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 ||
빌 게이츠 사망 보도는 지난 4월4일 있었던 희대의 오보 사건이었다. 사건은 이날 오전 9시38분 MBC와 YTN, SBS 등 국내 방송사와 <오마이뉴스> 등 인터넷 언론들이 일제히 이 기사를 보도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이 기사는 세계적인 케이블 뉴스 방송인 CNN에서 보도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내 방송, 인터넷 언론에서는 특보형식으로 보도됐다. 물론 이 기사는 국내 경제계에 큰 충격을 던졌다.
그러나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 사건은 거짓이었다. 이 기사를 첫 보도한 인터넷 CNN은 가짜 사이트였다. 이 같은 사실은 국내 언론에서 보도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빌 게이츠가 멀쩡하게 생존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오보였음이 드러났다.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을 왜 죽었다고 보도한 걸까. 가짜 사이트까지 만들어 이런 일을 벌인 검은 손은 누구이며,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이런 의문은 이 사건이 지난 뒤에도 한동안 시중에 오갔다.
이런 가운데 최근 국내 금융계 일각에서 빌 게이츠 사망설은 조직적인 주가조작세력에 의해 꾸며진 음모였다는 얘기가 나돌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실제로 빌 게이츠 사망설이 퍼진 당일 주식시장은 장중 한때 8.54포인트가 빠졌다가 1시간 만에 보합권을 회복하는 등 요동을 쳤다.
금융계에서 의혹의 시선을 던지는 곳은 선물시장. 이날 선물시장의 경우 코스피 지수는 시초가 68.2포인트에서 67.86포인트로 급락했다. 또 국채선물의 경우에도 108.5포인트 수준에서 시작했다가 사망설이 나오면서 109.93포인트까지 치솟았다가 오보임이 밝혀지면서 108.87로 다시 내려왔다(국채선물은 악재에 상승한다).
▲ 지난 4월4일 빌 게이츠의 사망 소식을 전한 허위 사이트 화면. | ||
잔잔하던 시장에 던져진 ‘빌 게이츠 사망설’은 주식시장에선 당장 파급효과가 확인되지 않는 재료였지만 선물시장에선 큰 매매차익을 올릴 수 있는 대박급 호재였다. 때문에 빌 게이츠 사망설 오보 이후 주식시장에는 ‘특정 개인이 오보를 이용해 작전을 벌여 최소 수천억원대의 수익을 올렸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실제로 국내 방송사의 보도로 파문이 확대된 빌 게이츠 사망설은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빌 게이츠 사망설은 일부 경제신문의 인터넷판을 통해 만우절 무렵인 지난 3월31일에도 기사화됐다. 그때도 CNN 허위 사이트에 실린 ‘빌 게이츠 피살설’이 소스였다.
하지만 증시 일각에선 MBC나 YTN 등 주요 방송사의 보도는 만우절이 나흘이나 지난 시점에 이미 ‘구문’이 된 해프닝을 보도했다는 점에서 누군가 방송사를 속이기 위해 철저한 준비를 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4월4일 MBC는 9시38분께 CNN 인터넷판을 근거로 빌 게이츠 사망설을 보도했다. 이후 9시58분쯤 ‘빌 게이츠 회장 피살설은 사실무근, 처음 피살설을 게재한 CNN 사이트는 조작된 것으로 확인됐다’는 정정 방송을 했다.
눈길을 끄는 점은 MBC가 빌 게이츠 사망설을 보도하게 된 경위. MBC는 “CNN 닷컴이란 문구가 찍힌 팩시밀리가 회사로 전송돼 확인 절차 없이 서둘러 방송하다가 오보소동을 빚었다”고 해명했다. YTN이나 SBS 등도 비슷한 무렵 빌 게이츠 피살설을 보도했다가 정정 보도를 내는 등 곤욕을 치렀다.
석연치 않은 점은 두 가지다. 왜 만우절 무렵 나왔던 뉴스가 나흘 뒤에 재탕이 되었냐 하는 점과, 특정세력이 이 소식의 기사화를 바라며 언론사에 팩스로 밀어넣은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이미 ‘빌 게이츠 사망’이라는 ‘만우절 농담 재료’는 3월29일부터 떴었고, 국내 전산 관련 프로그래머들도 이런 소식을 4월1일 만우절 아침에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런 구문이 나흘 뒤인 4월4일 아침 방송을 타고 전국으로 중계된 것.
결국 ‘빌 게이츠 사망설’의 기사화를 위해 누군가 구체적으로 움직였다는 점이 뚜렷해지는 대목이다. 단순히 만우절 장난으로 했다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것. 방송사측이 밝힌 오보의 진원지 ‘http://cgrom. com/news/ law/gatesmurder /index.shtml’이란 주소는 주소창에 입력 실수로 갈 수 있는 주소는 아니다.
모 증권사에서 선물 거래를 전문으로 하는 백아무개씨는 “지난 4월 오보 당시 누군가 차액을 먹었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선물 거래의 특성상 누가 얼마나 먹었는지를 알아내기는 힘들다”고 밝혔다.
선물 거래를 전문으로 하는 그는 “요즘 선물시장은 돌발 변수가 없어서 큰돈을 벌기 어렵다. 그래서 선물시장에선 오히려 빌 게이츠 사망설 같은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터지기를 바란다”고 선물 시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로 오보 파문이 일어난 뒤 MBC 인터넷 사이트의 게시판 등에는 “오보로 인해 손실을 입었다”는 일부 투자자들의 글이 오르기도 했다. 주식 시장 일각에선 당시 오보 파문으로 돈을 먹은 투자 주체가 외국인도, 기관도 아닌 특정 개인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당시 외국인이나 개인들은 매도쪽으로 거래를 집중시켰다는 것. 따라서 이 거래로 돈을 번 세력이 바로 오보 파문을 조작한 세력과 관련이 있지 않느냐는 것.
이에 대해 백씨는 “두 세력의 상관 관계를 밝혀내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며 “그런 변수보다는 장관 등 고위 공직자들이 말조심을 하는 게 은밀한 뒷거래에 대한 소문을 잡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정 경제 사안에 대해 담당 장관이 ‘무심히 흘린 듯한 한마디’가 선물옵션시장에서 대박을 터트린 경우가 지난 정권 시절에 비일비재했다는 것.
정권이 바뀌고 나서 이런 일이 거의 사라져 요즘은 선물 시장이 너무 조용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북핵위협도 주식시장이나 우리 경제에는 악재지만, 큰 변화를 줄 수 있는 정치·경제변수라는 점에서 선물시장에선 대박급 호재가 된다.
한때 미국 국방부가 외국의 요인암살이나 테러 등 정치 경제적으로 중요한 사건 발생 가능성에 대해 선물 투자를 하는 온라인 선물시장 개설을 추진했던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였다. 정치·경제적인 돌발 변수를 예측해 이를 돈으로 연결시키는 프로그램인 것.
국내 선물시장 규모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시장으로 커진 것도 국내 주식시장 규모에 비하면 비정상적이다. 일부에선 선물옵션시장이 매도냐, 매수냐 단 두 가지만 맞히면 되는, 사행성이 큰 시장이라는 점이 국내 선물시장의 규모를 키운 것으로 보고 있다.
주식시장에서의 작전이 어려워지자 거래 개념규정이 복잡하고 관심이 덜 미치고 있는 선물옵션시장으로 작전세력이 옮아가고 있다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 마냥 흘러 넘길 수 없는 대목이다.
한편 금감원에선 이 사안에 대해 “조사 논의가 있었다”고 밝혔다. 다만 거래 규모가 워낙 방대하고 관련 거래의 선별과정이 어려워 구체적인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