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조선중앙TV가 1월 30일 방영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소식. 평양국제공항 직원이 마스크를 쓴 모습. 사진=연합뉴스
탈북민 박 아무개 씨는 최근 북한의 코로나19 방역 조치와 관련해 “북한이 국경을 완전히 폐쇄했다”고 했다. 그는 “압록강과 두만강 접경지대에는 꾸준히 중국과 러시아를 들락날락하는 북한 주민들이 있다”면서 “코로나19가 확산됨에 따라 북한이 국경을 폐쇄했는데, 자국민들 역시 국경폐쇄로 오갈 곳이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박 씨는 “최근 지인인 북한 주민 한 명이 러시아로 나갔다가 입국을 하지 못해 여비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다른 대북 소식통도 “북한 당국이 외국으로 출국했거나 국경 밖으로 나간 자국 주민들에 대한 입국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최근 면역력이 약해진 김정은이 코로나19에 두려움을 느껴 북한 당국이 방역에 상당히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있다”고 했다.
북한은 코로나19 대책의 컨트롤타워로 국가계획위원회를 낙점했다. 북한이 코로나19 방역에 각별한 신경을 쓰는 것으로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국가계획위원회는 북한의 경제정책 기획 및 수립, 지도·감독을 총괄하는 내각 중앙행정기관이다. 이 조직은 북한 경제 분야의 총참모부 역할도 한다. 핵심 조직을 코로나19 방역 작전에 투입시킨 셈이다.
2월 9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신형 코로나 비루스(바이러스) 감염증을 철저히 막자’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국가계획위원회가 이 사업(방역조치)을 대중적인 사업으로 확고히 전환시켜 힘있게 진행해나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보도에 따르면 국가계획위원회는 전국적으로 구성된 비상방역지휘부를 조직했다.
노동신문은 “(국가계획)위원회에선 우선 모든 일꾼과 정무원(공무원)들, 종업원들 속에 신형 코로나 비루스 감염증을 철저히 막는 것이 국가의 안전, 인민의 생명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깊이 인식시키기 위한 사업을 앞세웠다”고 덧붙였다. 다른 탈북민은 “북한 당국이 상당한 경각심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코로나19가 북한에 유입될 경우 안 그래도 위태로운 북한 경제가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조치”라고 분석했다.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바이러스의 증상과 예방대책을 교육하는 장면을 1월 31일 북한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국제적십자사·적신월사연맹(IFRC)는 2월 7일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중국 접경지에 코로나19 방역을 도울 자원봉사자 500명을 긴급투입했다”고 밝혔다. 자원봉사자들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접경지역 주민들 거주지를 방문해 위생선전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와중에 일부 북한 선전매체들은 코로나19 확산을 밑거름 삼아 자체 개발 의약품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모양새다. 2월 10일 북한 선전매체 서광은 “조선(북한)의 약물생산 단위들(라인)에서는 신형 코로나 비루스 감염증에 대한 예방 대책을 철저히 세우기 위한 긴급조치의 하나로 항비루스 작용이 뚜렷한 ‘우엉 항비루스 물약’을 많이 생산하기 위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고 했다. 이 매체는 우엉 항비루스 물약이 여러 전염병의 예방 효과를 봤다고 주장했다. 우엉 항비루스 물약은 2016년 평양 선교구역 남신종합진료소 의사들이 한의학식으로 개발한 항바이러스제다.
이 매체는 조선개성고려인삼과 국소 마취제 프로카인이 포함된 ‘금당-2’의 사용을 적극 권장하는 뉘앙스로 보도를 이어갔다. ‘금당-2’는 조선부강제약회사에서 만든 면역활성제다. 몇몇 북한 매체에서는 “인삼 추출 당체에 미량의 금·백금을 첨가해 제조했다”면서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에도 효과적인 만병통치약”이라고 ‘금당-2’를 소개하고 있다. 북한 매체들이 주장하는 우엉 항비루스 물약, 금당-2의 효과와 관련해 국내 복수 의료 전문가들은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발표된 북한 내 코로나19 확진 사례는 없다. 북한의 대외 선전매체 ‘메아리’는 “방역사업을 저해하는 행위들을 엄격히 감독·통제함으로써 신형 코로나 비루스 감염증이 절대로 우리나라(북한)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며 북한 내 코로나19 확진자가 없다고 했다. 2월 12일 기준으로 북한은 주민의 코로나19 확진 여부와 관련해 아무런 발표도 하지 않았다. IFRC도 2월 7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북한 내 코로나19 확진 여부를 밝히지 않았다. 세계보건기구(WHO)에도 공식적으로 보고된 바가 없다.
북한 국가품질감독위원회 직원들이 평양국제공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차단을 위해 외국에서 들어오는 사람과 물자를 대상으로 방역 활동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2월 1일 북한 조선중앙 TV 방영 장면. 사진=연합뉴스
이처럼 당국의 공식적 발표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북한 내부에선 코로나19 확진자 사망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는 2월 7일 북한 내부 소식통 발언을 인용해 “북·중 국경지역에서 북한 주민 5명이 원인을 알 수 없는 고열로 돌연 사망했고, 북한 당국은 기밀 유지를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2월 12일 데일리NK는 다시 한번 북한 내부 고위 소식통 발언을 인용해 “현재까지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은 평양에서만 3명”이라면서 “추가로 코로나19 확진자 18명이 제3인민병원에 격리돼 있다”고 보도했다. 데일리NK가 인용한 소식통은 “북한 보건당국은 최근 사망한 20대 중국 유학생이 바이러스를 전파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19 확진자 사망설이 퍼지자 북한 당국은 통제를 더욱 강화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 주재 외교관들에 대한 감시 강화도 그 중 하나다. 2월 4일 러시아 타스통신은 “북한 주재 모든 외국인은 2월 20일까지 대사관 건물에 머물러야 하며 평양 외교관들은 현재 반감금 상태”라고 보도했다. 타스통신은 “북한은 모든 외국인 외교관들의 출입을 통제함과 동시에 평양 내 호텔·상점·식당·공공장소에서의 대외국인 서비스를 모두 중단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또 다른 대북 소식통은 “최근 김정은이 외무성에 ‘평양에 주재하고 있는 외국인 대사들을 검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귀띔했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의심 증세를 보이는 외교관들에게 임시 추방 조치라는 강경 대응까지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북한 당국이 파견한 의료진이 각국 대사관에 들어가 검진을 시작했다고 한다.
신의주청년역에서 열차를 소독하는 북한 위성방역 관계자. 2월 2일 북한 조선중앙 TV 방영 장면. 사진=연합뉴스
북한에서 의사로 일하다 탈북한 한 아무개 씨는 “코로나19가 확산될 경우 북한 지방 지역 전체가 사각지대”라고 주장했다. 한 씨는 “북한은 북·중 접경지대와 평양을 코로나19로부터 사수하려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면서 “북·중 접경지대는 국경봉쇄로 통제하고, 평양은 군 병력을 동원해서 주민 유입을 차단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지방에 사는 북한 주민들은 갑작스레 코로나19에 직격타를 맞을 가능성이 존재한다”면서 “누가 코로나19에 걸려 죽더라도 그저 돌림감기(전염병)로 치부될 것이 자명하다. 북한 당국은 이런 사실들을 숨기려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씨는 “북한이 가장 취약한 부분이 바로 보건”이라면서 “북한의 보건 시스템은 봉건시대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그는 “맥주병을 소독해 식염수를 타서 정맥주사를 놓는 정도니 북한의 보건 체계가 어느 정도인지 한국 국민들은 실감하지 못할 것”이라며 “북한 당국이 정확한 통계 수치를 발표할 리는 만무한 상황에서 북한 주민들은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는 처지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나도 북에 친척들을 두고 왔는데 그들의 건강이 심히 우려된다”고도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