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강백호는 2년 차에 연봉 344%가 인상되며 2년 차 최고 연봉 기록을 경신했다. 사진=연합뉴스
이뿐 아니다. 2017년 신인왕 이정후(키움 히어로즈)는 2700만 원에서 307.4% 오른 1억 1000만 원, 2018년 신인왕 강백호(KT 위즈)는 2700만 원에서 344% 인상된 1억 2000만 원에 각각 사인해 류현진이 남긴 역대 2년차 최고 연봉 기록을 차례로 경신했다. 만약 이들이 1980년대 프로야구 선수였다면 어땠을까. 류현진은 2500만 원, 유희관은 3000만 원, 이정후와 강백호는 3375만 원밖에 받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연봉 25% 인상 상한선’ 때문이다.
이 ‘악법’은 1983년 처음 도입됐다. 정작 프로야구의 헌법과도 같은 야구 규약에는 제대로 명시되지 않았는데, 모든 구단이 일제히 따라 더 이상한 제도였다. 당시 프로야구 신인 기본 연봉은 1200만 원. 그러니 아무리 그라운드에서 펄펄 날아봤자 ‘1년차 1200만 원→2년차 1500만 원→3년차 1875만 원→4년차 2343만 원’으로 정해진 계단을 밟아 올라가야 했다. 더 많은 연봉을 받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할 이유가 없었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MBC 청룡(LG 트윈스의 전신) 김건우는 1986년 1200만 원을 받으면서 18승을 올렸지만, 이듬해 연봉이 불과 300만 원 올랐다. 구단이 2000만 원의 보너스를 따로 챙겨줬지만, 성에 찼을 리 없다. 선수들도 끊임없이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기량이 출중한 스타플레이어가 즐비했던 해태 타이거즈는 비시즌 연봉 협상 때마다 몸살을 앓았다. 협상 담당자들은 선수들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정에 기대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집값과 생활비가 쌌던 ‘광주 물가’ 논리를 앞세우기도 했다. 당대 최고의 투수였던 선동열에게는 모기업 CF 촬영을 주선해 출연료를 따로 챙겨주는 방법도 썼다.
이 상한선을 처음으로 깨고 계약한 인물은 롯데 자이언츠의 레전드인 고 최동원으로 알려져 있다. 최동원은 1984년 정규시즌 27승과 한국시리즈 4승이라는 믿을 수 없는 성적을 올렸지만, 시즌 후 롯데가 제시한 금액은 연봉 3472만 5000원과 보너스 3000만 원이 전부였다.
최동원은 결국 “내가 25% 상한선 폐지의 십자가를 지겠다”며 구단과 끝까지 맞섰고, 자신이 요구했던 연봉 6500만 원을 끝내 관철시켰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그해 KBO에 공식 등록된 최동원의 연봉은 규정대로 딱 25%만 오른 금액이었다. 부담스러운 선례를 남기고 싶지 않았던 롯데가 ‘뒷돈’을 챙겨주는 방식으로 덮어버린 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 제도가 ‘공식적으로’ 폐지된 것은 1990시즌이 끝난 뒤였다. 2018년 세상을 떠난 고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이 당시 앞장서 변화를 주도했다. 야구단에 애정이 남달랐던 구 전 회장은 MBC를 인수한 첫해 LG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자 우승 축하연에서 “내가 어떻게 축하를 해주는 것이 가장 좋겠나”라고 물었다.
그러자 당시 LG 사령탑이던 백인천 감독은 “다른 것 없다. 선수들 연봉을 많이 올려달라”고 요청했다. 구 전 회장은 흔쾌히 “알았다”고 대답했고, 그해 LG 우승에 큰 공을 세운 선수들의 연봉을 실제로 25%를 훌쩍 넘고도 남을 만큼 많이 올려줬다. 이를 신호탄으로 그동안 망설이던 다른 구단들도 기다렸다는 듯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프로야구 선수들은 그때부터 진짜 ‘프로’가 됐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