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20일 고위 당정청회의에 참석한 이낙연 전 총리와 추미애 장관. 사진=박은숙 기자
“둘 중 한 명은 사고 치지 않겠나.”
최근 여권 내부에 흐르는 기류다. 여권 관계자들이 콕 집은 두 인사는 이 전 총리와 추 장관이다. 이 말에는 긍정과 부정의 의미가 모두 담겼다. 둘 중 한 명이 포스트 문재인 자리를 꿰차도, 중도 낙마해도 사고라는 얘기다. 오는 2022년 대선은 이 전 총리의 마지막 승부처다. 재기는 없다. 추 장관은 차기 대선과 함께 강력한 차기 서울시장 후보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제20대 대선 한 달 뒤인 6월 1일에 치러진다.
이 전 총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차기 대권주자다. 첫 승부처는 21대 총선이다. 그는 일찌감치 ‘정치 1번지’ 서울 종로에 출격, 떠밀려 출마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제치고 선점 효과를 누렸다. 더불어민주당의 종로 수성을 위한 기선 제압에는 성공한 셈이다. 이 전 총리가 종로 입성에 성공할 경우 ‘차기 당권→차기 대권주자’ 플랜은 즉시 가동될 전망이다. 다만 측근 사이에서도 당권 도전에 대한 의견이 분분, 이 전 총리가 8월 민주당 대표 경선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추다르크(추미애+잔다르크)는 ‘청와대 대 검찰’ 갈등 정국의 중심에 섰다. ‘조국보다 더 센 장관’이라는 평가를 받은 추다르크는 검찰 인사 과정에서 윤석열 검찰총장 손발을 잘랐다. 검찰과의 갈등에 기름을 부은 것은 ‘청와대 하명수사·선거개입 사건(하명수사)’ 공소장에 대한 비공개 결정이다. 추 장관은 2월 4일 하명수사 사건 피의자 13명에 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공소장 제출 요구를 단칼에 거부했다. 검찰의 70장짜리 공소장 대신 3장 요약본만 공개했다.
명분은 ‘개인의 명예와 사생활 침해=잘못된 관행’이었다. 야권은 일제히 총공세에 나섰다. 한국당에선 ‘문재인 탄핵’ 발언까지 꺼냈다. 여권 지지 기반인 참여연대 등 진보진영 내부에서도 비판이 터져 나왔다. 추 장관은 이 과정에서 “정치적 부담은 감내하겠다”(공소장 자료제출 범위에 관한 법무부 입장 설명자료)는 소신을 밝혔다. 민주당은 “나쁜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해식 대변인)”이라며 지원 사격에 나섰지만, 내부에선 “대형사고”라는 반응도 나왔다. 이른바 ‘2009년 추미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의 재림’이다. 추 장관은 당시 한나라당(현 한국당)의 노동 관련 법안을 반대한 민주당 의원들을 봉쇄하고 법안을 강행 처리했다. 민주당 지지층이 한동안 추 장관을 비토한 이유도 이런 까닭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월 9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눈여겨볼 대목은 쌍두마차를 둘러싼 ‘여권 세력화의 새판 짜기’다. 이 전 총리와 추 장관은 동교동계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두 인사 모두 DJ가 발탁했다. 이 전 총리는 동아일보 기자 시절인 1987년 대선 때 DJ 마크맨이었다. 2000년 16대 총선 땐 전남 함평·영광에 출마, 60.2%의 득표율로 원내 진입했다. 추 장관은 그보다 앞선 1996년 15대 총선 때 서울 광진을에 출마해 43.8% 득표율로 당선, ‘첫 여성 판사 출신’ 국회의원 타이틀을 얻었다. DJ가 정계 은퇴를 번복하고 1995년 7월에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에서는 부대변인을 맡았다. 이들은 노무현 정부 시절 열린우리당 창당에 합류하지 않고 ‘꼬마 민주당’에 남았다.
하지만 이들은 ‘원조 동교동계’는 아니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전략적 공조 내지 전략적 거리 두기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낙연 대망론’이 부상하기 전 민주당과 동교동계의 연결고리 역할은 추 장관이 종종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총리 측근에 포진한 동교동계 인사 일부도 추 장관이 가교 역할을 했다. ‘이낙연 대망론’ 부상 이후에는 동교동계 포지션이 이 전 총리 쪽으로 기울었다. 이 전 총리가 당 복귀를 하루 앞둔 1월 14일 서울 여의도에서 동교동계 원로인 정대철 전 의원과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을 만난 것이 대표적이다. 정 전 의원은 이 자리에서 ‘조직’의 중요성을 강조한 뒤 “총선 과정에서 의원들을 도와주고 친해지는 것이 급선무”라고 조언했다.
정치 입문 20년간 ‘자기 세력’을 구축하지 않은 이 전 총리에 대한 현실적 조언이었다. 포스트 문재인 구축의 필수 조건이 ‘NY(이낙연) 계파’ 형성에 있다는 얘기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이 전 총리는 원래 세 구축을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당으로 복귀한 이 전 총리가 7명의 총선 예비후보자의 후원회장을 자처한 것도 동교동계 원로의 이 같은 조언과 무관치 않다. 정대철 전 의원과 이 전 총리는 DJ 정부 때인 새천년민주당 시절 ‘당 대표와 비서실장’ 관계였다. 이들은 이 전 총리 재임 기간에도 총리 공관에서 막걸리 회동을 할 정도로 막역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 전 총리와 동교동계는 당분간 ‘전략적 공조’ 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 이들의 조합은 세력이 없는 이 전 총리와 부활을 노리는 동교동계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결과다. 동교동계 움직임도 빨라졌다. 좌장인 권노갑 전 의원은 최근 부쩍 정대철 전 의원 사무실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한때 퇴물 취급당한 동교동계도 마지막 승부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과정에서 당 주류와 동교동계가 지분 다툼을 벌일 경우 ‘이낙연·동교동계’ 조합은 깨진다. 이 전 총리와 동교동계의 관계가 전략적 공조 선에서 그칠 것이란 관측도 이런 배경에서 비롯된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2월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평창문화공간을 찾아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당권파와 동교동계의 ‘지분 다툼’은 5년 전에도 있었다. 이는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 내분→선거 참패→문재인 흔들기→분당 사태’로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새정치연합 당권을 잡은 지 3개월 만에 치른 2015년 4·29 재·보궐 선거에서 동교동계는 ‘6 대 4’ 지분을 요구했다. 비문(비문재인)계 주축이었던 ‘정동영·천정배’ 등이 탈당한 이후의 일이다. 권노갑 전 의원은 ‘재보선 지원 반대’ 뜻을 거두면서 문 대통령에게 “주류 60%와 비주류 40%를 배합하는 게 관행”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교롭게도 당시 동교동계 원로들을 제어한 것은 추 장관이었다. 당 최고위원이던 추 장관은 2015년 4월 8일 당 최고위원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동교동계의 지분 요구에 대해 “(나눠 먹기가) 과연 옳은 것이냐”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추 장관과 동교동계의 악연은 이뿐만이 아니다. 추 장관은 민주당 당권을 잡았던 2016년 11월 15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을 깜짝 제안했다. 당 내부는 추 장관의 돌출 행동에 또다시 발칵 뒤집혔다. 화들짝 놀란 추 장관은 반나절 만에 영수회담 제안을 철회했다. 당 주류 사이에선 추 장관이 김민석 전 의원을 앞세워 동교동계 출신인 한광옥 당시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과 핫라인을 만들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당 공식기구를 ‘패싱’하고 비선 조직을 가동했다는 것이다.
2016년 8·27 전당대회에서 ‘추미애 카드’를 전략적으로 밀었던 친문계는 격노했다. 당권을 잡은 지 4개월 만에 대형 사고를 쳤기 때문이다. 더구나 당시는 탄핵 정국이었다. 시민사회단체 내부에선 “추미애가 탄핵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비판했다. 추 장관은 당 대표직을 친노(친노무현) 좌장인 이해찬 대표에게 넘긴 뒤 ‘첫 여성 국회의장’, ‘차기 서울시장’, ‘차기 대권’ 등을 놓고 고심하다가 차기 플랜의 징검다리인 법무부 장관직을 받았다. 최근 트러블 메이커를 자처하는 추 장관의 직진에는 ‘2016년 8·27 전당대회 재연’ 포석도 깔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쌍두마차의 ‘당내 우군 확보전’은 여권 권력구도의 분수령이다. 추 장관은 임기 마지막까지 검찰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문재인 수호’ 작전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최상의 시나리오는 ‘친문계와 추다르크’의 재결합이다. 반면 이 전 총리는 친문계 지지를 넘어 당내 NY계 만들기에 사력을 다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엔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에서 가장 앞선 만큼, 친문계도 전략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판단이 깔렸다. 친문계 한 의원도 “당 주류 중 누가 이 전 총리만큼 지지도를 얻고 있느냐”라고 반문했다. 자기 세력 구축에 나선 이 전 총리와 친문계에 손을 뻗은 추 장관 중 최후에 웃는 자는 누구일까. 이 비밀열쇠에 차기 총선·지방선거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