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아시아나그룹이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마무리 중인 가운데, 재계 일각에서는 금호그룹이 그룹 재건을 이유로 일부 계열사에 대해 재인수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사진은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2018년 7월 4일 ‘기내식 대란’ 관련 기자회견에서 입장을 밝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금호그룹은 아시아나항공 구주 매각 대금 약 3200억 원으로 급한 불을 끄게 됐다. 당초 예상했던 가격 4000억 원보다 낮은 금액이지만, 차입금을 갚는 것이 시급했던 만큼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 자금을 바탕으로 금호그룹은 금호산업을 중심으로 그룹 재건에 나설 계획이다. 그러나 금호고속에 당장 오는 3월 만기가 돌아오는 산업은행 대출 1300억 원 등의 차입금을 갚아야 하는 상황이다.
사업 재편도 시급하다. 금호그룹은 이번 매각으로 관광‧리조트 부문과 버스 운송업 부문 계열사를 상당수 잃게 됐다. 아시아나항공의 자회사 아시아나IDT가 함께 현대산업개발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금호그룹 측은 현대산업개발과 협상 과정에서 아시아나항공 구주 가격이 낮게 책정됐다며 금호리조트 지분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시아나IDT는 아시아나항공이 지분 67.22%를 보유한 IT서비스 자회사다. 2018년 11월 상장한 아시아나IDT의 주가는 매각 소식이 알려진 지난해 4월부터 상승세를 타기 시작해 같은 해 11월에는 3만 원대를 넘어서기도 했다. 아시아나IDT의 행방이 금호의 버스 운송업과 관광‧리조트 부문에 영향을 주는 이유는 금호T&I 때문이다. 금호T&I의 최대주주는 지분 40%를 보유한 아시아나IDT. 아시아나에어포트(24%)와 금호산업(20%), 아시아나세이버(16%)도 금호T&I 주식을 보유 중이다.
금호T&I는 금호그룹의 버스 운송업 관련 계열사 다수를 지배하고 있다. 금호T&I는 금호고속관광 서울법인과 금호속리산고속 지분 100%를, 금호속리산고속은 금호고속관광 전남법인 지분을 100%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금호산업 지분 45.3%와 금호고속관광의 경기법인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금호고속은 앞서 회사의 지분을 갖고 있지 않다.
더불어 금호T&I는 금호리조트에 대해서도 지분 48.8% 보유한 최대주주다. 금호T&I외에도 아시아나IDT(26.58%)와 아시아나세이버(9.99%), 아시아나에어포트(14.63%) 등도 금호리조트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결국 금호가 버스 운송업과 리조트를 되찾아오기 위해서는 금호T&I가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 금호T&I를 지배하고 있는 아시아나IDT를 재인수해야 한다는 시나리오가 나온다.
더욱이 현대산업개발 입장에서 증손회사인 아시아나IDT를 금호나 다른 기업에 매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면 ‘HDC→현대산업개발→아시아나항공→아시아나IDT’의 지배구조가 완성된다. 아시아나IDT와 에어부산 등은 HDC의 증손회사가 된다. 현대산업개발이 이 같은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시아나항공이 현재 76.22%를 보유하고 있는 아시아나IDT 지분율을 100%로 끌어올려야 한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지주사의 손자회사는 증손회사 지분을 100% 소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관련 업계에서는 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IDT를 금호그룹에 넘겨줄 가능성이 높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구조를 정리해야 하는 기간까지 2년이라는 시간이 남은 데다, 항공운영시스템 특성상 아시아나항공을 가져간 현대산업개발 입장에서는 아시아나IDT의 전문역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금호그룹 사정에 정통한 재계 관계자는 “아시아나IDT가 증손회사라는 점은 현대산업개발 입장에서 전혀 큰 문제가 아니다. 2년 내에 합병 등을 통해 지분구조를 변경하면 되는 일”이라며 “항공운수 산업에서 IT시스템은 매우 중요한 핵심역량이다. 이미 가져온 아시아나IDT를 다른 곳에 넘기고 핵심역량을 아웃소싱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전했다.
더군다나 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통해 면세, 레저, 항공산업 등을 아우르는 종합그룹으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도 아시아나IDT가 필요한 이유다. 정몽규 HDC그룹 회장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던 지난해 11월 12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이번 인수를 통해 HDC그룹은 항공뿐만 아니라 모빌리티 그룹으로 한 걸음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산업개발이 최근 호텔‧리조트 사업에 눈을 돌리는 것 또한 아시아나IDT를 포기하지 못할 이유다. 현대산업개발은 지난해 6월 580억 원을 들여 강원도 원주에 위치한 리조트 ‘오크밸리’ 경영권을 인수하는 등 사업 다각화에 집중하고 있다.
금호그룹의 사정상 아시아나IDT 재인수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여유가 없다. 남아있는 차입금 등 채무를 해소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금호그룹은 박삼구 전 회장이 2015년과 2017년 금호산업과 금호건설을 재인수하는 과정에서 그룹 전반의 재무상황이 악화된 경험이 있다. 금호산업 재인수에 동원됐던 아시아나는 한때 부채비율이 1000%에 달하기도 했다.
앞서의 재계 관계자는 “금호고속은 금호산업 지분으로, 금호산업은 아시아나항공 지분을 담보로 차입을 해왔다. 차입금 상환하고 부채를 해소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이라며 “현재 자금사정으로는 아시아나IDT 등의 재인수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불가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금호그룹은 지금 그룹의 재건보다는 존속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라고 강조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금호그룹이 아시아나IDT에 미련을 두는 까닭은 금호리조트가 보유한 아시아나CC 때문일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골프장 아시아나CC는 예전부터 박삼구 전 회장이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매각작업이 진행 중인 와중 금호그룹이 투자회사 케이브이아이에 유상증자를 하며 구설에 오른 것 또한 ‘아시아나CC 애착설’에 힘을 싣는다.
케이브이아이는 금호T&I가 지분 100%를 보유한 자회사다. 케이브이아이는 지난해 2월 자본금 50만 원 규모로 설립된 투자회사로, 금호그룹은 지난해 6월 28일 18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이에 KDB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은 당시 금호그룹에 케이브이아이 유상증자에 대해 소명을 요구했다. 금호그룹이 투자회사 케이브아이를 통해 금호리조트 지분을 추가 인수하려 했던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한편 금호그룹은 현재 아시아나IDT 등의 재인수에는 선을 긋고 있다. 금호그룹 관계자는 “금호T&I는 통매각 대상이다. 통매각을 원칙으로 이미 매각이 진행됐다. 일각에서 나오는 재인수 가능성은 전혀 없다. 관련 설은 억측”이라고 단언했다. 이어 케이브이아이 유상증자 건에 대해서는 “케이브이아이는 해외사업 투자하려고 설립한 것이고, 당시 유상증자와 관련해 산업은행에도 소명을 완료한 부분”이라며 “이전부터 해외 투자 계획을 갖고 추진했는데, 준비 시간이 길어졌다. 그 와중에 갑작스럽게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나와 우연하게 타이밍이 안 맞았던 것”이라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