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2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지난 1월 민주당은 비례대표 당선 안정권의 20% 이내에서 당 대표가 전략공천을 할 수 있게 돼 있는 조항이 선거법 개정안 취지에 부합하는지 선관위에 유권해석을 요청했다. 2월 6일 선관위는 “선거인단 구성은 대의원, 당원 등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게 구성해야 하고 선거인단의 투표 절차 없이 당 대표나 최고위원회의 등이 선거 전략으로 비례대표 후보자 및 순위를 결정해 추천하는 것은 당원 전체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결정했다.
이 같은 결정은 민주당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정당이 비례대표 명단 중 일부를 당 대표 혹은 최고위원회의 등 극소수가 결정해왔기 때문이다. 정의당도 만 35세 이하 청년과 장애인에게 비례대표 명부 일부를 할당하기로 한 선출방침 등에 대한 유권해석을 요청했다.
선관위가 이런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을 담은 선거법 개정안 때문이다. 2019년 12월 개정돼 1월 14일부터 시행된 선거법에 따르면 각 정당은 비례대표 후보 추천 시 민주적 심사 및 투표 절차를 거쳐 후보를 결정해야 한다.
민주당은 이에 따라 당헌 개정 등 관련 규정을 바꾸기 위한 절차에 나섰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과거 총선에서도 그렇고 선거 막판에 비례대표 순위가 바뀌는 건 흔한 일이었다. 특히 정무적 판단이라는 명분하에 선거 막판 끼워지는 경우나, 순위가 갑자기 당선 유력 번호로 바뀌는 경우가 많았다. 선관위가 나서서 계도하는 모양새를 두고는 갑론을박이 나올 수 있지만 전체적인 방향은 긍정적일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현재 당 대표와 공천관리위원회 등이 비례대표 명단을 결정한다. 참여하는 수는 10명 남짓에 불과하다. 자의적으로 명단이 작성될 가능성이 높은 구조다. 밀실 합의라는 지적도 많았다. 선관위 결정이 비례대표 순서 결정을 뭔가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자유한국당, 새로운보수당, 전진당 등이 합친 미래통합당도 깊은 고민에 빠졌다. 미래통합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응해 위성정당으로 미래한국당을 만든 상태다. 정치권에서는 미래통합당이 비례대표 명단을 미래한국당으로 넘겨주면 이를 미래한국당이 전략공천하는 방식이 되리라는 예상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이번 선관위 결정으로 이런 구상은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선관위 결정이 큰 변수가 되진 않을 것이란 분석도 있긴 하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민주적 심사 및 투표 절차라는 게 추상적인 말이어서 이를 피하는 건 기술적인 문제에 불과할 수 있다”면서 “예를 들어 비례 대표 순서를 확정해 이 명단을 승인할지 말지를 당내에서 투표하면 이는 민주적 절차가 아니라고 볼 수 있나. 각 정당에서 선관위 결정을 얼마든지 회피할 방법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