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天馬): 150×118cm 한지에 혼합재료 2014
자신만의 독창적인 표현 방식을 갖는 일. 작가라는 이름을 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꼭 도달하고 싶은 목표다. 예술가에게 표현방식은 말투와도 같다. 남과는 구별되는 말투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기억에 남게 된다. 그래서 작품으로 드러나는 결과물을 ‘표현 어법’이라고 말한다.
화가의 표현 어법을 결정짓는 것은 무엇일까. 회화적 요소인 점, 선, 면, 색채와 이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짜임, 즉 구성이 그것이다. 여기에 붓이나 물감을 비롯한 여러 가지 재료가 연출하는 다양한 표정이 덧붙여지게 된다.
회화란 결국 무엇을 그리든 이런 것들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그림이 되느냐 안 되느냐로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창적 회화는 남들이 생각하지 않았거나 못하는 재료와 방법으로 자신만의 표현 어법을 만들었을 때 나온다고 하겠다.
어머니 생각: 32.5×22.5cm×9ea 한지에 혼합재료 2019
이런 표현 어법에서 사람들은 감동을 찾아낸다. 좋은 작품의 척도는 바로 감동의 정도에서 나온다. 작품이 주는 감동은 어디에서 올까. 손맛이 아닐까. 땀내 나는 솜씨가 사람들의 가슴을 두드려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요즘 우리 미술계에서는 이런 울림을 주는 작품을 만나기가 어렵다. 어쭙잖은 아이디어, 국적이 불분명한 팝아트, 대중문화에 편승하는 얄팍한 감수성, 깜짝 쇼를 위한 충격요법. 이런 것들로 버무려진 정체불명의 미술이 대세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을 거슬러서 자신만의 미술 언어를 탐구하는 작가를 만난다는 것은 분명 소중한 시각 경험이다.
김정민의 작업이 그렇다. 장인의 자세로 진득한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전통 미술에서 방법을 찾아내 이 시대 감성 언어로 바꾸는 작업을 보여준다. 진정한 ‘법고창신’의 정신을 실천하는 작가다.
김정민은 붓글씨와 전각 그리고 탁본 기법을 고루 사용해 국적이 분명한 우리 미술 언어를 찾아가고 있다. 그동안 산수화나 문인화 기법을 바탕으로 현대 회화의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작가들은 있었다. 그러나 서예나 전각, 탁본 기법에서 회화 언어를 찾으려는 시도는 극히 드물었다. 이런 점에서 김정민의 작업 태도는 더욱 소중해 보인다.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54×54cm 한지에 혼합재료 2018
서예에서 출발한 그의 작업은 언뜻 보면 새로운 형식을 탐구하는 현대 서예 작품 같아 보인다. 전각으로 형상을 새기고 탁본 기법으로 다듬어낸 작품은 솜씨 좋은 현대 판화처럼도 느껴진다.
그러나 그가 추구하는 것은 서예의 구성미와 뜻, 전각의 고졸한 미감, 탁본의 미묘한 손맛 그리고 문인화의 화면 구성을 조합해 자신만의 회화 언어를 창출하는 일이다. 공력이 짙게 묻어나는 손맛으로 신선한 우리 미감을 보여주는 김정민 회화는 그래서 우리 마음에 울림을 준다.
전준엽 화가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