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성수 금융위원장. 사진=박은숙 기자
# 뒷짐 지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금융위
금감원은 이번 우리금융그룹과 하나금융그룹 경영진을 제재하면서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을 적용했다. 은행들이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를 위반했다며 그 근거로 금융회사지배구조법 24조(금융회사는 임직원이 준수해야 할 기준과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를 들었다. 이에 따라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우리은행장 겸임)과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전 하나은행장)은 금감원으로부터 중징계인 문책경고를 받았다. 은행권 최고경영자(CEO)가 이 사유로 중징계를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당초 이번 DLF 사태가 불거진 직후엔 자본시장법이 적용될 것으로 전망됐다. 지배구조법은 통상 들여다보지 않은 영역이라 검토 대상에도 오르지 않았고, 은행 본점 차원에서 전방위적 불완전 판매가 확인된 만큼 징계도 자연스럽게 불완전 판매 쪽에 맞춰질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지배구조법이 적용되면서 금융위는 뒷짐만 지고 금감원 결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지배구조법 제35조를 보면, 지배구조법을 위반한 금융회사 임원에게 금감원장이 중징계인 문책경고, 경징계인 주의적경고와 주의 등의 조치를 전결로 처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반대로 자본시장법(438조)이 적용되면 자본시장법을 위반한 임원 제재는 주의적경고와 주의 수준의 징계만 금감원이 내릴 수 있다. 문책경고, 직무정지, 해임요구 등의 중징계는 금융위가 결정하게 된다. 같은 문책경고라도 어떤 법령을 적용하는지에 따라 징계 확정 주체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자본시장법을 잣대로 삼았다면 금융위에서 징계 수위를 최종 판단할 수 있었지만, 지배구조법이 적용되면서 금감원 선에서 은행 최고 경영진의 거취가 결정됐다. 실제 윤석헌 금감원장은 지난 2월 3일 징계를 전결로 최종 확정했다. 결과적으로 금융정책 전반을 책임지는 금융위가 은행장 징계에선 사실상 배제되고, 일부 영업정지와 과태료 등의 결정만 하면 되는 모습이 연출됐다.
체면을 구긴 금융위 문제뿐만 아니라 금융권 안팎에선 지배구조법 24조 적용이 적절했느냐는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이 법령에는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그 기준을 위반한 이유로 제재를 내려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이에 대해 금융위 내부에선 “금감원이 내세운 ‘내부통제 기준 마련 미비’ 논리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상황에서 사실상 ‘강행’하는 수준의 조치를 내렸고, 결과적으로 또 다른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 우리금융과 손태승 회장 측은 징계가 최종 통보되면 금감원의 지배구조법 적용을 문제 삼아 행정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다. 금융사 임원이 금융당국으로부터 중징계를 받고도 버틴 전례가 없었던 만큼 “손 회장이 선을 넘는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반대로 최근 금융권에선 손 회장이 ‘무리해서’ 금감원과 전면전을 벌인다고 보기는 어렵고, 소송도 손 회장 쪽이 불리하지만은 않다는 관측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최근 외국계 금융사 CEO 오찬 간담회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금감원의 금융위) 패싱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패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다만 이 발언에 앞서 “금감원과 생각은 다를 수 있으나”라는 전제를 붙였고, 금감원장 전결권이 지나치게 넓게 해석됐고 남용될 위험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 “매일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무엇이 합당하고 적절한지는 조금 더 생각해 봐야겠다”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금융위는 시간을 끌지 않고 최대한 빠른 결정을 내릴 방침이다. 2월 12일 증권선물위원회 심의를 시작으로 의결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증선위는 과태료 부과 여부를 의결하고, 이후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주재하는 금융위 정례회의에서 최종 결정이 내려진다. 예정대로 절차가 마무리되면 오는 3월 초 결론이 나올 전망이다. 다만 앞선 금감원 제재심이 3차례 열렸고, 우리금융과 하나금융이 적극적으로 소명하고 있는 만큼 증선위와 금융위 회의가 하루 만에 끝날지, 아니면 몇 차례 더 회의를 열지는 미지수다.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 겸 우리은행장. 사진=최준필 기자
# 우리금융 민영화도 안갯속
우리금융 민영화 문제도 있다. 우리금융은 지난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금융회사 구조조정 과정에서 12조 8000억 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고, 지분매각 등으로 지금까지 총 11조 1000억 원을 회수했다. 이후 남은 지분 매각 시기를 제대로 잡지 못해왔던 만큼 금융위는 지난해 6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간 나머지 우리금융 지분 17.25%를 분산 매각해 민영화 작업을 완전히 마무리 짓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불과 한 달 뒤 DLF 사태가 불거지고 징계가 결정되면서 매각 스텝이 꼬였다. 지주사 체제를 이끌어 오던 손태승 회장의 연임 여부가 불투명해지면서 ‘CEO 리스크’가 불거졌고, 우리은행도 일부 업무정지 6개월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수익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금융위가 의결을 통해 징계를 확정하는 순간, 지난해 세운 완전 민영화 계획은 틀어질 수밖에 없다. 민영화 작업만 떼고 보면 금융위가 ‘자충수’를 두는 모양새가 된다.
우리금융지주의 최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도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우리금융 한 주당 최소 1만 3050원 이상으로 팔아야만 투입된 공적자금을 완전히 회수할 수 있다. 우리금융 주가는 지난해 2월 지주사로 재상장할 당시만 해도 1만 5000원 선을 기록했다. 그러나 DLF 사태가 불거진 7월부터 1만 1000원대로 떨어졌고, 이후 최근까지 1만 원 안팎을 오가고 있다. 현재 주가 수준으로 남은 지분을 매각하면 예보는 약 3000억 원대 손실을 본다.
우리금융 이사회에는 비상임인사로 정부 측 인사, 즉 예보가 추천한 인사 1명이 포함돼 있다. 과점 주주들로 구성된 우리금융 이사회는 금감원 결정 직후에도 손 회장 연임에 힘을 실어줬다. 예보 쪽도 지주사 체제를 이끌어 온 손 회장이 민영화 과정에서 우리금융 가치를 올렸다고 평가하며 연임을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예보 관계자는 “구체적인 잔여 지분 매각 시기가 정해진 건 아니다”라며 “현재 주가 수준으로는 완전한 공적자금 회수가 어렵지만 3년의 시간이 있는 만큼 시장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