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총선 전까지는 수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기에 뚜껑은 열어봐야 한다는 반론도 나온다. 안 전 의원이 실용중도를 내세운 만큼 무당층 표심, 제3지대에서의 영역을 어떤 식으로 확보할 것이냐가 관건이다. ‘꿈꾸는 이상’과 ‘현실정치’ 사이, 안 전 의원의 과제가 숨어있다.
안철수 전 의원이 2월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정치혁신 언론인 간담회에서 신당 추진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안 전 의원은 2월 2일 신당 창당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의 ‘당권 담판’이 실패한 뒤 1월 29일 탈당 후 나흘 만에 신당 준비 깃발을 올린 셈이다. 실용적 중도노선을 기치로 한 신당은 3대 지향점으로 작은정당, 공유정당, 혁신정당을 내세웠다. 그는 “이념과 진영 정치를 극복하고, 기존 정당의 틀과 관성도 앞장서서 파괴하며 무책임한 정치를 구출시키고자 한다”고 말했다.
2월 2일은 4년 전 국민의당을 창당한 날짜와 같다.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것도 유사하다. 다만 ‘안철수’라는 브랜드는 과거와 달라진 상황이다. 이번 창당은 새정치민주연합(2014년) 국민의당(2016년) 바른미래당(2018년)에 이어 네 번째다. 창당과 탈당, 정치 휴업 및 재개 등 풍파를 겪으면서 ‘안철수=새정치’ 이미지는 퇴색했다는 평가다. 20대 총선에서 38석을 휩쓴 국민의당 지역기반인 호남도 민심이 상당수 이탈해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지 않다.
안철수 신당 앞에 험로가 예상되는 이유다. 신당 창당에 나설 때부터 주변에서는 ‘만만치 않은 길이 될 것’이란 우려가 높았다. 안 전 의원 측 한 관계자는 “신당 동력을 확보하는데 걱정은 되지만 일단 패를 던졌으니 가봐야 한다”며 “국민의당도 총선 직전까지 돌풍을 예상하진 못했다. 선거는 바람이다.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그 흐름을 신당이 반드시 타야 한다”고 말했다.
실용적 중도노선을 선언한 안 전 의원은 새로운 무기로 ‘투쟁하는 중도’를 들고 나온 모양새다. 제3지대에서 중도신당 ‘앙마르슈’를 차려 양대 정당과 투쟁하며 대권을 거머쥔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모델이 된 것으로 보인다. 안 전 의원은 최근 자신의 신간 ‘안철수, 우리의 생각이 미래를 만든다’에서 “기존의 두 거대 정당이 문제를 풀 것이라는 희망을 접은 프랑스 국민들은 새로운 미래를 고민했고, 마크롱이 주축이 된 실용적 중도 정당을 선택했다”고 썼다. 1월 30일에는 서울 서대문구 프랑스 대사관을 방문해 필립 르포르 대사와 만나는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안 전 의원 측은 과거와 달라진 점을 ‘명확한 독자노선’으로 꼽는다. 안 전 의원은 2016년 국민의당을 차리며 중도 색채를 강화했으나 앞서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 이력과 국민의당 지역기반인 호남이 맞물려 대체로 범진보로 분류돼왔다. 반면 이번엔 반(反) 문재인 노선을 내세우고, 보수통합에도 선을 그으면서 중도노선을 더욱 명확히 한 셈이다.
이로 인해 과거 범진보보다 조금 우클릭하면서 중도보수를 포괄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한 안철수계 의원은 “중도실용노선에 동의한다면 진보와 보수 모두 함께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중도를 명확히 잡고 실용중도 가치에 동의하는 세력을 받아들이겠다는 ‘안철수’ 중심의 야권 재편 구상이다.
여기까지는 안 전 의원의 정치적 이상이지만, 현실정치와 접목했을 때 과제들은 산적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른미래당에 잔류하고 있는 안철수계 의원들의 신당 합류다. 애초 손학규 대표가 퇴진을 거부하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미루면서 지역구 의원들의 연쇄 탈당, 비례대표 의원들의 ‘자체 제명’이 예상됐었다. 실제로 지역구 의원 탈당(이찬열, 김성식, 김관영)은 일부 이어졌으나 손 대표가 대안신당, 민주평화당 등 호남 지역 기반 정당과의 통합 추진을 선언하면서 일단 호남계 의원들은 이탈을 멈춘 상태다.
안철수 전 의원이 2월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안철수신당(가칭) 창당추진기획단 1차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7명 중 6명이 비례의원인 안철수계 의원들은 ‘비상’이 걸린 모양새다. 비례의원은 탈당하면 의원직을 잃고, 제명을 당해야만 당을 떠나더라도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다. 제명은 의원총회에서 3분의 2 동의를 받아야 한다. 지역구 의원들이 전원 탈당한다면 비례의원들의 자체 제명은 충분히 가능했었다.
하지만 통합 완성과 호남계 의원들이 잔류한다면 ‘자체 제명’은 어려워지고 결국 탈당해 신당에 합류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안철수 신당에는 안철수계 중 유일한 지역구 의원인 권은희 의원만 의원직을 유지하는 ‘원내 1인’ 정당에 머물 수 있다. 기호 10번을 달고 총선을 뛸 우려가 있는 셈이다. 이 와중에 2월 6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안 전 의원 측이 요청한 ‘안철수 신당’ 당명 사용에 대해 사전 선거운동 소지(공직선거법 위반)가 있다며 불허해 예상 밖의 난관도 생겼다.
연동형 비례제 도입으로 군소정당이 난립하는 상황도 안 전 의원 측에는 반가운 상황이 아니다. 세력 규합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새로운 세력을 국회로 진출시키겠다”며 총선 불출마까지 선언한 안 전 의원이지만, 인재 영입은 좀처럼 이뤄지고 있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새로운보수당 등이 인재 영입에 경쟁적으로 열을 올리는 탓에 정치권에 진출할 새 얼굴들이 거의 씨가 말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안 전 의원이 파고들 제3지대, 민주당도 한국당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은 상당한 영역에 분포하지만 안 전 의원 자체의 경쟁력이 예전만 하지 못하다는 지적은 또다시 제기된다. 한국갤럽이 1월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한 결과 무당층은 33%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실제로 중도 표심 존재가 확인된 셈이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지난 1월 17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1월 14∼16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를 보면 안 전 의원을 선호한다는 응답은 4%로 이낙연 전 국무총리(24%)보다 한참 뒤처졌으며 한국당 황교안 대표(9%)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러한 형국에서 안철수 신당을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도 회의적인 기류가 흐른다. 한국당 한 고위 관계자는 “노선에 대해선 다소 설득력이 있지만 이를 이끄는 주체들의 역량이 부족한 상태”라며 “당을 벤처 차리듯이 하면 안 된다. 벤처업계도 40대가 넘어가면 이미 옛날 사람이다. 안 전 의원의 이미지, 신당을 누가 얼마나 새롭게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국당 내에선 위기를 느낀 안 전 의원이 결국 보수통합에 참여하려고 하더라도, 타이밍이 상당히 늦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안 전 의원 측은 우려와 관계없이 신당 창당에 속도를 내고 있다. 2월 내 7개 시도당 창당을 거쳐 3월 초 중앙당 창당을 이뤄내겠다는 목표다. 안 전 의원 한 측근은 “신당에 합류하려는 세력이 날로 늘고 있다”며 “우려가 제기된다는 것은 그만큼 견제 심리가 발동했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권준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