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 다이노스 투수 김진성과 삼성 라이온즈 외야수 구자욱(사진)은 최근 구단과의 연봉협상에서 불협화음을 냈다. 사진=연합뉴스
상승세는 갈수록 가팔랐다. 그 후 5년이 지난 2019년 전체 선수 평균 연봉은 1억 5065만 원으로 다시 5000만 원 가까이 상승했다. 올 시즌 역시 전 선수의 연봉 계약이 완료되면 평균 연봉이 지난해보다 소폭 상승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연봉 협상 테이블에 그어진 ‘평행선’은 여전히 존재한다. 구단은 최대한 적게 줘야 이득이고, 선수는 최대한 많이 받아야 좋다. 구단은 후하게 책정했다고 여기고, 선수는 박해도 너무 박하다고 서운해 한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10개 구단이 지난 2월 1일(한국시간) 일제히 스프링캠프를 시작했지만, 여전히 일부 구단에선 연봉 협상과 관련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김진성의 중도 귀국과 구자욱의 줄다리기
NC 다이노스 불펜의 핵심 투수 중 한 명인 김진성(35)은 스프링캠프 시작 이틀째인 지난 2일 귀국길에 올랐다. 훈련 도중 부상을 당해서가 아니다. 연봉 계약 후 마음이 상해 한국행을 자청했다. 프로 선수에게 ‘스프링캠프 중도 이탈’이란 한 시즌 농사를 망칠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행위다. 심지어 NC가 스프링캠프를 차린 미국 애리조나는 편도 이동에만 거의 하루가 걸리는 먼 곳이다. 선수단이 캠프 시작 사흘 전인 지난 1월 29일 미리 애리조나행 비행기에 오른 이유다.
그러나 출국 전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지난해 주장이었던 내야수 박민우가 공항 인터뷰에서 “지난 두 달 동안 에이전트가 구단과 두 번밖에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선수들 입장에선 연봉 계약을 다 끝내고 떠나야 홀가분하게 훈련에 집중할 수 있는데, 아직 계약을 하지 못해 아쉽다”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현했다.
역시 미계약자였던 김진성도 캠프지 도착 후 곧바로 운영팀장과 연봉 협상을 했지만, 결국 지난해 2억 원에서 4000만 원(20%) 깎인 1억 6000만 원에 도장을 찍었다. 그러자 이후 구단에 면담을 신청해 속상한 마음을 털어 놓은 뒤 “한국에 돌아가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하다”고 청했다. 그렇게 김진성은 한국으로 돌아와 마산구장에서 2군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게 됐다. 사전에 갈등을 원만하게 봉합하지 못한 구단과 계약 내용을 받아들이지 못해 팀 분위기를 뒤숭숭하게 만든 선수 모두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여기에 삼성 라이온즈도 간판타자인 구자욱과 불협화음으로 곤욕을 치렀다. 지난해 계약을 구단에 백지 위임해 3억 원을 받았던 구자욱은 올해 최소한 연봉 동결을 바랐다. 반면 삼성은 고과 산정 기준상 삭감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연봉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은 구자욱이 끝내 오키나와 캠프로 함께 출발하지 못하고 대구에 남으면서 양측의 갈등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번에도 구단과 선수 모두에게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졌다.
#연봉 산정 방식과 협상의 기술
연봉을 둘러싼 구단과 선수의 신경전은 오래 전부터 피할 수 없던 ‘전쟁’이었다. 각 구단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선수들의 연봉을 책정한다. 예를 들어 수도권 A 구단은 구단 자체 고과 50%, 정규시즌 공식 기록 20%, 타석수나 투구이닝 10%, 1군 등록일수 10%, 코칭스태프 평가 10%를 두루 반영한다.
가장 비중이 큰 구단 고과 산정 시스템은 투수 쪽과 타자 쪽 모두 120개가 넘는 항목으로 세분화돼 있다. 숫자에는 드러나지 않는 팀 공헌도를 평가하는 요소가 대부분이다. 아무리 홈런과 타점이 많아도, 병살타를 많이 친 선수는 감점 요인이 크다. 그 병살타가 승부처에서 나왔다면 점수가 더 많이 깎인다. 대신 접전 상황에서 결승타를 쳤을 때는 플러스알파가 많이 붙는다. 같은 홈런이나 삼진도 경기 중 상황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이 구단 관계자는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다 평가하기 때문에 선수들의 생각과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며 “대부분 구단의 연봉 산정에는 다 근거가 있다”고 했다.
물론 구단이 책정한 연봉을 선수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례는 많다. 이 때문에 어떤 선수는 입을 꾹 다물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해 협상 담당자를 답답하게 만들기도 하고, 어떤 선수는 늘 연봉조정 신청 기한 직전까지 구단의 속을 끓이다 막판에야 사인하기도 한다. 반대로 한 단장은 선수 시절 늘 첫 번째 협상에서 구단 제시액에 군소리 없이 도장을 찍어 프런트들 사이에서 남몰래 인기를 끌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어쨌든 요즘 선수들의 공통 불만은 ‘구단이 아예 조금도 물러설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선수는 “운영팀장과 평소 관계에 따라 협상 테이블 분위기가 달라진다”면서도 “어쨌든 결과는 똑같다. 연봉 ‘협상’이 아니라 ‘통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다른 선수도 “협상의 여지도 없다. 요즘은 구단이 아예 설명을 들으려 하지도 않고 제시액만 내놓는다”고 불만스러워했다.
지방 한 구단 연봉 협상 담당자는 “협상 추세가 과거와 달라서 그렇다”고 해명했다. “예전에는 선수에게 1억 원을 주고 싶으면 먼저 8000만 원을 부르고 시작했다. 일부러 약하게 제시한 다음 금액을 올려야 선수가 ‘내가 2000만 원을 더 받아냈다’고 만족스러워할 수 있어서였다”며 “요즘은 에이전트가 협상을 대신하는 선수도 많아서 오히려 구단 산정액을 확실하게 밝히는 방식이 더 신뢰도를 높인다. ‘구단이 줄 수 있는 최대치가 이 정도’라고 먼저 선을 긋고 물러서지 않는 게 서로 더 정직한 방법일 수 있다”고 했다.
타격 7관왕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던 이대호도 연봉조정신청에서는 승리하지 못했다. 사진=연합뉴스
#이대호도 진 연봉조정신청, 8년째 신청 ‘무’
구단 제시액에 불만이 많은 선수들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창구는 있다. 3시즌 이상 KBO 리그에서 뛴 선수라면 누구나 ‘연봉 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 구단과 소속 선수가 매년 1월 10일 이전까지 연봉 계약에 합의하지 못했을 때, KBO에 결정권을 넘기는 제도다. 구단과 선수는 연봉 조정 신청 마감일 이후 5일 이내인 1월 15일까지 각각 주장하는 연봉 산출 근거 자료를 KBO에 제출해야 한다.
일단 한번 KBO로 공이 넘어간 이상, 양쪽 모두 결과를 무조건 수용하는 게 원칙이다. 구단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선수의 보류권을 잃고, 선수가 거부하면 임의탈퇴로 묶여 최소 1년간 뛸 수 없다. 이 때문에 일단 연봉 조정 신청을 해놓고도 5일이 채 지나기 전에 그냥 구단 제시액에 사인하는 선수가 적지 않다.
같은 일을 겪었던 한 선수는 “스프링캠프를 함께 출발할 수 없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고, 서류 작업에 전문가들인 구단과 달리 우리는 증빙자료를 준비하는 일이 엄청난 스트레스다”라며 “어차피 이길 확률이 높지 않다면 그냥 내년을 기약하는 게 정신 건강에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구단과 대립해봐야 결국 나만 손해였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지금까지 구단과 선수가 정말로 ‘끝까지’ 대립해 연봉조정위원회까지 열린 사례는 총 20회에 불과했다. 1984년 해태 타이거즈 강만식과 MBC 청룡 이원국이 시작이었고, 2011년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가 마지막이었다.
2002년에는 LG 트윈스에서만 김재현, 이병규, 전승남, 유지현까지 4명의 선수가 연봉 조정을 신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유일한 승자는 유지현뿐. 구단은 전년도 연봉 2억 원에서 1000만 원 삭감된 1억 9000만 원을 제시했지만, 유지현은 2억 2000만 원을 요구해 이겼다. 20번 열린 연봉조정위원회에서 선수가 자신의 요구액을 인정받은, 유일한 사례다. 나머지 19번은 모두 구단이 이겼다. 1991년의 롯데 김시진과 OB 베어스 장호연, 1992년의 삼성 이만수, 1994년 해태 조계현 등 쟁쟁한 프랜차이즈 스타들도 예외는 없었다.
그러나 유일한 승자인 유지현에게도 상처는 남았다. 구단의 곱지 않은 시선을 견뎌야 했고, 선수생활도 오래 하지 못했다. 게다가 연봉 조정 신청 사례가 나올 때마다 언론의 인터뷰 공세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 됐다. 그는 그 후 누군가 상담을 해올 때마다 “웬만하면 끝까지 가지 말고 구단과 타협을 보라”고 조언한다는 후문이다.
2009년에는 당시 두산 베어스 소속이던 정원석이 연봉 조정신청서를 냈다가 37분 만에 철회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구단 제시액은 4200만 원, 정원석의 요구액은 4400만 원. 단 200만 원 차이로 감정싸움을 벌이다 터진 일이었다. 그 37분의 여운은 예상보다 더 길었다. 정원석은 2009시즌을 끝으로 두산에서 방출됐다.
가장 관심을 모았던 선수는 단연 2011년의 이대호였다. 이대호는 그해 도루를 제외한 타격 전 부문 타이틀을 휩쓸면서 전무후무한 7관왕에 올랐다. 9경기 연속 홈런이라는 세계 기록도 세웠다. 연봉 협상 테이블에서 3억 9000만 원이던 연봉을 7억 원으로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롯데는 6억 3000만 원을 제시했다. 7000만 원의 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이대호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팀 성적과 형평성을 이유로 개인 성적에 비해 연봉을 거의 올려 받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토로하며 맞섰지만, 롯데는 “2003년 삼성 이승엽이 받았던 연봉보다 많이 줄 수는 없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조정위원회는 늘 그랬듯 롯데의 손을 들어줬다. 이대호는 1년 뒤 FA(프리에이전트) 자격을 얻었고, 롯데의 4년 100억 원 제안을 뿌리치고 일본으로 날아갔다.
가장 마지막으로 연봉 조정을 신청한 선수는 2012년 LG 소속으로 뛰던 이대형(KT)이다. 2011년 1억 4000만 원을 받았던 그는 부상으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고, 구단은 5500만 원이 깎인 8500만 원을 2012년 연봉으로 책정했다. 반면 이대형은 “삭감폭이 지나치게 크다”며 1억 2000만 원을 요구해 양측 제시액에 3500만 원의 격차가 생겼다. 오랜 줄다리기 끝에 결국 이대형은 1월 10일 KBO에 연봉 조정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그때도 연봉조정위원회는 열리지 않았다. 이대형은 스프링캠프 출국을 하루 앞둔 1월 13일, 끝내 구단 제시액인 8500만 원에 도장을 찍었다. 이후 8년이 흐른 지금까지 연봉 조정을 신청한 선수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