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진그룹의 웅진에너지 매각 작업이 표류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중국 기업의 인수 가능성을 점쳤으나, 지난 1월 23일까지 인수 원매자를 찾지 못했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이 2018년 10월 29일 서울 종로구 종로플레이스에서 코웨이 인수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웅진그룹은 태양광 사업 진출을 위해 2006년 미국 태양광업체 썬파워와 합작해 웅진에너지를 설립했다. 설립 이후 썬파워에 잉곳을 납품하며 순항했으나, 썬파워는 2011년 웅진에너지 보유 지분을 전량 매각하며 합작사에서 발을 뺐다. 그러나 웅진에너지는 2016년까지 썬파워와 잉곳 장기공급계약이 체결돼 있어 썬파워와의 이별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나아가 웅진그룹은 2012년 2월 핵심 계열사이자 캐시카우인 웅진코웨이 매각을 발표하면서 태양광 사업 부문에 집중해 웅진에너지를 글로벌 수준으로 성장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이미 웅진폴리실리콘(폴리실리콘)과 웅진에너지(잉곳‧웨이퍼)를 통해 수직계열화를 이뤄놨던 만큼, 지속적으로 태양광 사업에 투자해 승부를 보겠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웅진그룹은 태양광 사업 육성 의지를 밝힌 지 6개월 만인 2012년 8월 그룹 구조조정 차원에서 웅진폴리실리콘을 매각키로 했다. 사실상 폐업상태로 매각이 추진된 웅진폴리실리콘은 지지부진하던 끝에 2017년 매각됐다. 그 사이 남아있던 웅진에너지는 실적이 곤두박질쳤다. 중국 업체들의 저가공세를 버티지 못하고 국내 잉곳‧웨이퍼 생산 기업이 철수하거나 파산해, 웅진에너지는 자연스럽게 국내 유일 제조사가 됐다.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지난해 웅진그룹이 재인수 3개월 만에 웅진코웨이를 다시 넷마블에 넘겨야 했던 배경에도 웅진에너지의 경영난이 한몫했다. 웅진그룹이 웅진코웨이를 재인수한 직후 웅진에너지가 감사의견 거절을 받으며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감사인은 “웅진에너지가 2018년 당기순손실 1117억 원을 기록했고, 유동부채가 유동자산보다 1226억 원 초과하고 있어 계속기업으로의 존속능력에 대해 의문을 초래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업계에서는 매물로 나온 웅진에너지를 국내보다는 해외 업체가 인수할 것으로 내다봤다. 800억 원에 달하는 매각가(청산가치 798억 원)를 감당하며 웅진에너지의 기술 경쟁력을 탐낼 곳이 국내에는 없다는 판단에서다. 국내 기업보다는 가격하락을 버텨내며 치킨게임 하고 있는 중국 기업이 인수 후보군으로 거론됐다. 중국은 상위 10대 기업을 중심으로 태양광 산업을 재편해 국가 산업경쟁력 강화의 한 축으로 육성하고 있다.
그러나 웅진에너지에 인수 의향을 밝힌 원매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중국 정부가 해외 기업 인수로 인한 자본유출 통제를 강화하고 있고 웅진에너지가 구조적으로 원가경쟁력에서 뒤처지기 때문이다. 한국태양광협회에 따르면 잉곳과 웨이퍼 전체 원가에서 전기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30%. 중국 정부는 태양광 업종에 세제 혜택 등의 지원을 통해 전기료를 한국의 30~40% 수준으로 낮췄다. 웅진에너지 입장에서 중국 업체의 저가공세를 막아낼 방법이 현실적으로 없는 셈이다.
한국태양광협회는 이 같은 웅진에너지 상황을 우려하며 지난해 4월 정부 지원을 요청하는 호소문을 내기도 했다. 협회는 호소문을 통해 “밸류체인 중 어느 한 곳이 무너지면 전 밸류체인이 무너지는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며 “웅진에너지가 문을 닫는다면 우리나라는 곧바로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 업체들이 국내 셀과 모듈 제조 기업에 비싼 가격으로 납품할 경우 전체 태양광 제품단가가 치솟아 국내 태양광 제조업 경쟁력이 무력화될 것이라는 우려다. 태양광산업의 밸류체인은 태양전지의 원재료인 폴리실리콘을 시작으로 ‘잉곳‧웨이퍼→셀→모듈→시스템’으로 이어진다.
웅진에너지가 갖고 있는 기술력에도 의문부호가 찍히고 있는 점도 매각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당장 중국 기업들과의 차별화가 어렵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중국 업체들의 잉곳‧웨이퍼 분야 기술력이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라 그를 압도하기 쉽지 않다는 것.
강정화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웅진에너지에 대해 “제조단가 차이가 워낙 커 현 시스템으로는 중국 대비 가격경쟁력을 높이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경영정상화가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밸류체인 다양화 관점에서 웅진에너지의 회생이 필요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가격적인 측면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어려운 문제다. 좋은 기술로 중국 기업을 압도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오래된 기술이라 더 차별화할 방법이 나오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련 업계에서도 웅진에너지 매각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태양광 업계 관계자는 “중국발 공급과잉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2년께부터 이어져왔고, 밸류체인마다 시기만 달랐지 결론적으로 세계 시장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면서 “가격은 계속 폭락하고 공급과잉이 이어져 안타깝지만 웅진에너지의 현 상황은 예견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태양광에 집중 중인 대기업 한화의 경우 셀과 모듈 쪽으로 집중하고 있어 큰 메리트가 없다. OCI도 수직계열화를 염두에 두지 않은 데다 상황이 좋지 않아 새로운 투자여력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태양광 사업을 영위중인 기업들보다는 사모펀드(PEF)에서 인수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당장 웅진에너지의 경쟁력이 불확실해 기업들이 바로 가져가기는 부담스럽다”며 “사모펀드 등에서 접근해 잔존가치를 확인하고 구조조정 등을 통해 정리 작업을 거치고 나면 기업들이 관심을 가질 가능성은 있다”고 전했다.
한편 매각주간사인 EY한영회계법인은 재매각을 추진할 계획이다. EY한영회계법인 관계자는 “매각에 대한 의지가 있어 재매각 일정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구체적인 일정은 협의 중”이라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