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선수 자격으로 DB에 새롭게 둥지를 튼 김종규는 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잡았다. 사진=KBL
DB는 지난 1월 4일 열린 전주 KCC전부터 1월 30일 울산 현대모비스 전까지 전 구단을 상대로 9연승을 거뒀다. 4라운드 전승이었다. 이는 20년이 넘는 KBL 역사상 최초 기록이다. 1월 초까지 5위에 머물던 팀 순위는 9연승을 거두면서 공동 1위로 급상승했다. 이후 10연승 실패로 한 단계 추락하기도 했지만 이내 선두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DB는 휴식기 전 마지막 경기인 지난 13일 서울 삼성전 승리로 공동 1위에 올랐던 서울 SK를 따돌렸다.
DB의 강력함에 우승 가능성까지 조심스레 점쳐지고 있다. DB는 2시즌 전인 2017-2018시즌 정규리그 우승,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을 한 바 있다. 이상범 감독의 입에서도 ‘재작년’이 언급됐다. 그는 삼성전 승리 직후 “재작년처럼 팀을 운영할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자연스레 당시와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180도 달라진 팀
당초 DB는 시즌 시작 전부터 강호로 분류됐다. 하위권에 처졌던 2018-2019시즌과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선수단에 큰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1년 전까지 DB는 전력 공백이 컸다. 팀의 상징과도 같았던 김주성이 은퇴했다. 함께 호흡을 맞추던 외국인 선수 로드 벤슨도 유니폼을 벗었다. 핵심 선수인 두경민과 허웅은 군복무 중이었다. 새롭게 선발한 외국인 선수의 활약과 이상범 감독 특유의 용병술로 반짝이기도 했지만 시즌을 마치고 DB가 받아든 성적표는 리그 8위였다.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을 차지한 팀이 1년 만에 플레이오프에도 참가하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2019-2020시즌을 앞두고 DB는 전혀 다른 팀이 됐다. 에어컨 리그에서는 프리에이전트(FA) 최대어로 꼽힌 김종규를 데려왔다. 12억 7900만 원(연봉 10억 2320만 원, 인센티브 2억 5580만 원)이라는 역대 최고 대우였다. 김주성이 은퇴한 빈자리를 단번에 채울 수 있는 영입이었다. KBL에서 잔뼈가 굵은 김민구와 김태술로 가드진도 보강했다. 허웅이 전역 이후 첫 풀시즌을 치를 수 있어 기대감을 높이기도 했다. DB의 플레이오프 진출 가능성을 의심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DB는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가드진 운용에 어려움을 느끼던 차에 때마침 두경민이 복귀했다. 사진=KBL
#에이스 복귀‧휴식기 돌입 완벽한 타이밍
실제 DB는 개막 이후 5연승으로 신바람을 냈다. KBL 국내 선수 중 최장신(207cm)인 김종규 영입 효과는 확실했고 김민구 김태술도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였다. 개막 이후 10월 한 달간 선두권에서 줄곧 경쟁했다.
하지만 부상에 발목이 잡혔다. 허웅 김현호 윤호영 등이 차례로 부상을 당했고 이들의 빈자리를 채우려 했던 김민구 김태술 등도 몸에 무리가 왔다. 12월 초부터 4연패로 순위는 5위까지 떨어졌다. 그 순간 DB의 마지막 조각이 맞춰졌다. 군복무 중이던 MVP 출신 두경민이 상무에서 돌아온 것이다. 두경민 복귀와 함께 다시 궤도에 오른 DB는 4라운드 전승을 달성했다. 두경민의 복귀 타이밍은 결과적으로 절묘했다.
DB의 연승행진은 ‘9’에서 멈췄다. 패배를 모르고 달린 1월이 지나자 또 다시 부상이 찾아왔고 일부 선수들은 체력적으로 어려움을 느꼈다. 그 순간 휴식기를 맞은 셈이다. 선수들의 부상 회복과 체력 보강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상범 감독은 팀이 선두 자리를 지키는 와중에도 호통을 치며 선수단 분위기를 다잡았다. 사진=KBL
#DB의 힘, ‘상범 매직’
2017-2018시즌 DB의 준우승은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을 빗나가는 일이었다. 시즌 전까지 이들의 전력이 하위권으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주목받지 못했던 선수들이 돌아가며 기대를 뛰어넘는 성장과 활약으로 일궈낸 성과였다. 이상범 감독에게는 ‘상범 매직’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상범 매직의 원동력은 로테이션이다. 올 시즌 DB에서 가장 긴 출장 시간을 기록하고 있는 선수는 평균 28분 1초를 기록 중인 김종규다. KBL 전체 17위다. 1981년생, 만 38세 가드 양동근(현대모비스)이 그보다 많이 뛰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적절한 체력 안배가 이뤄지고 있다. 전역 직후부터 폭발력을 과시한 두경민도 출전시간 40분을 넘긴 경기는 단 한 번뿐이다.
최근 선두권 경쟁에 나서며 이상범 감독은 선수단과 ‘밀당(밀고 당기기)’을 활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연승행진이 끊어진 이후 선수단이 해이한 모습을 보이는 듯하자 ‘3류 농구’라는 극단적인 표현과 함께 공개적으로 질책을 가했다. 하지만 이내 다음 경기에서는 “우리 선수들이 잘해줬다. 수고했다고 말하고 싶다”며 ‘당근’을 건넸다.
이 감독의 두 얼굴에 선수들도 농구화 끈을 동여매는 모양새다. 김종규는 “감독님 질책 이후 선수들이 바로 모여서 미팅을 많이 했다. 우리 농구가 굉장히 잘못됐다고 다들 인지했다”며 “이기고 있고 1위 팀인데도 찝찝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미팅을 통해 선수들끼리 앞으로 잘하자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DB는 단독 선두로 기분 좋게 12일간의 휴식기를 맞이하게 됐다. 그럼에도 팀을 이끄는 김종규는 만족을 몰랐다. 그는 “1위는 기분 좋은 일이지만 아직 큰 의미는 없다. 마지막에 1위를 해야 한다”며 각오를 다졌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