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한선은 SBS 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 임동규 역으로 인생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사진=‘SBS 스토브리그’ 제공
―임동규는 ‘특별출연’(특출)의 새로운 역사를 쓴 캐릭터다. 혹시 캐스팅되기 전 특출이란 사실을 알았나.
“전혀 몰랐다(웃음). 첫 화 방송을 보고 나서야 ‘아 내가 특출이구나’란 걸 알았다. 그런데 딱히 회사에도 감독님께도 물어볼 생각을 안 했다.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러셨겠지 싶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마 (특출을) 전략적으로 결정하신 게 아닌가 싶다. 임동규는 방영 초반 2화까지만 나오니까 특출인 것처럼 시청자들이 알게 하다가 나중에 반전 같은 걸 노리신 건 아닐까? 감독님께 종방연 때 여쭤보겠다(웃음).”
―임동규라는 캐릭터가 이렇게까지 히트할 것이라 예상했나.
“생각도 못했다! 임동규가 2화 이후에도 나올 것이란 언질은 들었지만 그래도 공백기가 있으니 2화까지만이라도 임팩트 있게 입체적으로 인물을 살려 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것 같다. 드라마가 대박날 거라 생각하고 시작하는 사람도 없고, (흥행이) 안 될 거란 생각을 가지고 하는 사람도 없지 않나. 그런데 이렇게 잘 되니까, 민이 형(남궁민, 백승수 단장 역)에게 고맙기도 하다. 거북이를 봐서 그런가? 하하.”
―‘스토브리그’ 출연진들이 SK 와이번스를 언급할 때 유일하게 한화 이글스 팬임을 밝혔는데.
“아, 왜 그랬지(웃음)… 그냥 노코멘트할 걸 그랬다. 사실 나는 한화 팬이라기보다 빙그레 이글스 팬이었다. 처음 야구장을 갔던 게 초등학교 때 아버지 손잡고 빙그레 이글스를 응원하려 간 거였는데, 아버지가 그 팀의 광팬이셨다. 그래서 나도 자연스럽게 빙그레 이글스의 팬이 된 것 같다. 하지만 SK에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한다. 지원도 많이 해주시고, 구장도 빌려주시고… 정말 감사한데 내가 너무 솔직하게 한화 팬이라고 했던 것 같다(웃음). 내가 이렇게 솔직한 사람이다. 하지만 SK가 없었으면 이 드라마도 없었다.”
배우 조한선은 한화 김태균 선수에게 연기 조언을 받았다고 밝혔다. 사진=‘SBS 스토브리그’ 제공
―야구선수인 임동규로 연기할 때 모티브로 삼은 선수가 있었나.
“누구를 모티브로 삼지는 않았지만 태균 씨(한화 이글스 김태균 선수)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야구를 하나도 몰라서 태균 씨에게 많이 물어봤는데, 조언도 해주고 루틴이나 자세 교정도 다 가르쳐 줬다. 야구를 전혀 모르는 내가 야구화를 신고 유니폼을 입고 배트를 잡고 타석에 들어서는 그 모습이 어색하면 보는 사람들도 어색하지 않겠나. 그래서 국내 4번 타자나 LA 다저스 영상을 보며 자세나 루틴 같은 모습을 집중적으로 공부를 많이 했다. 그 결과 지금 드림즈의 4번 타자 임동규의 자세가 나온 것 같다.”
―인기가 많았던 캐릭터이니만큼 다양한 별명이 붙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별명은.
“칩동규(웃음)? 처음에는 욕을 정말 배부르고 시원하게 많이 먹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별명이 처음엔 ‘양아치 임동규’에서 (긍정적으로) 바뀌더라. 그런데 그중에서 칩동규(카지노 칩+임동규)가 제일 웃기더라. 도박으로 물의를 일으킨 것은 죄송하지만 칩동규는 정말 재밌었다.”
―‘스토브리그’ 드라마 밖에서 인터뷰를 할 때 캐릭터에 과몰입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나는 진지하게 인터뷰를 한 건데 뒤에서 다들 웃기다고 한다. 난 안 웃긴데(웃음). 그런데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현장이었다. 촬영 현장에서도 다들 배우 본명을 부르는 게 아니라 ‘동규야’ ‘동규형’ 하고, 저도 ‘두기야’ ‘진우형’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몰입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분위기를 탔던 것 같다(웃음).”
배우 조한선은 촬영장 밖에서도 ‘동규 형’으로 살았다. 사진=‘SBS 스토브리그’ 제공
―마지막 대본에 출연진에 보내는 작가의 편지가 있었다고.
“연기생활 19년 하면서 작가님이 출연진 모두에 편지를 쓰시는 일을 처음 겪었다. 나는 역할도 작은데, 주연 배우들까지만 쓰셔도 힘드셨을 텐데 일일이 모두 거론하며 편지를 써주신 걸 보고 울컥했다. 그 마음이 전달이 되니 16화 대본을 못 놓겠더라. 참 짠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작가님께 죄송하기도 하고 그렇다.”
―‘스토브리그’는 명대사 제조기로도 유명하다. 임동규를 제외한 다른 배역들의 대사 가운데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는지.
“은빈 씨(박은빈, 이세영 팀장 역)의 ‘선은 네가 넘었어!’ 이 대사 정말 쾌감 있었다. 내가 그때 출연 공백기여서 시청자 입장으로 보는데 정말 빵 터지더라. ‘이건 최고다’ 싶었다. 유리컵도 멋있게 던지고. 그러고 나서 촬영 복귀한 뒤에 서영주(차엽 분) 보자마자 ‘넌 나보다 더 나쁜 새X야’ 그랬다(웃음).”
―임동규 대사 중 시청자들이 가장 궁금해한 것이 2화의 백승수 단장과 귓속말 신에서 묵음 처리된 대사다. 정말 무슨 말을 했나.
“사실 정확하게 정해진 대사를 한 건 아니다. 후반부에 내가 재등장했을 때 (회상에서) 같은 장면을 쓴 게 아니라 그 장면은 새로 대사를 하고 새로 찍은 거다. 감독님이나 작가님도 정확한 대사를 말씀 안 해주시고 그냥 ‘이런 뉘앙스로 해라’라고만 말씀하셔서 2화 때 임동규와 백승수 사이에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모른다. 그런데 사람들이 무슨 말 했냐고 엄청나게 물어보는 거다(웃음). 아마 그때 ‘미친 새X야’ ‘개새X야’ 했던 것 같다(웃음).”
배우 조한선. 사진=‘SBS 스토브리그’ 제공
―백승수 단장 역인 남궁민과 케미가 어땠는지 궁금하다.
“(2화의 신을 보고) 사람들이 나더러 ‘백승수랑 사귀냐’고 물어보기도 했다(웃음). 사실 민이 형과 친분은 있었지만 연기를 하면서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 임동규는 유일하게 백 단장에게 무력으로 맞설 수 있고 그걸 행동으로 옮기는 캐릭터라 너무 친해지면 그런 디테일이 떨어질 수 있겠다 싶어서였다. 그런데 나중에 백 단장님이 내게 드림즈로 돌아오라고 해주셨을 때, 그때 나도 잘 모르는 감정들이 나왔던 것 같다. 그 신을 찍고 나서 민이 형을 업어줬는데 그때부터 민이 형과 사이가 좋아졌다. 사실 형이 촬영할 때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모든 장면에서 나오고, 대사도 많고….”
―라이벌이자 절친인 강두기 역의 하도권과 관계는.
“도권이 형은 이번 작품에서 처음 만났는데 정말 웃기다(웃음). 딱 강두기 모습인데 그 모습으로 뭔가를 하시는 게 너무 웃긴 거다. 나랑 정말 정반대 캐릭터인데 호흡이 굉장히 좋았다. 강두기와 임동규가 같이 칼국수 먹는 신을 찍을 때도 정말 울컥했다. 강두기는 내게 손을 내밀어 주고 옆에서 내 길을 잡아준, 내 자존심보다 자존감에 무게를 실어주는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워낙 도권이 형이 연기도 좋고 잘 전달을 해줘서 그걸 내가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배우 조한선은 ‘스토브리그’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사진=미스틱스토리 제공
“시청자 분들이 제 SNS에 ‘드림즈가 가을야구에 꼭 갔으면 좋겠다’ ‘우승했으면 좋겠다’ ‘백 단장을 꼭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모든 것을 다 충족시켜드리긴 어렵겠지만, 마지막까지 드림즈가 발전한 모습을 꼭 봐주셨으면 좋겠다. 한 시즌에 모든 것을 다 이루기란 쉽지 않지만, 드림즈는 팀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고 한 단계 더 성숙해지고 또 성장했다. 그 모습을 봐주시길 바란다. 그런데 나 너무 임동규 같지 않나(웃음).”
―‘늑대의 유혹’ 이후 ‘스토브리그’로 두 번째 전성기를 맞이했는데 어떤 느낌인가.
“어떤 사람은 내게 그러더라. ‘반해원(늑대의 유혹 주인공)이 야구한다’고(웃음). 물론 ‘늑대의 유혹’은 내게 감사한 작품이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작품이지 않나. 하지만 나를 두고 생각해 주실 때 ‘늑대의 유혹’ 다음에 ‘스토브리그’가 떠오른다는 것은 제 필모그래피가 탄탄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긴 시간 동안 스스로는 뭘 한다고 했지만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건 내가 부족하고 모자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신중하게 작품을 고르고, 임동규보다 좀 더 대중이 다가갈 수 있는 캐릭터, 인상 깊게 남을 수 있는 연기를 하도록 노력하려고 한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