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등재판부 의미는 좋은데…
서울고등법원은 최근 사무분담위원회를 열고 고법 부장판사 사무분담을 확정했다. 가장 주목을 끈 것은 대등재판부. 고법 부장판사 1명과 고법 판사 2명으로 이뤄진 3인 재판부에서 고법 부장판사 3명으로만 이뤄진 대등재판부를 확대했다.
서울고법은 사무분담을 통해 대등재판부를 기존 2개에서 4개로 증설했다고 밝혔다. 기존 민사12부(부장판사 천대엽, 김환수, 이승한)와 행정1부(부장판사 고의영, 이원범, 강승준)에, 민사25부(박형남, 윤준, 김용석 부장판사)와 행정4부(김재호, 이범균, 이동근 부장판사)를 더했다. 이 가운데 민사25부는 전주지방법원장을 역임한 박형남 부장판사, 수원지방법원장을 역임한 윤준 부장판사, 서울행정법원장을 역임한 김용석 부장판사까지 법원장 출신으로만 구성되는 첫 사례이기도 하다.
1명의 재판장과 2명의 배석판사가 존재하는 재판부가 익숙한 모습이지만 이제는 고법 부장판사 3명으로만 이뤄진 대등재판부가 확대되고 있다. 1심 법원에서도 재판장을 번갈아가면서 맡는 경력 대등부가 늘고 있다. 사진=JTBC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홈페이지
서울고법 측은 이런 대등재판부 확대가 “수평적 관계의 재판부 구성과 운영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3자 합의를 구현함으로써 재판의 적절성과 충실성을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승진제가 폐지됐기 때문에 생긴 흐름의 한 맥락이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사법연수원 25기 전까지만 해도 승진이 존재해서 ‘재판장’은 승진한 고등부장판사의 몫이었지만 이제는 승진 제도가 사라져 누가 재판장을 맡을지 애매해졌다. 서로 돌아가면서 재판장을 맡는 것이 더 확대될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고등법원뿐 아니라, 1심에서도 경력 대등재판부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법원은 2019년부터 서울중앙지법, 의정부지법, 인천지법, 수원지법, 대전지법, 대구지법, 부산지법, 광주지법,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등 전국 9개 법원에서 총 23개(민사합의 2개, 민사항소 15개, 형사항소 6개)의 경력 대등부를 구성해 시범 운영하고 있다.
전반적인 인사 적체로 인한 불가피한 흐름이라는 설명이다. 변호사 시장이 위축되고 퇴직자가 줄어들면서 부장판사 비율이 증가한 탓에 대등재판부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서울 재경지역의 한 부장판사는 “한 명의 부장판사가 재판장을 맡고, 나머지 두 명의 배석판사와 삼각 피라미드 형태로 상하관계가 형성됐었다면, 이제는 부장판사 3명이 한 재판부에 들어가야 할 만큼 인사 적체가 심각하다”며 “단독 재판을 할 수 있는 7~8년 차 판사들을 배석만 시킬 수 없지 않은가. 1심에서도 재판장을 번갈아가면서 맡는 경력 대등부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마냥 좋지만은 않은 반응들? 이유는?
그렇다고 모든 판사들이 이런 흐름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평판사들끼리 모여서 투표로 결정하는 민주주의적 의사 결정이 확산되면서 판결문으로 대표되는 업무량 조정은 적지 않은 갈등 요인이 되고 있다.
고등법원을 기준으로 1명의 재판장과 2명의 배석판사가 존재하는 재판부는 사건을 원래 1:3:3으로 나눠 맡았다. 재판장이 7건의 사건 중 1건만 주심을 맡아 판결문까지 쓰는 개념이었다. 하지만 인사 시스템이 바뀌는 과정에서 이에 대해 “업무가 너무 배석판사들에게 몰린다”는 불만이 제기됐고 결국 논의 끝에 1:2:2로 쓰는 것으로 바뀌었다. 재판장을 맡는 고등부장판사가 5건 가운데 1건의 주심판사가 되는 것이다.
승진 제도가 폐지되면서 새롭게 생긴 시스템이 자리 잡는 과정에서 근무 경력이 긴 판사들과 상대적으로 어린 판사 사이의 노소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특히 판결문으로 대표되는 업무량 조정은 적지 않은 갈등 요인이 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중앙지법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논의 도중 2:3:3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고등부장판사들의 반발 속에 1:2:2로 비율이 결정됐다. 그럼에도 업무량이 늘어난 것에 대한 불만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결과. 익명을 요구한 고등부장판사는 “재판장은 사건을 모두 맡아 판결문까지 책임져야 하는데, 주심을 더 많이 맡으라는 요구와 함께 챙겨야 할 일이 많아졌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앞서 언급한 법원장 3명으로 이뤄진 대등재판부의 경우, 1:1:1 비율로 사건을 맡아 판결문을 써야 하는데 법원 근무 경력이 30년에 육박하는 이들이 판결문을 쓰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 맞느냐는 반발도 나온다. 업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젊은 판사들은 이런 흐름이 당연하다고 얘기한다. 업무량이 과도하게 배석판사들에게 분담됐던 것 자체가 문제였다는 반론이다. 고등법원 배석판사는 “새롭게 비율 조정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배석판사들이 더 많은 사건의 주심을 맡아 챙겨야 한다. 기존 시스템이 문제가 있었던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자연스레 판사들이 노소(老少)로 입장 차가 나뉘는 과정 속에 피해는 국민이 본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고등부장판사는 “업무량이 늘면서 자연스레 천천히 하자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특히 고등부장판사도 판결문 쓸 일이 많아지면서 ‘천천히 하자’라고 생각하게 되는 감이 있다”고 털어놨다. 앞선 배석판사 역시 “승진이 없어지면서 다들 일을 편하게 하려고 한다. 젊은 판사들 사이에서 그런 분위기가 더 늘었고 편한 재판부를 가려는 경쟁도 상당하다”며 “재판 진행 속도도 늦어진 감이 있는데 결국 판결이 나오는 기간이 더 길어진다는 것은 재판 결과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피해로 돌아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