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전경. 사진=임준선 기자
현행법상 금융사에 대한 제재 권한은 금융위원회와 그 산하인 증권선물위원회에 있다. 다만 은행과 보험, 여신금융사 임직원에 대한 개인 제재는 문책경고 이하일 경우 금감원장 단독으로 행사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지난 3일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에 중징계인 문책경고를 확정했다. 이제 두 사람은 3년간 새롭게 임기를 시작하는 금융사 임원이 될 수 없다. 금융사 취업을 제한하는 제재는 자격에 대한 제한형인 셈이다(관련기사 낙하산 투하 최적 상태? 우리금융에 드리운 ‘관치’ 그림자)
금융기관검사 및 제재에 관한 규정 제18조에는 금감원장의 개인 제재 기준이 나열돼 있다. 요건을 보면 절묘하다. △감독원장이 금융관련법규에 의하여 요구하는 보고서 또는 자료를 허위로 제출하거나 제출을 태만히 한 경우 △직무상의 감독의무 이행을 태만히 하여 금융기관의 건전한 운영을 저해하거나 금융질서를 문란시킨 경우 △금융관련법규에 의한 감독원의 감독과 검사업무의 수행을 거부·방해 또는 기피한 경우 △금융위, 감독원장, 기타 감독권자가 행한 명령, 지시 또는 징계요구의 이행을 태만히 한 경우 △기타 금융기관의 건전한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를 한 경우 등이다. ‘태만’이란 추상적 표현이 많다. 자의적 해석 여지가 커 보인다.
금감원장의 인적 제재가 잘못에 상응하는 적절한 조치라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늘 제재를 받는 쪽에서는 억울하거나 지나치다고 느껴지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사법제도에서도 3심제를 택하고 있다. 그런데 금감원의 제재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하기는 어렵다.
개인 제재인 만큼 소송 과정에서 시간과 비용을 당사자가 감당해야 한다. 또 금감원은 언제든 금융회사를 검사하고 감독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검사·감독 결과 드러난 문제뿐 아니라 피검·피감 과정 자체도 문제 삼아 다른 임직원을 제재할 수 있다. 조직에 상당한 부담을 주면서까지 제재에 불복하기 어렵다. 과거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도 우리금융지주 회장 당시 받은 제재에 대한 행정소송을 하면서 KB금융지주 회장직을 내려놓은 바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일단 ‘찍히면’ 언제든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공포가 만연하다”며 “개인이 제재를 받았다고 금감원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DLF 사태 책임으로 금감원으로부터 중징계가 예상되는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 사진=최준필 기자
법적으로 상위 기관인 금융위원회가 금감원의 행위에 제동을 걸 수는 있다. 하지만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은 모두 임명권자가 대통령이다. 신분상의 제약을 가하기 쉽지 않다. 특히 소비자 보호를 명분으로 행한 금감원의 처분에 금융위가 간섭할 경우, 여론의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이번 DLF 제재에 대해서도 금감원 결정에 동조하는 여론이 상당하다.
국회에 계류 중인 금융소비자보호법까지 처리되면 금감원의 권한은 더욱 막강해질 수 있다. 금소법은 그동안 일부 금융상품에 한정해 적용하던 6대 판매규제(적합성 원칙·적정성 원칙·설명의무·불공정해위 금지·부당권유 금지·허위과장 광고 금지)를 원칙적으로 모든 금융상품에 적용, 위반 시 강한 제재를 부과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국내서는 처음으로 금융소비자의 권리 보장과 금융회사의 영업 형태에 대한 구체적인 제한을 가할 수 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따라서 금감원의 감독·검사 범위가 확대될 수 있다. 금감원은 최근 금융소비자보호처를 대폭 확대하면서 소비자 피해 예방 부문과 소비자 권익 보호 부문으로 구조를 재편했다. 그동안 사후적 조치에 주력했다면 앞으로는 예방활동에도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다.
DLF 사태를 계기로 금소법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자, 국회는 이 법을 소관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원회에서 급히 의결해 법제사법위원회로 넘겼다. 이어 여야는 2월 임시국회 개의에 합의했다. 금소법이 법사위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 실제 2월 임시국회가 열릴지 지켜봐야 하지만, 법안 처리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금소법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다.
금소법 통과는 금융소비자로서는 반길 일이지만, 금융회사로서는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지난해부터 소비자관련 조직을 신설·강화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