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증권사 3곳은 라임자산운용과 TRS 계약을 맺은 곳이다. TRS 계약이란 증권사가 자산운용사로부터 담보를 받고, 대출을 통해 자산을 대신 매입해주는 것이다. 라임자산운용은 수익 극대화를 위해 일부 투자자의 투자금을 담보로 제공하고 전환사채(CB) 등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발생하는 이익이나 손실은 모두 자산운용사에 돌아가고 증권사는 수수료를 챙긴다.
TRS 계약을 맺은 펀드는 증권사가 대출해준 금액을 우선 반환하고, 남은 돈을 투자자에게 배분한다. 증권사는 펀드에 투자가 아닌 대출을 했기 때문에 우선순위를 받고, 투자자들은 후순위 자격을 받는 것이다. 라임 사태와 관련해 증권사들이 먼저 자금을 빼가면 투자자들은 그만큼 더 큰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 대신증권이 신한금융투자, KB증권, 한국투자증권과 라임자산운용에 TRS 계약 관련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서울 중구 대신증권 본사. 사진=이종현 기자
하지만 라임자산운용은 대신증권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라임자산운용은 지난 14일 설명자료를 통해 “TRS로 인해 투자자에게 돌아갈 몫이 없다는 건 부정확한 내용”이라며 “TRS 계약이 종료되는 경우 전체 수익 중 TRS 제공사가 먼저 정산을 받아간 후 펀드에 나머지 수익을 넘겨주게 된다”고 전했다.
증권사들은 대신증권의 요청에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내지 않았다. 라임자산운용과 TRS 계약을 맺은 한 증권사 관계자는 “대신증권의 내용증명을 받고 내용을 확인 중”이라며 “내용증명이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공식적인 답변을 하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법과 규정에 따라 권리와 의무를 다할 예정”이라고만 밝혔다.
증권사들의 우선상환권은 라임자산운용과 맺은 계약이기에 대신증권의 요청을 들어줄 의무는 없다. 이에 대신증권 관계자는 “증권사들이 우선순위에 있는 건 맞지만 지금은 환매 중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이기에 협조를 구하는 단계”라며 “고객 자산 회수가 가장 큰 목표이고, 이를 위해 어떤 것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증권사들이 우선상환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배임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어 쉽게 포기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TRS 계약은 장외계약이기에 계약 당사자간 입장이 가장 중요하므로 대신증권이 요구를 할 수는 있어도 막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신증권은 우선상환권 때문에 펀드에 추가적 손실이 발생하면 해당 증권사들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도 통지했다. 금융감독원(금감원) 관계자는 “금융사간 서로 합의하면 이례적이지만 가능은 하고, 그렇지 않으면 대신증권이 증권사들의 우선상환권을 행사하지 않도록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할 수 있다”며 “그 판단은 법원이 할 것이고, 기각이 될지 인용이 될지는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법원이 대신증권의 손을 들어줄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 발표에 따르면 신한금융투자는 펀드의 부실 발생 사실을 은폐한 혐의를 받고 있고, KB증권도 사전에 펀드 부실을 알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해당 증권사들이 라임자산운용 사태를 초래한 원인 제공자가 될 수 있는데 본인들 돈을 먼저 빼가는 건 맞지 않다고 법원이 판단할 수 있다”고 전했다.
지난 14일 대신증권 라임자산운용 펀드 투자자들이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환매 보상 촉구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대신증권이 판매한 라임자산운용 펀드 16개는 모두 TRS 계약을 맺었다. 라임자산운용의 펀드 173개 중 TRS 계약을 맺은 펀드가 29개임을 감안하면 높은 비중이다. 증권사들이 우선상환권을 행사하면 라임자산운용 펀드에 가입한 대신증권 고객 모두에게 영향이 간다.
일부 대신증권 투자자들은 TRS와 관련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한 대신증권 투자자는 “대신증권이 개인에게 판매한 펀드들은 오로지 TRS에 담보로 제공하기 위해 판매한 셈”이라며 “처음부터 대신증권 투자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구현하려 했다는 의혹이 든다”고 전했다.
일부 투자자들은 대신증권이 TRS에 대해 고지하지 않고 판매했다는 이유로 계약 취소를 청구하는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TRS로 인해 증권사가 자금을 먼저 가져가는 것이 투자자가 투자를 하지 않을 정도의 중대한 위험인지가 쟁점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했다. 반대로 증권사들이 우선상환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TRS에 대한 투자자들의 위험 요소가 줄어 대신증권이 소송에서 유리할 수 있다.
대신증권 관계자는 “리스크가 크지만 그만큼 수익성도 큰 상품을 판매한 것”이라며 “펀드를 판매하면서 투자자들에게 TRS 관련한 설명은 다 했다”고 밝혔다.
투자자들을 대리해 소송을 준비 중인 김정철 법무법인 우리 변호사는 “TRS로 인해 손실이 대폭 날 수 있고, 이는 거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해당 내용을 설명하지 않았으면 계약 취소가 가능하다”며 “투자자들에게 설명을 했는지는 대신증권에서 증명해야 하며 계약서에는 TRS 관련 내용이 없었다”고 전했다.
TRS 계약이 라임자산운용 사태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는 것도 관련 펀드를 판매한 대신증권에 압박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은 “라임자산운용은 TRS를 통한 레버리지(수익 증대를 위해 부채 등을 끌어 자산 매입에 나서는 투자전략)를 활용하면서 펀드의 유동성 위험이 크게 증가했다”며 “원금 이상의 자금을 사모사채 등 투명성이 결여된 비시장성 자산에 투자했다”고 전했다.
라임자산운용 자료에 따르면 TRS 계약을 맺은 AI스타 펀드 3개는 전액 손실, AI프리미엄 펀드 2개는 61~78%의 손실이 예상된다. 그 외 24개 TRS 계약 펀드도 최소 7%에서 최대 97%까지 손실을 예상했다.
라임자산운용은 “AI스타 펀드 3개의 경우 TRS를 사용해 레버리지 비율이 100%였다”며 “현재로서는 고객의 펀드 납입 자금이 전액 손실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