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중앙로역 지하 2층 ‘기억의 공간’에는 고인들의 이름이 적힌 추모벽이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기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원장의 말이다. 그는 2003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참사 당시 처형의 사고 소식을 듣고 현장에 달려갔다가 얼떨결에 유족을 대표해 사태 수습을 맡게 됐다. 2월 18일이면 대구지하철참사가 17주기를 맞지만 놀랍게도 제대로 된 위령탑이나 추모공원이 없다는 게 윤 위원장의 말이다. 대구 중앙로역 지하 2층 ‘기억의 공간’에 고인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벽이 있지만 진정한 의미의 추모 공간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윤 위원장은 “정부기관과 대구시의 무관심 속에 희생자들의 유골은 대구시립납골당, 개인묘지 등으로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고 말했다.
원인은 대구시 팔공산에 위치한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테마파크) 건립을 둘러싼 이면합의의 존부다. 테마파크는 재난 및 안전사고 발생 시 대응방법을 체험해 볼 수 있는 안전교육관이다. 2003년 대구지하철참사 이후 안전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추모공원 조성이 필요하다는 유족의 요구를 계기로 세워졌다. 국비와 시비 그리고 대구지하철참사 피해자를 위한 국민성금 일부가 사업비로 쓰였다.
쉽게 세워진 것은 아니었다. 사업은 난항을 거듭했다. 부지로 선정되는 지역마다 인근 주민, 특히 상가번영회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추모’ ‘묘역’ ‘위령’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혐오시설이 된다는 것이었다. 유족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던 2005년 기적적으로 합의문이 발표된다. 당시 대구시와 유족 대표로 나선 희생자대책위가 작성한 합의문 내용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사업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추모관을 제외하고 위령탑도 상징조형물로 대신한다’는 것이다. 유족의 요구대로 추모 공원이라는 이름을 쓸 수 없었다. 그러나 이 합의문을 토대로 2008년 12월 테마파크가 문을 연다.
잠잠하던 대구시가 또 한번 들썩인 건 2010년 무렵이다. 2010년 12월 대구시청 기자실에 ‘희생자대책위 유가족이 테마파크 내부에 유골을 암매장했다’는 투서가 돌기 시작한 것이다. 논란이 가중되자 대구시는 투서에 거론된 유족을 불법 암매장으로 형사 고발했고 이들은 줄줄이 법정에 서야 했다.
한순간에 암매장꾼이라는 누명을 쓰게 된 유족은 ‘대구시가 이면합의를 제안했다’는 놀라운 폭로를 한다. 2005년 당시 대구시가 유족에게 합의문과는 다른 내용의 제안을 했다는 것이다. 일단 상인회의 반발이 거세니 ‘대외용’으로 발표할 합의문에 서명을 하면 실제 조성되는 테마파크에 묘역과 추모공간을 마련해준다는 것이 희생자대책위가 주장하는 대구시의 약속 내용이다.
윤석기 위원장이 공개한 증거 문서. 제3의 정부기관 조사에 응하겠다는 내용의 대구시 공문과 2008년 테마파크 개관 당시 작성한 합의문이다.
윤 위원장은 일요신문과의 만남에서 “2005년 강병규 당시 대구시행정부시장과 이면합의를 했다. 그리고 2009년 대구시청에서 실무자들과 이면합의 실행을 위한 회의를 했다. 그 이후로도 수시로 만나 유골 이장 장소와 일정 등에 대해 논의했다. 당초 이면합의 내용에 따라 2009년 10월 27일 새벽 3시 대구시립납골당에 있던 유골 32위를 테마파크로 이장했다. 당일 이장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테마파크 관계자가 문을 열어주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한편 강병규 부시장은 대구지하철참사 이후 안전행정부 장관으로 영전하여 세월호 참사 당시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기까지 했다.
윤 위원장은 유족의 주장을 입증할 녹취록을 다수 공개했다. 일요신문이 확인한 녹취록에 따르면 2009년 7월 1일 윤 위원장은 대구시청에서 권영세 당시 대구시행정부시장, 정 아무개 소방본부 계장 등 시 공무원과 만났다. 2005년 작성한 이면합의에 대한 확인과 실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윤 위원장이 “192그루의 나무 아래에 수목장 하는 것만 동의를 했다. 이런 얘기네. 그죠?”라는 묻자 정 계장은 그렇다고 대답한다. 이에 권 부시장은 “보고를 받아 알고 있다”며 “수목장 이야기는, 여러 가지 법률상 같은 그런 부분에 있어서도 사실은 저촉이 되기 때문에 나는 모르는 거로 해라 그 이야기 했지예”라고 답한다. 다시 말해 수목장에 대해 권 시장도 들은 바 있으나 법 위반의 소지가 있으니 자신은 모르는 것으로 해달라는 것이었다.
결국 대법원은 불법 암매장에 대해 2013년 9월 최종 무죄 판결을 선고한다. 그러나 이면합의에 대한 진실 자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대구시에서 줄곧 이면합의를 부정해오고 있는 까닭이다. 다만 거듭된 유족 반발에 대구시는 최근 입장을 바꿨다. 권영진 현 대구시장은 2018년 3월 이면합의 존부를 두고 제3의 정부기관 확인을 받자는 대책위의 제안에 동의했다.
윤 위원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권 시장이 ‘후임 시장이 전임 시장이 한 일을 옳다 그르다 할 수 없다. 제3의 정부기관에 민원 제기하면 공정하게 처리될 수 있도록 협조 공문을 발행해주겠다’고 했다. 참사로부터 16년, 범죄자로 낙인찍힌 지 8년 만에 문제가 해결되나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족의 바람은 정부기관의 무관심 속에 또 다시 좌절됐다. 최초 국무총리실로 접수된 민원은 2년 가까이 정부기관을 표류했다. 윤 위원장은 “총리실은 행정안전부로, 행정안전부는 대구시로, 대구시는 다시 총리실로, 총리실이 다시 국민권익위로 민원을 배당했다”고 말했다.
결국 권익위 조사 결과에 따라 이면합의의 진실이 밝혀질 예정이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애당초 “두 달이면 끝난다”고 했던 권익위 조사는 벌써 1년 가까이 속도를 못 내고 있다. 최종적으로 민원을 떠안게 된 권익위 조사관은 면담 내내 못마땅한 표정으로 “우리 소관이 아니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 윤 위원장의 전언이다.
정부기관과 지자체가 유족을 외면하는 사이 시민들은 화해했다. 또 다른 갈등 주체였던 상가번영회와 희생자대책위가 2019년 ‘화해와 미래를 위한 우리의 다짐’이라는 이름의 공동성명서를 발표한 것이다. 각 단체 대표는 성명서를 통해 “그간의 오해는 대구시의 잘못된 행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확인했으며 대구시는 속히 사실 관계를 확인해 이면합의 내용을 이행하라”고 밝혔다.
유족들은 이제라도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길 바라고 있다. 윤 위원장은 “우리는 새로운 무언가를 지어달라는 것이 아니다. 사실 형식은 대부분 갖춰져 있다. 대구시가 이면합의를 부정하면서 잃어버린 이름을 되찾아 달라는 것이다. 테마파크 내부에는 안전상징조형물이 서 있다. 애당초 위령탑으로 세우려고 했던 것이다. 자원봉사자실은 유족사무실이었다. 추모관은 추모관으로, 위령탑은 위령탑으로 불러달라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구시청 관계자는 “2·18 안전문화재단이 상가번영회와 희생자대책위의 요구 조건에 대한 용역을 발주했다. 그 최종 결과보고서가 올해 1월 올라왔다. 이 결과를 토대로 권익위와 대구시가 이해 당사자들을 불러 조정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희생자대책위 유족은 2·18 안전문화재단 이사진의 소극적 행보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희생자대책위가 10여 년 동안 이면합의를 두고 진실공방을 벌여오는 동안 재단이 공식적으로 목소리를 낸 적이 없다는 것이다. 2·18 안전문화재단은 유족이 추진해온 여러 추모사업 가운데 하나로 유족 몫의 국민성금으로 세워진 공익재단이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