마했던 문재인 대통령도 낙동강 벨트에서 43.5%를 획득, 부산(39.9%)과 경남(36.3%)보다 우위를 보였다. 그 결과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현 민주당)은 PK에서 3석(부산 2석+경남 1석)을 얻었다. 20대 총선에서는 2.5배인 8석(부산 5석+경남 3석)을 차지했다. 이후 치른 19대 대선 땐 부산 동·중·서구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곳에서 문 대통령이 1위를 차지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PK발 동남풍이 직진하며 수도권까지 북상하는 것이 우리의 전략”이라고 말했다. 역으로 한국당이 낙동강 벨트 전선에서 무너지면, 사실상 총선 패배 그림자는 한층 짙어진다.
한국당이 기대하는 것은 ‘북진 전략’이다. 전통적인 텃밭인 TK(대구·경북)에서의 바람을 ‘중부권→수도권’으로 북상시키는 게 핵심이다. 역대 총선마다 TK는 한국당이 압승했지만, 20대 총선에서는 총 25석(대구 12석+경북 13석) 가운데 총 4석(민주당 1석+무소속 3석)을 내줬다. 한국당 한 관계자는 “당내 TK 공천이 변수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공천 물갈이’ 움직임에 반발한 TK 의원들은 2월 4일 황 대표와 1시간 30분 동안 오찬을 겸한 면담을 했다. 그간 TK 의원들 사이에선 “황 대표도 종로 출마를 멈칫하는데 왜 우리가 희생양이 되느냐”라는 불만이 많았다. 주호영·김상훈·윤재옥 의원 등 8명은 ‘인위적인 50% 물갈이’에 대한 우려를 황 대표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의원도 “인위적인 물갈이는 민심의 역효과를 부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전을 중심으로 한 충청권과 진보 텃밭인 호남, 보수 텃밭인 강원은 벨트 사수보다는 ‘지역 이슈’와 ‘인물 구도’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금강 벨트의 경우 ‘정권 심판론’과 ‘야당 심판론’이 혼재해 있다. 정부의 신종 코로나발 사태 대응책인 아산·진천 격리를 둘러싼 ‘충청 무시’ 논란은 여권의 악재다. 반대로 TK 의원들의 ‘국가균형발전 특별법 개정안’ 국회통과 저지는 야당 심판론으로 불이 붙을 화약고로 꼽힌다. 이는 대전·충남 혁신도시 지정을 골자로 하는 법안이다.
호남은 안철수 바람과 손학규·박지원·정동영의 호남 연대, 강원은 원조 친노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의 출격 등이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20대 총선 당시 충청권은 새누리당 14석, 민주당 12석으로 보수가 박빙 우세를 보였다. 호남에선 국민의당이 21석을 차지했다. 민주당은 3석에 그쳤다. 강원에선 새누리당이 7석 중 6석을 차지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