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 장관(오른쪽)이 전격적으로 윤석열 검찰총장과 회동을 가지며 양측이 휴전에 돌입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휴전이 오래 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법조인은 많지 않다. 사진=임준선·박은숙 기자
#공소장이 뭐길래? 통상 국회 통해서 공개
기소와 함께 피의자(재판 시 피고인)의 범죄 혐의를 법원에 제출하는 문서인 공소장은 검찰의 수사가 정리된 것으로 언론 취재 과정에서도 가장 중요한 자료다. 부수적인 사실 관계를 모두 배제하고, 범죄 혐의만 증거와 함께 요약하기 때문이다. 공소장은 그동안 국회를 통해 언론에 노출됐다. 근거는 국회법이다. 정부, 행정기관이 보유한 서류 등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10일 이내 제출토록 적시돼 있다.
법무부는 국회가 요구하면, 이 조항 때문에 검찰이 법원에 접수한 주요 사건 공소장을 국회에 제출했다. 관례화된 것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법률 외에 ‘정보 비공개’를 규정할 수 있는 근거를 종전 ‘법률에서 위임한 명령’에서 ‘국회·대법원·헌법재판소 규칙, 대통령령’ 등으로 구체화했다. 사법 개혁의 일환이었는데 이후 주요 사건 때마다 국회에 제출된 공소장은 언론을 통해 내용들이 보도되며 국민들에게 전달됐다.
하지만 송철호 울산시장 관련, 청와대 선거개입 사건에 대해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다른 판단을 내놓았다. 1월 29일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김태은 부장검사)는 송철호 울산시장 등 13명을 불구속기소한 사건과 관련, 공소장에서 개인정보 등을 익명 처리해 대검찰청과 법무부에 전달했다. 국회의 공소장 제출 요청에 따른 조치였다. 하지만 이를 전달받은 법무부는 엿새 동안 공소장을 국회에 내지 않다가 비공개 결정했다.
추미애 장관이 내놓은 명분은 ‘옳지 않은 관행’이었다는 것. 법무부는 “공소장 전문을 제출하게 되면 아무래도 검찰 공소 내용이 선입견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형사 피고인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받을 우려가 있다. 무죄추정의 원칙 등 헌법적 권리를 보호하는 게 법무부가 할 일”이라고 설명을 했지만, 법조계에서 ‘내 편 챙기기’라는 비판이 거세다.
실제 검찰의 공소장에 전·현직 청와대 관계자들의 2018년 6·13 지방선거 개입 정황이 70여 장에 걸쳐 자세히 담겼는데, 법무부가 4월 총선 등을 앞두고 이를 의식해 비공개를 결정했다는 비판이 나온 대목이다. 실제 동아일보가 입수했다는 공소장 관련 보도와 법조계 얘기를 종합하면, 조국 전 민정수석은 김기현 전 울산시장 관련 수사 진행 보고를 15차례 이상 받는 등 깊숙하게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추미애 장관은 “누가 공소장을 언론에 유출했는지 찾아내라”며 강하게 반발했는데, 법조계에서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 판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 씨(개명 전 최순실)의 국정농단은 물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공소장도 국회를 통해 언론에 공개돼 공분을 자아내지 않았냐”며 “현 정권 사람들, 특히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핵심 인사들이 관여된 이번 사건부터 비공개를 결정한 것은 수준 낮은 내 편 끌어안기”라고 지적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다스 의혹 사건 그리고 국정원 댓글 조작 의혹 사건은 물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공소장도 다 공개가 됐다. 추미애 장관 취임 이후인 1월 8일에도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및 관계자 16명을 재판에 넘긴 패스트트랙 사건 공소장이 국회를 통해 공개된 것도 이런 비판에 힘을 보탠다.
차장검사 출신의 변호사 역시 “공소장을 공개하는 것 때문에 검찰은 절대 무리한 심증이 담긴 문장이나 증거 없는 혐의를 기소하지 않는다. 왜 공소장 공개가 형사 피고인에게 불리하다고만 하는지 모르겠다. 검찰을 견제하는 부분이 분명 있다”며 “검찰이 현 정권을 겨눈 수사를 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소 무리한 결정을 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그는 그러면서 “만일 정권이 바뀐 상태로 수사를 했다면 구속을 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문제가 있는 사건인데, 지금 검찰이 현 권력을 배려한 부분을 전혀 무시한 채 검찰의 수사 자체를 문제 삼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으로 논란은 확산됐다. 자유한국당은 물론, 정의당도 법무부가 검찰 공소장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기로 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고 비판했다. 참여연대 역시 2월 5일 논평을 통해 “법무부가 내놓은 ‘개인의 명예나 사생활 보호’라는 비공개 사유는 궁색하기 그지없다. 기존 관례와도 어긋나고 국민의 알 권리와 이 사건에 대해 판단할 기회를 제약하는 것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2월 6일 일정에 없던 대검찰청 전격 방문 및 윤석열 검찰총장과의 회동을 통해 추미애 장관은 “소통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법무부 장관이 대검을 방문해 검찰총장을 만난 것은 20년 만이다. 서초구 대검찰청에 도착한 추 장관이 청사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소통 나선 추미애 장관
그러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대검찰청과의 소통으로 분위기 개선을 시도하고 나섰다. 지난 6일 일정에 없던 대검찰청 전격 방문 및 윤석열 검찰총장과의 회동을 통해 “소통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 추 장관은 6일 오전 10시 30분께 서울 서초동 대검 청사를 찾았는데, 이는 같은 날 오전 11시로 예정된 서초동 서울고검 청사 내 법무부 대변인실 사무실 개소식에 앞서 이뤄졌다. 취재진에는 알려지지 않은 일정이었으며, 취임 후 두 번째 회동이었다. 특히 법무부 장관이 대검을 방문해 검찰총장을 만난 것은 20년 만이기도 했다.
추 장관은 개소식에서 “어디 마을에 갔으면 인사하며 들어오는 게 예의라, 잠깐 (윤 총장에게) 들러 환담을 나누고 왔다. 공간을 잘 마련하게 도와줘서 감사말씀을 드렸다”며 “대통령도 각별히 국가수사 총 역량을 유지하는 원칙에서 기관 간 개혁을 협조하라는 당부말씀을 전하며 서로 소통해 나가자, 오늘 개소식은 소통하는 의미로 아주 중요하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추 장관은 그러면서 “청와대 선거개입 사건 공소장 비공개 결정과 관련한 얘기는 없었다”고 덧붙였지만, 동석한 조남관 법무부 검찰국장이 “화기애애했고 10분 넘게 (대화했다)”라고 밝혔다.
청와대 소식에 정통한 법조계 관계자는 “적어도 회동 자체가 이슈가 되지 않나. 비판이 거세졌을 때는 다른 상황을 연출해 비판 보도를 줄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며 “하지만 대검과 법무부의 관계는 너무 멀어졌고 이런 정치적 판단이 잇따르면서 평검사들 민심도 좋지 않다. 이번 회동을 통해 법무부와 대검 간 분위기가 개선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없다”고 내다봤다.
게다가 시민단체인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공소장 미공개 결정을 놓고, 추 장관을 업무방해, 직권남용 등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한 상황이다. 당장 수사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지만 언제든 갈등이 불거지면 수사가 본격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