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버 호프먼은 마리아노 리베라와 함께 메이저리그 최고 마무리로 군림했다. 통산 600번째 세이브를 달성하고 동료들에게 축하를 받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 ‘종소리’의 원조는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마무리 투수 트레버 호프먼이다. 현역 시절 그는 ‘지옥의 종소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호주 록밴드 AC/DC의 ‘헬스 벨스(Hell’s Bells)‘를 테마곡으로 썼기 때문이다. 호프먼이 출격을 준비하면 웅장한 종소리가 울려 퍼진 뒤 강한 기계음의 기타 사운드가 야구장을 뒤덮었다. 현지에선 그 순간을 ’호프먼 타임‘이라고 했다. 호프먼이 등장하기도 전에 상대팀의 기를 음악으로 먼저 꺾어버리는 느낌까지 줬다. 아메리칸리그에 뉴욕 양키스의 마리아노 리베라가 있다면, 내셔널리그에선 단연 호프먼이 최고의 클로저였다.
그만큼 대단한 마무리 투수였다. 호프먼이 남기고 떠난 통산 세이브 기록을 1년 뒤 리베라가 갈아치우긴 했지만, 호프먼의 존재감이나 위엄은 리베라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신체적인 약점을 딛고 일어나 최고의 자리에 올랐고, 마무리 투수라는 보직에 대한 편견을 바꿔 놓은 ’선구자‘라는 점에서 더 그렇다.
호프먼은 몸에 신장이 없는 투수로 유명하다. 태어난 지 6주 만에 신장 기능이 멈춰 어릴 때 신장을 아예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이 핸디캡 탓에 대학 때까지 수준급 내야수로 활약하면서도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 11라운드에서야 간신히 구단에 지명받았다. 또 같은 이유로 원래 자리인 유격수를 포기하고 투수로 전향해야 했다. 하지만 그 고육지책이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가 됐다.
1989년 신시내티에 입단한 뒤 1993년 플로리다로 팀을 옮긴 호프먼은 1년도 못 채우고 쫓기듯 이적한 세 번째 팀 샌디에이고에서 전성기를 맞았다. 투수 전향 초기에는 학창 시절 쓰지 않았던 싱싱한 어깨로 시속 90마일(약 145km)대 후반 강속구를 뿌려댔고, 1994년 어깨 부상으로 고생하던 시기에는 체인지업을 연마해 야구 인생 최고의 주무기를 장착했다. 점점 메이저리그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자리매김했고, 팀이 이기든 지든 모든 경기에서 5회가 지나면 무조건 몸을 푸는 성실함으로도 유명해졌다.
1998년에는 1점대 평균자책점으로 무려 53세이브를 올리는 기염을 토했지만,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투표에서 톰 글래빈에 밀리는 아쉬움을 맛봤다. 1위 표를 글래빈보다 많이 받았지만, “마무리 투수에게 사이영상을 줄 수 없다”는 뜻을 가진 기자들이 2위와 3위에도 호프먼의 이름을 적어내지 않아 2위 표를 많이 받은 글래빈에게 밀렸다.
그런 아픔을 겪은 후로도 호프먼은 실력으로 자신의 진가를 뽐냈다. 메이저리그 역대 최초로 500세이브 고지를 밟았고, 밀워키 소속이던 2010년 9월 29일 뉴욕 메츠전에서 통산 601번째 세이브를 올린 뒤 이듬해 정상에서 은퇴했다. 600세이브는 20시즌 동안 매년 30세이브를 해야 올릴 수 있는 대기록이다.
내셔널리그는 최고의 구원 투수에게 주는 상 이름을 ’트레버 호프먼 상‘으로 지정해 리그 역대 최고 클로저의 업적을 기렸고, 호프먼이 전성기를 보낸 샌디에이고는 2011년 6월 그의 등번호 51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호프먼은 2018년 1월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