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이용허락과 양도의 차이
저작권의 구성 요소 가운데 하나인 저작재산권은 통상적으로 기한을 정해 그 기간 동안 ‘이용을 허락’하는 형태로 계약이 진행되지만, 다른 구성요소인 인격권과는 달리 재산인 이상 일정 액수를 한 번에 받고 모든 권리를 제3자에게 ‘양도’하는 형태의 계약도 가능하다. 흔히 금액을 일괄 지급한 뒤 무기한으로 재산권을 독점 양도 받는 방식을 ‘매절’이라 부른다. 문학사상사의 ‘이상문학상’은 무기한은 아니고 3년이라는 조항을 두고 있으나 3년이면 대중의 관심이 멀어질 만한 충분한 시간이다. 심지어 ‘이상문학상’은 작가가 수상작을 개인 단편집에 실을 때에 표제작으로조차 내세울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었다 한다.
한데 저작권 양도는 결단코 해선 안 될 악습이 아니라 저작재산권 계약 방식 가운데 하나다. 저작자들 입장에서는 기간을 정한 이용 허락을 통해 저작물에 관한 권리를 직접 통제하고 계속해서 수익을 창출하는 편이 당연히 좋지만, 저작물의 성격과 작가의 선택에 따라서는 매절 계약이 맞을 때가 일부 있다. 그래서 매절 계약은 단순히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저작물을 활용하려는 제3자가 저작물의 성격을 어떻게 보느냐와 저작자를 어떻게 대하고 있느냐, 그리고 액수를 얼마나 제시하느냐라는 문제로 귀결된다.
판매량에 따른 수익 분배(인세)인가 저작재산권 양도인가가 명확하지 않은 계약을 체결한 경우, 법원 판례는 일괄 지급한 대가가 판매량에 따른 분배를 훨씬 초과하는 고액이라는 소명이 없는 한 양도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서울민사지법 1994.6.1. 선고94카합3724). 문제는 저작재산권 양도임이 명확한 계약을 체결한 경우다. ‘구름빵’의 백희나 작가가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한다.
#‘구름빵’ 소송이 저작자에게 불리한 까닭
백희나 작가는 ‘구름빵’ 계약 당시 “저작인격권을 제외한 지적재산권 등 일체의 권리를 한O교육에 양도한다”라는 양도조항이 포함된 계약을 맺었다. 이 조항이 들어간 계약서 때문에 백희나 작가는 ‘구름빵’의 흥행에도 지원금을 포함해 1850만 원을 받은 것이 전부인 상황을 맞았다. 문학사상사의 ‘이상문학상’ 또한 기한이 3년일 뿐 저작권 양도라는 측면에서는 마찬가지였다. 작가들이 이를 거부하고 절필 선언을 함으로써 출판사가 사실상 백기를 드는 수순으로 이어졌을 뿐이다.
백희나 작가가 블로그에 밝힌 바에 따르면 신인이 누구나 그러하듯 데뷔작을 세상에 내어놓고 싶었던 저작자였고, 3분의 1 정도 작업이 진행된 상황에 계약서를 쓰게 되어 다른 곳을 알아볼 여지도 없던 상황에 저작권 양도 조항이 적힌 계약서에 별다른 항의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당시 출판사 담당자는 “초짜라 뭘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한숨을 쉬었다 한다. 말인즉 이 포괄적 저작권 양도는 신인에게는 당연하다는 듯 적용되는 업계 관행이라는 이야기다.
계약 당시 정황과 조건이 저작자에게 지극히 불리함에도 법원이 출판사 및 연관 업체들의 손을 들어준 까닭은 명확하다. 계약서에 관련 조항이 명확히 있고 백희나 작가가 여기에 서명(또는 날인)했기 때문이다.
저작권을 양도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분위기가 압도적인 상황에서 다른 선택지마저 없을 때 밥상을 결연히 뒤집어엎는 결기를 누구나가 지니길 바랄 순 없다. 김금희 작가는 상을 엎었지만, 백희나 작가는 16년 전 그러지 못했고 그 결과는 지금과 같다. 작가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가 보겠다”며 남은 의지를 모으고 있지만 사실심이 아닌 법률심, 즉 사건을 따지기보다 선심의 법률적 오류를 따지는 대법원 재판의 특성상 끝까지 쉽지 않은 여정이 될 터임은 분명해 보인다.
#‘합법의 탈’을 쓴 현장의 압박을 막아라
이 사태가 백희나 씨 개인의 문제일 수만은 없다. 분야를 막론하고 저작물을 만들어내는 문화예술 저작자들이 이런 ‘합법적으로 불리한’ 계약 조건 앞에 숱하게 서고 있기 때문이다. 만화와 사진을 비롯한 숱한 공모전 요강을 보면 정말 얼마 되지도 않는 상금에 수상작의 저작권은 모두 주최 측에 귀속된다는 조항을 걸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부 글 잡지 매체들은 연재물의 저작권을 매체가 ‘공동 소유’하겠다는 조건을 내걸기도 하는데, 노쇠한 출판 편집인들의 경우 놀랍게도 이용 허락이라는 계약 조건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왕왕 있는 마당이다. 이들에게 표준계약서를 준수하라는 요구는 현실을 모르는 소리로 치부되기 일쑤다. 포괄적 저작권 양도를 비롯한 문제를 막기 위한 법률 개정안이 필요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서 발의된 관련 법안(노웅래 발의)은 국회 본회의 통과가 요원한 채 총선 정국에 묻히고 있다.
그나마 한국 만화계는 키O툰을 비롯해 옳지 않은 계약 조건을 내세웠던 업체들에 작가와 업계가 대응한 사례가 쌓여 있고 대표 단체인 한국만화가협회가 표준계약서를 제정하고 ‘만화웹툰 공정계약 가이드’를 내놓는 등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꾸준한 움직임을 보여 왔다. 하지만 모든 문화예술의 문제는 다른 업계와도 밀접한 연결점을 지니며 영향을 주고받는다. 단순히 “나쁜 계약서에는 서명하지 말아야 하며 서명한 이상 저작자의 책임이다”로는 특정 당사자의 결기만을 요구할 수밖에 없고, 상황을 바꿀 수 없다. 백희나 씨를 비롯한 저작자들에게 응원과 연대 의지를 보이는 것과는 별개로, 이제 이러한 조건을 들이미는 쪽이 손해가 되게끔 법을 바꾸는 데에 모든 분야 문화예술인의 힘을 모아야 할 때다.
만화칼럼니스트 iam@seochanhw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