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에 복귀한 이낙연 전 총리가 1월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마친 후 이해찬 대표와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중앙당 공직선거후보자추천관리위원회(공관위)나 총선기획단 면면을 봐라.”
이해찬식 공천에 대한 불만이 수면 위로 부상한 직후 여권 한 관계자가 던진 말이다. 비판의 요지는 당내 차기 대선주자 측근들의 배제다. 그 중심에는 ‘나를 따르라’는 이 대표의 리더십이 자리 잡고 있다. 민주당 공관위(총 18명)는 범친노(친노무현)계인 원혜영 위원장을 비롯해 친문(친문재인)계 윤호중 사무총장과 백혜련 의원, 한때 손학규계로 분류됐던 전혜숙 의원, 이근형 전략기획위원장, 전용기 전국대학생위원장 등 당내 인사 8명과 외부 인사 10명으로 채워졌다.
차기 대선주자 측 내부에선 “계파 안배가 필요하다”는 의사를 당 지도부에 전달했지만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대신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지낸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과 윤영미 녹색소비자연대 공동대표, 오재일 전남대 행정학과 교수 등 외부 인사가 대거 합류했다. 지난해 11월 7일 구성된 당 총선기획단은 ‘친문 일색’으로 채워졌다. 단장인 윤호중 사무총장을 시작으로, 양정철 민주연구원장, 윤관석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 백혜련·소병훈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비문(비문재인)계인 금태섭 의원이 총선기획단에 포함됐지만, 사실상 구색 맞추기에 불과했다는 지적이다. 총선기획단을 띄운 날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에서는 일부 비문계 인사들이 “질서 있는 쇄신을 해야 한다”며 당 지도부를 질타했다. 그간 겉으로 드러나지만 않았을 뿐, 물밑에선 당 지도부와 차기 대선주자, 일부 의원들 간 엇박자가 심심치 않게 발생했다는 얘기다.
민주당 공천을 둘러싼 불협화음이 확산된 분기점은 ‘다시 조국 정국’의 도래였다. 민주당 공관위는 2월 15일 금태섭 의원 지역구인 서울 강서갑 지역구를 추가 공모 지역으로 분류했다. 앞서 조국 정국 당시 당 주류와 다른 목소리를 냈던 금 의원에 대한 불신임이 사실상 확인됐다는 뒷말이 나왔다. 당 공관위는 금 의원과 함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를 반대한 조응천 의원 지역구인 경기 남양주갑에 대해서도 ‘3인 경선’을 결정했다. ‘쓴소리 검사형제’가 나란히 낙천 위기에 빠진 셈이다.
그로부터 이틀 뒤(2월 17일) ‘조국 백서’의 필진 김남국 변호사는 강서갑 출마 결심을 굳혔다. 민주당 공천 구도는 즉각 ‘친조국 vs 반조국’으로 갈라졌다. 비문계 일각에선 “당 지도부가 금태섭 낙천을 위한 자객 공천을 한 게 아니냐”며 불만을 드러냈다. 금 의원은 한때 안철수계의 대표 격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금 의원은 2월 18일 국회 의원총회 직전 기자들과 만나 “이번 총선은 조국 수호 선거로 치를 수 없다”며 선전포고를 날렸다. 그러자 김 변호사는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조국 수호’에 대해 “허구적 프레임”이라고 반박했다가, 하루 만에 “민주진보진영의 많은 국민이 들었던 그 촛불이 부끄러운 것이냐”고 말을 바꿨다. 김 변호사 스스로 조국 수호 프레임을 인정한 셈이다.
민주당 공관위는 금태섭 의원 지역구인 서울 강서갑을 추가 공모 지역으로 분류했다. 2월 19일 본회의에 참석한 금태섭 의원. 사진=박은숙 기자
파장은 컸다. 당 지도부의 ‘보이지 않은 손’ 논란으로 확전했다. 유시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2월 18일 재단 유튜브 채널 ‘유시민의 알릴레오’ 생방송에서 “내가 김 변호사라면, 험지에 가서 패기 있게 붙을 것”이라고 하자, 손혜원 무소속 의원은 하루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신인이 험지를 골라 가겠다고 하면 민주당은 순순히 그런 곳에 보내주는가”라고 반박했다. 김 변호사는 손 의원의 주선으로 전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하려다가 돌연 연기했다.
김남국 영입을 비판한 이른바 ‘문자사건’은 이해찬식 공천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연합뉴스는 친문계인 박광온 민주당 의원이 2월 1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당 공천을 비판하는 지지층의 문자 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을 포착했다. 문자에는 “김남국 인재 영입부터 실수가 아닌가. 아니 귀 닫은 당의 오만함이 부른 필연적 패착 아닌지, 독선과 오만함이 부른 일련의 참사가 계속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적혔다. 화들짝 놀란 당 지도부는 뒤늦게 불출마를 권유했지만, 김 변호사는 2월 19일 강서갑에 공천을 신청하며 직진을 택했다.
소신 개혁파로 분류되는 박용진 의원(서울 강북을)은 같은 날 당 지도부를 향해 “균형 감각을 잃었다”며 “새누리당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는 20대 총선 당시 진박(진짜 박근혜) 공천 논란으로 참패한 보수정당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경고였다. 총선 직전 ‘최대 180석’까지 전망했던 새누리당(현 미래통합당)은 당시 김무성 대표와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옥새 파동’까지 일으키면서 자멸 수순을 밟았다.
진문 감별 논란은 이뿐만이 아니다. 현역 의원 가운데 두 번째로 컷오프(공천 배제)된 정재호 의원(경기 고양을)은 19대 대선 당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측근으로 꼽힌다. ‘현역 의원 1호 컷오프’인 신창현 의원(경기 의왕·과천)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당대표 시절 비서실장을 맡았다. 추미애 체제 당시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을 지냈던 강희용 예비후보도 당의 서울 동작을 전략공천 지정으로 본선 진출이 좌절됐다.
같은 지역에서 뛰던 허영일 예비후보도 마찬가지다. 허 예비후보는 김부겸 의원(대구 수성갑)이 행정안전부 장관을 맡던 시절 보좌관을 지냈다. 대표적인 박원순계로 통하는 하승창 전 청와대 사회혁신수석의 도전 지역인 서울 중·성동을 지역도 전략지역으로 지정됐다.
경기 김포을에 출사표를 낸 박상혁 전 청와대 행정관도 예선에서 미끄러졌다. 그는 2012년 18대 대선 때 안철수 캠프 부대변인과 2016년 박원순 서울시장의 정무보좌관 등을 역임했다. 정권 실세 입김 논란이 일파만파로 확산하자, 비문계 4선인 오제세 의원(충북 청주·서원)은 “노영민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의 의원 시절) 보좌관 출신 이장섭이 기어이 컷오프시키려 한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원혜영 공관위원장 등에게 보내는 모습이 언론에 포착됐다.
공교롭게도 당 주류와 대척점에 섰거나, 친문 직계가 아닌 이들이 줄줄이 나가떨어지면서 비롯된 일들이다. 이 대표의 공천 전횡 논란은 급기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까지 소환했다. 신경민 민주당 의원은 이 대표가 서울 영등포을에 출마하는 김민석 전 의원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소문이 돌자, 2월 18일 경남 양산으로 내려가 권 여사를 만났다. 당 내부에선 ‘이해찬·양정철·최재성이 시스템 공천을 무력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관전 포인트는 공천 논란 속에서 개문발차한 민주당 선대위 투톱의 순항 여부다. 민주당은 기약 없이 미뤘던 선대위를 2월 20일 띄우며 총선 체제로 전환했다. 당 내부에서 잇따라 터지는 공천 논란을 조기에 수습하겠다는 의지로 분석된다. 이 대표는 총선 전략을, 이 전 총리는 선거유세 지원을 각각 맡으며 역할 분담에 나섰다.
하지만 이들 조합이 시너지를 낼지는 미지수다. 이들은 ‘임미리 칼럼 고발’ 사태에서 한 차례 삐걱거렸다. 이 대표는 사과도 당 차원의 실무진 징계도 하지 않았다. 반면 이 전 총리는 “겸손하지 않게 보인 것들에 대해 국민께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덮고 가려는 당 대표와 털고 가려는 차기 대선주자가 엇박자를 낸 것이다. 일부 대선주자 측에선 “이 전 총리 중심으로 선거를 치러야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총선 막판 정권심판론 소구력에 따라 ‘이해찬 2선 후퇴론’에 불이 붙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대표의 공천 실책은 이미 동시다발적으로 터졌다. ‘현역 의원 하위 20%’에 대한 당 지도부의 비공개 결정은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는 이변 가능성의 문을 닫았다. 당 경선 시 청와대 출신들이 전·현직 대통령의 이름을 경력에 사용할 수 없게 한 결정도 마찬가지다. 이는 문재인 정부 청와대 인사들과 맞붙는 설훈·이형석·남인순 최고위원 등이 강하게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해 한 예비후보자 선거캠프 관계자는 “현역 기득권 보호 장치”라며 “논란만 키우지 않고 가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집권 4년 차 들어서도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도가 40%대 중반을 형성하자, 당내 분열 요소 줄이기에 급급하다는 얘기다. 민주당 중진 한 의원은 “하루하루 표가 우수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고 꼬집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