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NC 다이노스 포수 4인방. 사진=이영미 기자
미국 애리조나 투산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양의지, 김태군, 정범모, 김형준의 훈련 모습은 화기애애했다. 양의지는 훈련 중간 중간 ‘아재 개그’로 힘든 훈련에 지친 선수들에게 웃음 폭탄을 선사하는 등 재미있는 분위기를 이끌었다. 125억 원의 몸값을 자랑하는 양의지가 NC에 입단하면서 주전 포수는 양의지가 맡는다. 양의지 외에 나머지 3명이 팀의 두 번째 포수로 낙점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
김태군은 군 입대 후 감독과 단장이 교체되는 걸 경찰야구단 소속 선수로 지켜봤고, 전역을 1년도 안 남긴 시점에 FA로 풀린 양의지가 NC에 입단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무리 김태군이 NC에서 5시즌 동안 주전 포수로 제 역할을 다했다고 해도 거액의 FA 계약을 맺고 NC 유니폼을 입은 양의지를 넘어설 수는 없었다.
2019시즌을 마치고 FA 자격을 획득한 김태군은 타 구단 제의를 뿌리치고 원 소속 팀에 남는 선택을 했다. 사진=연합뉴스
김태군은 2019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취득하면서 생존을 위한 이적을 모색했다. 실제 포수진이 약하다고 평가받은 롯데 자이언츠에서 김태군 영입에 나섰고 성민규 단장도 합리적인 금액을 제시했지만 협상이 틀어지면서 김태군의 선택지는 원 소속 팀인 NC밖에 남지 않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김태군은 생애 첫 FA의 기회를 맞아 처음에는 행복한 그림을 그렸다가 나중에는 일부 네티즌들의 비난이 가해지면서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토로했다.
“LG에서 백업 포수로만 머물다 신생 팀이었던 NC로 이적 후 김경문 감독님의 가르침 덕분에 프로다운 포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 감독님이 아니었다면 FA 기회를 얻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지난 시즌 군 제대 후 남은 FA 일수를 채웠을 때 감동이 물밀 듯했다. FA 시장에서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확인하고 싶어 FA를 신청했는데 현실은 기대했던 방향과 전혀 다르게 전개됐다. 롯데의 제안을 내가 거절했다고 알려지면서 정말 많은 비난을 받았다.”
김태군은 당시 상황이 ‘거절’이란 단어와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7시즌을 NC에서 뛴 그로서는 롯데의 제안을 받아들이기 전 NC와의 인연을 정리하는 데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한다. 마침내 김태군은 NC와 또 다른 인연을 이어가는 걸로 FA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
“경찰야구단 소속으로 있을 때 (양)의지 형이 NC에 입단하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을 내려놨다. 지금은 의지 형과 함께 뛰면서 부족한 부분을 배워가고 싶다. 팀에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다른 선수들과 경쟁을 통해 ‘넘버2’ 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1987년생 양의지와 동갑내기인 정범모는 2018년 3월 트레이드를 통해 한화 이글스에서 NC로 이적했다. 당시 김태군의 군 입대로 공백이 생긴 안방 자리는 먼저 선점한 선수가 주전으로 뛸 수 있었지만 정범모는 그해 타율 0.179, OPS(출루율+장타율) 0.540을 기록했고, NC가 시즌 종료 후 양의지를 영입하면서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렸다.
정범모는 2019시즌 양의지가 부상으로 자리를 비울 때마다 김형준과 함께 양의지의 공백을 대신했지만 경기 출전 수가 김형준(2019시즌 55경기 출전)에 비해 현저히 적은 편(2019시즌 25경기 출전)이다. 그로 인해 올 시즌 연봉이 6800만 원에서 5500만 원으로 1300만 원이나 깎였다. 정범모는 하락 폭이 있는 연봉과 관련해 “많이 속상했다”고 속내를 털어 놓으면서 “현실을 받아들이려 해도 경기 출전 기회가 적어 연봉이 오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2006년 신인드래프트 2차 3라운드로 한화에 입단한 정범모는 고교시절 미네소타 트윈스의 입단 제의를 받았을 정도로 공·수·주(공격·수비·주루)를 모두 갖춘 포수 유망주였다. 그런 그가 프로에서 ‘포텐(잠재력)’이 터지지 않은 배경에는 자신감 상실이 존재한다.
“이상하게 감독님, 코치님 눈치 보면서 기가 많이 죽었다. 신인 때 자꾸 지적받으면서 꾸중을 들으니까 나중에는 실수하지 않으려고 눈치를 보는 상황이 되더라. 그게 자신감 상실로 이어졌다. 돌이켜보면 그때 지도자의 질타가 두려워 소심하게 야구했던 부분이 가장 아쉽다. 욕먹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내 페이스를 유지했다면 최고의 선수는 못 됐어도 중간 정도의 레벨은 유지했을지 모른다.”
이동욱 감독이 정범모한테 요구했던 부분도 비슷하다. 주위 눈치 보지 말고 자신이 믿는 부분이라면 끝까지 밀고 나가라는 메시지였다고 한다.
“한화 시절 김성근 감독님 밑에서 엄청난 훈련을 소화했다. 김 감독님이 한화로 오시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모 아니면 도’라고 생각했다. 감독님이 시키는 대로 훈련량을 소화해내면 모가 될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도가 돼 있더라.”
그렇다고 해서 정범모가 남 탓을 하는 건 아니다. 결과의 원인은 자신이 기회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냉정하게 분석했다.
“만약 김태군이 군 입대로 자리를 비웠을 때 내가 그 기회를 잡았더라면 지금 주전으로 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못했기 때문에 팀에서 양의지를 영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범모의 2020시즌 목표는 좀 더 많은 경기에 나서는 것이다. 어차피 백업 인생이라면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다짐도 반복한다.
“(김)태군이가 팀과 FA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을 듣고 ‘내 것만 하자’고 마음을 비웠다. 후배 (김)형준이도 한창 성장하는 중이라 어쩌면 내가 가장 힘든 상황에 처할 수 있겠지만 불안과 초조함을 내려놓고 내가 할 일에만 집중할 것이다.”
프로 3년 차에 접어든 김형준은 이동욱 감독이 “양의지의 대를 잇는 대형 포수로 성장할 재목”이라고 평가할 만큼 NC 기대주다. 김태군이 NC와 FA 계약을 맺지 않았다면 ‘양의지-김형준’ 체제로 NC의 포수진이 구성됐을지도 모른다. 1999년생인 김형준이 가장 어려워하는 점은 선배들과 배터리를 이룰 때 투수를 리드하는 부분이다. 선배가 던지는 공과 관련해서 어떤 이야기를 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포수한테 가장 중요한 일이 투수와 교감이다. 처음에는 선배들한테 내 의견을 제시하는 게 무척 어려웠는데 지금은 조금씩 리드하는 상황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김형준은 지난 시즌 양의지가 부상당했을 때 포수 마스크를 쓰고 NC의 안방을 책임졌다. 그는 “의지 형의 부상은 안타까웠지만 내게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이 행복했고 감사했다”면서도 “체력적으로 좀 더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라고 말했다.
김형준은 ‘포수 왕국’으로 대표되는 NC에서 선배들과 경쟁이 때로는 부담스럽지만 후배라고 해서 양보만 하지는 않겠다고 다부진 각오를 다진다.
“실력이 뛰어난 선배들이 많지만 제대로 부딪혀 보고 싶다. 그런 부딪힘 속에서 내가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선배들한테 배울 건 배우고, 그 속에서 재미있는 경쟁을 펼치고 싶다.”
미국 애리조나=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