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보사들은 지난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당시 손해율이 낮아지면서 수익이 개선됐던 상황이 재현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재난에 준하는 상황인 만큼 겉으로는 일체 수익에 관한 이야기를 삼간 채 속으로만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불안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인천 중구 인천국제공항에서 여행객들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입국장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설 연휴가 끝난 직후였던 지난 2월 첫 주말, 삼성화재·현대해상·KB손해보험·DB손해보험·메리츠화재 등 이른바 ‘빅5’ 손해보험사에 접수된 교통사고 건수는 총 2만 2387건으로 집계됐다. 설 연휴 직전 주말인 1월 말 교통사고 건수 2만 9771건에 비해 24.8%나 줄어든 수치다.
손해보험업계는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우려로 외부 활동이 줄면서 차량 사고 건수도 덩달아 감소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당시는 코로나19 확산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던 시기였다. 중국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수가 1만 명을 넘었고, 사망자도 250명을 돌파했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3차 감염이 확인됐다.
공포가 번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외출을 자제하자 자동차 운행횟수가 줄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교통사고 감소로 이어졌다. 교통사고가 날 때마다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손보사 입장에서는 나가는 돈이 확 줄어든 셈이다.
실제로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주요 손해보험사의 1월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83.5~96%로 나타났다. 메리츠화재가 83.5%로 가장 낮았고 삼성화재, 현대해상, KB손해보험, DB손해보험 등이 각각 96%, 90.5%, 90%, 90%를 기록했다. 지난해 누적 손해율이 100%를 넘었던 롯데손해보험과 MG손해보험도 1월 손해율이 각각 94.5%, 92%로 나타났다.
지난 연말 주요 손보사의 손해율이 100%를 훌쩍 넘었던 것을 감안하면 큰 폭으로 줄어든 수치다. 지난해 12월 기준 삼성화재 손해율은 104.3%였고 현대해상, KB손해보험도 각각 100.3%로 100%를 넘었다.
업계에 따르면 통상 1월 손해율은 연말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라고 한다. 하지만 예년에는 소폭 감소하는 수준이었던데 반해 올해는 10~20%포인트 줄어 감소폭이 크다는 설명이다. 한 손해보험사 관계자는 “올겨울에 눈이 적게 내린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1월 말로 갈수록 차량 운행 자체가 줄었다는 통계가 있다”면서 “아무래도 코로나19의 영향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손보사들은 자동차 보험과 더불어 경영에 가장 큰 부담을 안기는 실손의료보험 손해율도 줄어들 것으로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무려 3800만 명이 가입한 실손의료보험의 손해율은 평균 130%에 이른다. 1만 원의 보험료를 받고 1만 3000원을 지급하고 있는 구조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일부 보험사들은 실손의료보험 가입을 꺼리고 있는 실정인데, 손보사들은 내심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손해율 부담에 다소 숨통을 틔워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확진자들이 다녀간 병원들이 공개되고 전국 각지 병원에서 의심환자들을 진단하고 있어 병원 가기를 망설이는 환자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의료당국 역시 “불필요한 의료기관 방문을 삼가달라”고 당부하면서 병원 방문을 더욱 꺼리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과잉진료 등으로 몸살을 앓았던 손보사들도 진료비 청구가 줄어들 전망이다.
손보사들은 이미 2015년 메르스 사태 발발 당시 보험사의 손해율이 크게 개선된 경험을 갖고 있다. 메르스는 2015년 5월 국내 첫 환자가 나오면서 시작돼 6월부터 3개월간 확산됐다. 금융권에 따르면 당시 5~8월 대형 보험사들의 손해율은 0.5%포인트 떨어졌던 것으로 집계됐다. 그때도 병원 내 감염 등을 우려한 소비자들이 외출을 자제한 것은 물론 메르스가 종식되고 나서도 위생을 위해 손을 잘 씻는 습관이 남아 겨울 독감 환자 수가 줄어드는 등 장기보험 손해율도 뚝 떨어지는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렸다.
증권가에서는 이미 손보사들의 이익개선을 점치는 보고서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정준섭 NH투자증권 연구원은 2월 초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장기 위험손해율 개선의 단초를 제공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적어도 올해 1분기에는 장기 위험손해율 개선 효과가 일부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준섭 연구원은 “메르스 확산은 국가적인 불행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손보사에는 반사이익으로 작용했다”며 “당시 병원내 감염에 대한 우려로 병의원 방문이 줄어들면서 손보사 장기 위험손해율이 크게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손해보험 업황 악화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의료비 급증에 따른 장기 위험손해율 상승”이라며 “근본적인 업황 개선은 다소 시간이 걸리겠으나, 이번 코로나19가 손보사에 단기 호재로는 작동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영업 측면에서는 타격이 예상된다. 특히 현장에서 고객과 직접 만나는 보험설계사들은 비상이 걸렸다. 고객들이 여러 사람과 접촉하는 설계사와 만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손보사들의 보험모집 계약에서 설계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88%나 된다.
다른 보험사 관계자는 “솔직히 말하자면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이라면서 “손해율 등 비용이 줄어든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상황이 길어져 대면영업이 타격을 입으면 말짱 도루묵이 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시점”이라고 전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