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알리가 지난 9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한 영상을 게시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를 언급하며 동양인 남성을 촬영한 것이다. 이를 향해 일제히 비판이 가해졌고 알리는 동영상을 급히 삭제했다. 이후 사과를 전했지만 비판 여론이 형성된 뒤였다.
알리의 일탈은 동료 손흥민이 차별행위를 당한 뒤였기에 더욱 충격을 안겼다. 지난 2일 맨시티를 상대로 골을 넣으며 2-0 승리를 거둔 이후 손흥민은 방송사 인터뷰 도중 기침을 했다. 이를 보고 일부 현지 팬들 사이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 아니냐’는 발언이 나왔다. 이에 더해 손흥민을 제외한 선수들의 입에 마스크가 씌워진 모습을 합성한 사진까지 돌고 있는 상황이다. 단순히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부적절한 멍에가 씌워진 것이다.
코로나19가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로 번지고 있다. 손흥민을 제외한 선수들의 입에 마스크가 씌워진 합성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유럽 축구계 팽배한 인종차별
알리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유럽 축구계에서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과 경각심은 여전히 부족해 보인다. 알리가 영국에서 논란을 일으킬 무렵, 스페인에서도 인종차별 행위가 이슈로 떠올랐다.
지난 9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에스파뇰과 레알 마요르카의 프리메라리가 경기에서도 인종차별 이슈가 불거졌다. 일본 출신 선수 쿠보 다케후사의 교체 투입을 위해 그를 부르던 마요르카의 피지컬 코치가 눈을 양쪽으로 찢는 행동을 한 것이다. 스페인축구협회는 이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눈을 찢는 제스처는 동양인을 향한 대표적인 인종차별 행위다. 그간 수많은 축구 스타나 관계자들이 이 같은 행동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과거 호나우두(브라질), 카카(브라질),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 등 남미 스타들이 주로 한국이나 일본 등 아시아 국가를 방문해 눈을 찢는 행동을 했다.
남미 문화권에선 ‘동양인을 향한 친근감의 표시’라는 주장이 있지만, 논란을 낳으며 ‘인종차별 행위’라는 인식이 생기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눈을 찢는 행위는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축구계 ‘신성’ 발베르데는 최근 인종차별 제스처 탓에 한국 팬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번 시즌 유럽 축구계에서 가장 뜨거운 선수 중 한 명은 레알 마드리드 미드필더 페데리코 발베르데(우루과이)다. 만 21세의 어린 미드필더가 맹활약하면서 시즌 초반 흔들리던 팀을 정상 궤도에 올려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독 국내 팬들의 지지는 받지 못하고 있다. 2017년 한국에서 열린 U-20 월드컵에 참가해 눈찢기 세리머니를 펼쳤기 때문이다.
#‘스타’ 손흥민도 피할 수 없었던 인종차별
수년째 유럽 정상급 리그에서 활약하며 세계 팬들의 사랑을 받는 스타 손흥민도 인종차별을 피할 수 없었다. 그간 손흥민은 수차례 인종차별의 대상이 돼왔다. 2018년 10월 런던에서 한 중년 남성이 손흥민을 향해 “혹성탈출(영화) DVD가 있느냐”고 물었다.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불법복사 DVD를 판매하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이 남성에게는 2019년 5월 벌금 판결이 내려졌다.
2019년 12월 7일은 손흥민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번리 FC와 리그 경기에 선발로 나선 그는 전반 32분 약 70m 거리를 단독 드리블로 돌파하며 골을 넣었다. 소속팀 조세 무리뉴 감독은 물론 축구계 인사들에게 극찬을 받은 골이다.
동시에 인종차별 행위를 당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다. 그가 환상적인 골을 만들어낸 그 경기를 관중석에서 지켜보던 13세 소년이 손흥민을 향한 인종차벌 제스처를 취한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소년이 구체적으로 어느 시점에 어떤 행위를 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그가 즉시 경기장에서 퇴장을 당했고 보호자와 함께 경찰 조사를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인종차별과 싸우고 있는 축구계
축구계는 각종 인종차별을 몰아내려 노력한다. 국제축구연맹(FIFA)도 관련 캠페인을 끊임없이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기만 하다. 흑인 선수들을 향한 인종차별 행위가 발생했다는 소식은 새삼스럽지도 않을 정도.
경찰 조사, FA(잉글랜드축구협회) 징계 등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는 영국과 달리 이탈리아 세리에A 상황은 더 심각하다. 숱하게 일어나는 인종차별 행위가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보다 감각을 무디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우려가 나온다.
2019년 12월 세리에A 사무국은 인종차별 반대 캠페인과 함께 원숭이 그림을 공개했다가 팬들에게 십자포화를 맞았다. 사진=연합뉴스
마리오 발로텔리(이탈리아)도 수차례 인종차별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원숭이를 흉내내는 관중들의 소리를 들어야 했다. 축구계 대표 ‘악동’으로 독특한 정신세계를 자랑하는 발로텔리조차 인종차별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벤치에 주저앉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렇다 할 징계가 내려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는 세리에A에서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는 이유로도 지목되고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인터밀란으로 이적하며 이탈리아에서 데뷔 시즌을 치르고 있는 공격수 로멜루 루카쿠(벨기에)는 이탈리아 생활 1년을 채우기도 전에 이탈리아축구협회로부터 아스토리 어워드(페어플레이상)를 받았다. 리그 데뷔 초반부터 인종차별 구호를 수차례 들은 그는 적극적으로 “강경 대응” 소신을 펼쳤다. 인종차별 문제를 주요 화두로 떠오르게 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루카쿠의 수상은 명문 리그로 불리는 반면 끊임없는 인종차별 행위로 ‘축구계 문제아’로 지적받는 이탈리아 무대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징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인식 변화는 요원해 보인다. 2019년 12월 세리에A 사무국은 인종차별 반대 캠페인을 벌이며 자국 예술가의 그림을 공개했지만 이는 오히려 각계각층으로부터 십자포화를 맞는 계기가 됐다. 색상이 다른 세 마리의 원숭이 얼굴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