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런 ‘미공개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이들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1995년 결혼한 뒤 2003년 ‘살인의 추억’으로 큰 성공을 거둘 때까지 봉준호 감독은 생활고로 힘겨웠다. 대학동기가 쌀을 가져다 줬을 정도다. 그 시절 봉준호 감독은 결혼식 비디오 촬영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렇게 ‘봉준호표 결혼 비디오’가 여럿 존재할 테지만 소장자(?)들은 그 사실을 모를 가능성이 높다. 당시엔 누군지 모를 알바생이 촬영한 결혼 비디오였을 뿐이니.
봉준호 감독은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천변풍경’ 등의 작품으로 알려진 고 박태원 작가가 그의 외할아버지다. 봉 감독의 부친은 고 봉상균 전 영남대학교 미대 교수다.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로 국립영화제작소 미술실장으로 근무하며 영화계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
작품상 시상자 제인 폰다가 “기생충”을 발표하는 순간 봉준호 감독의 부인 정선영 씨가 환호성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모습이 현지 언론에 포착됐다. 사진=LA타임즈 에이미 카우프먼 트위터 캡처
봉준호 감독의 부인 정선영 씨도 시나리오 작가다. 대학 시절 영화 동아리에서 만나 결혼에 이르게 됐다. 두 사람의 연애 시절 에피소드는 영화 ‘기생충’의 중요한 얼개가 된다. 봉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제 여자친구가 이미 거기(부잣집)서 국어 과목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수학도 선생이 필요하다고 하니까 나를 소개해 줬다. 그 집에”라고 언급한 바 있다.
봉 감독은 “1998년 즈음에 집사람에게 ‘올 한 해 1년만 달라. 그동안 모아둔 돈이 있으니깐 1년 치 생활비는 된다. 그래서 1년간 나는 올인하겠다’라고 했다”고 한다. 부인의 대답은 “좋다, 못 먹어도 고!”. 그렇게 ‘플란다스의 개’가 탄생했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정 씨는 주목을 받았다. 봉 감독은 각본상을 수상하며 “언제나 많은 영감을 주는 제 아내에게 감사하다”고 부인에 대한 마음을 표현했다. ‘기생충’ 시나리오로 상을 받으며 시나리오 작가인 부인이 준 영감에 감사함을 표현한 것. 봉 감독은 과거 한 인터뷰에서 “영화광인 아내는 나의 첫 번째 독자였다. 대본을 완성하고 그녀에게 보여줄 때마다 너무 두려웠다”고 말했다.
부인 정 씨 역시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 미국 LA 돌비극장에 있었다. 정 씨는 미국 배급사 네온 관계자 등과 함께 객석 1층 뒤편에 앉아 있었다. 작품상 시상자 제인 폰다가 “기생충”을 발표하는 순간 정 씨가 환호성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모습이 현지 언론에 포착되기도 했다. 기쁜 마음에 부둥켜안은 이는 아들 봉효민 씨다.
아들 봉효민 씨 역시 영화감독이다. YG엔터테인먼트 자회사 YG케이플러스의 웹무비 프로젝트 에피소드 ‘결혼식’을 연출했고 ‘1987’ ‘골든슬럼버’ ‘PMC:더벙커’ ‘옥자’ ‘리얼’ 등의 영화에도 참여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