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전도연은 19일 개봉하는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서 ‘연희’라는 강렬한 캐릭터를 맡아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이 아닌 역할이 신선하고 새롭게 다가왔어요. 저뿐 아니라 다른 분들도 굉장히 신선해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백두산’에 출연할 때도 굳이 주변 사람들한테 이야기를 안 했는데 ‘뭐예요?’ ‘왜 나와요?’ 그러더라고요(웃음). 그런 걸 보고 관객들도 새롭게 여기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일단 (전도연에게 주어지는 작품들이) 부담스럽잖아요. 저 이제 부담스러운 작품을 좀 그만하고 싶거든요(웃음).”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전도연은 소탈하면서도 거침없는 모습이었다. 이제는 이름 석 자 앞에 놓이는 타이틀도, 그에 따르는 부담감도 조금 내려놓고 싶다는 그는 대중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가고 싶은 마음을 숨김없이 보이기도 했다.
“‘칸의 여왕’이라는 말은 좀 부담스럽죠. 이제는 칭찬이 칭찬일까 싶기도 하고(웃음)… 이번 ‘지푸라기’도 로테르담 영화제에 출품된다고 했을 때 ‘영화제와 전도연’ 하면 관객들이 또 무겁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제게 칭찬을 해주시는 건 제 개인에게 좋은 일이고 또 너무 감사하죠. 다만 관객들에게 그게 부담스럽게 다가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서 전도연은 정우성과 첫 호흡을 맞췄다.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연희는 시나리오로 이미 강렬하게 완성된 캐릭터예요. 저도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 정도로 만들어져 있는 캐릭터기 때문에 제가 연희의 비하인드 스토리라든가 캐릭터에 대한 고민을 덜했던 것 같아요. 최대한 부담스럽지 않게 있는 그대로 하자고 생각해서 큰 고민은 없었어요. 일단 등장부터 부담스러울 정도로 세기 때문에 연희를 연기하면서 ‘연기에는 힘을 빼자, 자연스럽게 하자’고 생각했고. 힘은 연기가 아니라 의상으로 좀 줬죠(웃음).”
극중 전도연이 맡은 연희와 정우성이 맡은 ‘태영’은 애증으로 점철된 연인 사이다. 같은 업계에서 유명한 두 남녀 배우가 데뷔 후 첫 호흡을, 그것도 연인으로 맞춘다는 점에서 개봉 전부터 이목이 집중되기도 했다. 앞서 인터뷰를 진행한 정우성은 ‘지푸라기’가 “전도연이 정우성이라는 배우를 많이 알아가는 과정”이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정우성의 ‘찌질한 호구’ 캐릭터에 처음에는 놀랐지만, 촬영이 진행되면서 서서히 적응했다는 것이다. 전도연도 이 말에 이견이 없었다.
“정우성 씨랑 첫 촬영이 그 식탁 신이었는데 정말 쑥스럽더라고요(웃음). 사실은 정우성이 구현하는 태영의 캐릭터가 궁금했는데, 연기하는 걸 보고 당황스러웠던 것도 사실이에요. ‘진짜 저렇게까지 내려놔도 괜찮아?’ 할 정도로(웃음). 한편으로 정우성이란 배우에게는 ‘너무 잘생긴 배우’라는 선입견이 있고 저도 그 모습에 익숙했는데 참 다양한 모습이 있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다음 작품도 같이 하고 싶다고 했는데 자기 작품에 저를 캐스팅 안 한 거예요. 왜 안 해주냐고 하니까 제가 할 역할이 없다고 다음에 같이 하재요(웃음). 지켜봐야죠.”
정우성과 연인으로 첫 연기를 마치고, 다소 아쉬웠던 점은 이후에 다시 만나게 될 때 채우자는 것이 전도연의 이야기다. 다만 둘이 만난다면 멜로보다 ‘로맨틱 코미디’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도연은 ‘코미디’라는 장르에 이전부터 관심을 보여 왔고, 무엇보다 멜로는 다른 친구와 찍고 싶기 때문이란다.
전도연은 함께 ‘멜로’를 찍고 싶은 배우로 박서준을 꼽기도 했다.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마침 그의 인터뷰 전날인 지난 10일은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영화계에 새 역사가 쓰인 참이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4관왕에 오른 것. 101년을 맞은 한국 영화 역사상으로도, 92년 아카데미 역사에서도 최초의 기록이다.
앞서 한국인 최초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으로 역사를 장식했던 전도연의 감회는 남달랐을 터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감회가 남다른 게 아니라 깜짝 놀랐다”며 대중이 느낀 감동을 자신도 온전히 받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진 대답에서 흥분의 기색을 감추지 못한 것만 봐도 그렇게 보였다.
“칸에서 (황금종려상) 수상하셨을 때 봉준호 감독님하고 송강호 씨에게 축하한다고 문자를 보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우와… 축하한다는 말조차 안 나올 정도로 놀랐어요. 진짜 역사적인 순간이었잖아요. 당연히 탈 것이라곤 생각했지만 정말 너무 놀라웠어요. 다른 세상이나 다른 나라 이야기 같은데 그게 현실인 거죠. 문자를 못 보낸 것도 ‘이런 일을 두고 축하한다는 말로 되겠나’ 싶었던 거예요(웃음).”
‘기생충’ 덕에 한참 달아오른 국내 열기가 그대로 영화관으로 직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탓에 상승 기류를 제때 타지 못하고 있는 ‘지푸라기’를 포함해 다른 영화들에도 안타까운 마음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2월 12일 개봉 예정이던 ‘지푸라기’도 이런 상황 탓에 일주일 뒤로 개봉을 연기해야만 했기에 더욱 대중의 관심이 절실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도연은 다소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마음가짐의 문제”라고 정리했다.
“사실 이런 사태가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제가 이런 말을 하니까 누가 저보고 재난본부 관계자 같다고 하시던데(웃음), 우리는 사스와 메르스를 다 겪어왔고 이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를 맞닥뜨린 거잖아요. 코로나를 지나서도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으니 ‘이게 지나가면 우리는 괜찮을 거야’가 아니라 계속해서 준비를 해야 하는 문제지, 시기적으로 (개봉이) 적절한지 여부를 가리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답이 없더라도 준비를 안 한 것과 한 것의 차이는 있을 테니까요. (완전히) 좋아지진 않아도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