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불출마 선언을 한 유승민 의원에게 자유한국당 측에서 서울 험지 출마를 권유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사진=박은숙 기자
2016년 20대 총선 새누리당은 서울에서 참패를 당했다. 민주당은 서울 49개 지역구 가운데 35개 지역을 승리하면서 원내 1당으로 발돋움했다. 새누리당은 12개 지역구를 얻는 데 그쳤다. 전체 의석 중 6분의 1 비중을 차지할 뿐 아니라 그 상징성을 감안하면 서울 성적표는 총선 전체 결과를 좌우하는 요소로 평가받는다. 정당들이 서울 선거에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다.
통합이 성사되기 전까지 자유한국당은 서울에 유력 정치인들을 차출하려 심혈을 기울여왔다. 일찌감치 수도권 험지 출마를 선언했던 황교안 대표를 비롯해 여러 중진들이 거론됐다. 특히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의 행보가 관심을 모았다.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이 3명에게 서울 출마를 강력하게 요청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들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우선 홍준표 전 대표는 영화 ‘친구’ 속 “니가 가라 하와이”라는 대사를 인용해 험지 출마 권유를 거부하면서 경남 밀양·창녕·함안·의령 지역구 출마 채비를 이어갔다. 김태호 전 지사 역시 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을 떠나기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다. TK(대구·경북) 지역 출마를 준비하던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만이 “당의 의견을 따르겠다”고 했다. 한국당의 서울 탈환 전략은 난항에 부딪혔다.
이런 상황에서 2월 7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종로 출마를 선언했다. 2월 9일엔 유승민 새로운보수당 의원이 “통합을 받아들이겠다”면서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보수진영 지형도를 단번에 뒤흔들 대형 변수가 한꺼번에 터진 셈이었다. 한 자유한국당 당직자는 “황교안 대표와 유승민 의원 결단으로 내부 교통정리가 속도를 낼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사진=박은숙 기자
일단 홍준표 전 대표와 김태호 전 지사는 서울이 아닌 PK(부산·울산·경남)에 출마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홍 전 대표는 “PK 험지인 경남 양산을엔 출마할 수 있다”고 밝혔다. 수도권 험지 출마를 권유한 당에 ‘PK 험지 출마’라는 역제안을 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사저가 있는 양산을엔 현재 김두관 민주당 의원이 차출된 상태다.
김태호 전 지사는 창원 성산에 출마할 것으로 점쳐진다.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 지역구였던 창원 성산은 진보의 성지로 불리는 곳이다. 2019년 4월 재·보궐 선거 때도 여영국 정의당 의원이 승리한 바 있다.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의 경우 세종시 차출론이 유력하다고 한다.
이에 따라 한국당이 띄우려 했던 서울 올스타 라인업은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정치권에선 이미 플랜B가 가동 중이란 말이 파다하다. 한국당 의원들은 새로운보수당, 미래를 향한 전진4.0 등과 통합에 합의하면서 오히려 ‘선수층’이 두꺼워졌다는 기대감을 보이기도 했다.
한국당의 플랜B 중심축으로 거론되고 있는 인물은 불출마를 선언한 유승민 의원이다. 유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자마자 심재철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지금이라도 불출마 입장을 바꿔서 서울이나 험지에서 싸워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했다. 심재철 원내대표는 “황교안 대표와 유승민 의원, 김태호 전 경남지사, 홍준표 전 대표 등 모든 분이 서울로 올라와 같이 싸워 한강벨트에 분위기를 만들어갈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면서 아쉬움을 토로했다.
김형오 자유한국당 공천관리위원장. 사진=박은숙 기자
심 원내대표 발언 이후 정치권에선 “미래통합당이 출범하면 당 차원에서 다시 한번 유승민 의원에게 서울 험지 출마를 권유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한국당의 한 중진 의원도 “불출마 선언으로 명분은 확보했다. 당을 떠나 보수 전체로 봤을 때 유 의원 같은 분이 출마하지 않는 것은 큰 손실”이라면서 “유 의원 본인으로선 입장을 번복하는 게 어려울 수 있겠지만 보수진영의 어려움을 모른 체하진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유승민 의원 출마 가능성이 점쳐지는 지역구는 서울 서대문갑·을이다. 서대문갑은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우상호 의원이 터를 잡고 있고, 서대문을 지역구엔 김영호 민주당 의원이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호남 출신 인구 비중이 높은 서대문은 보수진영의 험지 중 험지로 통한다.
이에 대해 유 의원의 한 측근은 “유 의원이 이번 통합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사실상 외통수에 몰려 통합을 선언한 측면이 있다”면서 “통합이라는 승부수를 던지며 불출마 결단을 내렸는데, 그 결정을 번복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고 전망했다. 반면 앞서의 중진 의원은 “당선이 힘든 서울 험지라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아예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다. 유 의원을 상대로 완곡하게 출마를 권유하는 것으로 들었다”라고 귀띔했다.
종로 출마 의사를 철회한 이정현 무소속 의원 역시 서울에 전략적 재배치될 가능성이 높은 자원 중 하나다. 새누리당 대표 이력을 지닌 이 의원은 총선 전 미래통합당에 합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의원은 2014년 7·30 재보선과 20대 총선 두 차례에 걸쳐 전남 순천·곡성 지역구에서 연승을 거둔 바 있다. 친박 꼬리표가 달려 있긴 하지만 불모지나 다름없는 호남에서 정면돌파한 경험이 있는 이 의원이 서울 어느 곳에 출격할지도 관전 포인트로 꼽힌다.
이정현 무소속 의원. 사진=박은숙 기자
당 안팎에선 이정현 의원이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가 버티고 있는 서울 구로갑에 출마할 수 있다는 관측이 들린다. 구로갑 역시 보수진영의 대표적인 험지다. 유승민 카드가 무산될 경우 전라남도 곡성 출신 이 의원이 서대문 지역구에 출마하는 시나리오도 오르내린다.
한때 종로 출마설이 돌았던 홍정욱 전 의원도 보수진영 히든카드로 꼽힌다. 자녀의 불미스런 문제로 타격을 받긴 했지만 경쟁력이 충분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차기 주자군으로도 분류되는 홍 전 의원 역시 총선 역할론에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홍 전 의원과 가까운 한국당 한 의원은 “홍준표 김태호 등 여러 명의 올드보이보다 홍정욱과 같은 인물이 서울에 출격하는 게 선거에 유리하다”면서 “삼고초려해서 종로의 황교안과 함께 서울벨트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9년 초 일찌감치 서울 광진을 지역구에 출사표를 던진 뒤 표밭을 일궈온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서울 어벤져스 일원으로 분류된다. 광진을은 분구 이후 치러진 6차례 총선에서 모두 진보계열 정당 후보의 손을 들어준 대표적인 보수 험지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지역구로, 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 출격 여부가 관심사인 곳이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