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4관왕에 올랐다. 사진=연합뉴스
봉 감독은 대구 남구 봉덕동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초등학교에서 3학년까지 다녔다. 이점을 부각하며 한국당 예비후보들이 ‘봉준호 박물관·동상·거리’ 등을 만들자는 공약을 앞다퉈 쏟아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들은 물론 지역 문화예술계 인사들까지 자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민주당 예비후보인 이재용 전 환경부 장관(중남구)은 이번 수상과 관련 2월 11일 미국 워싱턴포스트 기사를 인용해 “박근혜 정부가 약 1만 명에 달하는 블랙리스트를 작성했고 당시 정부 내부 문건에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은 경찰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영화, ‘괴물’은 반미주의 영화, ‘설국열차’는 시장경제를 부인하고 사회적 저항을 부추기는 영화로 평가돼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런 와중에 대구지역 한국당 예비후보들이 일제히 봉준호 마케팅 공약들을 쏟아냈는데 이들이 집권했던 시기 ‘블랙리스트’로 낙인을 찍었던 영화인에 대한 최소한의 반성과 사과,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이 국민들의 감동에 무임승차하려는 몰염치한 행태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난했다.
이어 보수정권의 블랙리스트에 대해 과거 봉 감독이 “한국 예술가들에게 깊은 트라우마에 잠기게 한 악몽 같은 몇 년이었다”고 전한 프랑스 한 언론과의 인터뷰 내용도 덧붙였다.
같은 당 허소 예비후보(달서 을)도 12일 “한국당 예비후보들이 봉 감독과 관련한 ‘영혼 없는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면서 “봉 감독과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석고대죄해야 할 것”이라고 거들었다.
이어 “‘문화예술계 주요 좌성향 인물 B등급’, ‘전형적인 좌파 영화’, ‘패러사이트(기생충) 같은 영화는 보지 않는다’고 비난하던 태도를 눈 한번 깜짝하지 않고 180도 바꾸는 모습이 참 볼썽사납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봉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세계적인 공감과 찬사를 이끌어 냈던 것은 빈부격차와 사회 불평등, 자본주의 폐해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방증”이라며 “영화가 한국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들춰 냈다면 이제 정치권에서는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의락 의원(북구 을)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래서 대구는 출향인들도 외면하고 있다”며 쓴소리를 했다.
앞서 봉 감독의 아카데미상 4관왕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국당 대구지역 총선 예비후보들이 앞다퉈 봉 감독과 대구와의 인연을 강조한 공약을을 쏟아내자 대구 문화예술계를 중심으로 ‘기생충스런 반응’이란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대구 달서 병에 예비후보로 등록한 한국당 강효상 의원(비례)은 최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영화박물관을 설립해 영화를 문화예술 도시 대구의 아이콘으로 살려야 한다”며 ‘봉준호 영화박물관’ 건립을 제안했다.
특히 봉 감독이 태어나 자랐다는 중남구 지역 한국당 예비후보들의 공약이 두드러졌다. 배영식 예비후보는 “봉 감독이 태어나 성장한 남구 봉덕동 생가터 주변 지역을 ‘봉준호 영화·문화의 거리’로 지정하고 주변을 카페거리로 조성해 중구의 ‘김광석 거리’와 연계시켜야 한다”면서 ‘봉준호 생가터 복원, 봉준호 동상·영화 기생충 조형물 설치’ 등을 약속했다.
이 지역 같은 당 장원용·도건우 예비후보도 봉 감독이 1969년 대구에서 태어나 자신들의 지역구인 남구의 남도초등학교 3학년까지 다닌 점을 부각하면서 ‘명예의 전당, 영화박물관, 독립영화 멀티상영관, 가상현실(VR) 체험관, 봉준호 아카데미’ 등을 유치하겠다고 공약했다.
곽상도 의원도 봉준호 마케팅에 끼어들었다. 곽 의원은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영화 불모지나 다름없는 대구에서, 특히 영화관이 없는 남구에서 태어나 세계에 이름을 떨친 봉준호 감독은 대구의 자랑이고 한국의 자랑”이라고 치켜세웠다.
이어 “2016년 국회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지역 간 문화 격차를 줄이고 보편적 문화 향유를 보장하기 위해 남구에 작은 영화관 도입을 추진한 바 있다”면서 “현재 남구 미군부대 부지를 활용해 대구 대표도서관 건립이 추진중인데 이 건물 4층에 영화와 공연 등을 관람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구지역 문화예술단체 인사들은 “대구에서 비수도권 영화제에 나가 상을 탄 분들이 많았지만 조명하지 않았다. 정치인들이 봉준호에 기생할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생충스런 반응이다. 영화는 보셨는지 모르겠다”며 쓴소리를 냈다.
김성영 기자 ilyo0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