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쇼핑이 오프라인 매장 전체 중 30%를 정리한다는 구조조정 계획을 밝히면서 유통기업 1위 롯데가 기존 위치를 유지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롯데마트 서울역점 전경. 사진=고성준 기자
국내 1위 유통기업 롯데쇼핑은 백화점·아울렛·마트·슈퍼·롭스 등 롯데쇼핑의 718개 매장 중 약 30%에 달하는 점포 200여 곳을 정리한다는 계획을 지난 13일 발표했다. 슈퍼는 현재 412개 가운데 70여 개, 마트는 124개 중 50여 개를 폐점하는 등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헬스 앤 뷰티 매장 롭스도 131개 중 20여 개, 백화점·아울렛은 51개 중 5개가량 문을 닫는다. 앞으로 5년간 수익성이 떨어지는 점포 위주로 줄여나가면서 재무건전성과 기업 가치를 높이겠다는 목표다.
대규모 구조조정은 실적 부진 때문이다. 롯데쇼핑은 2019년 영업이익이 2018년(5970억 원) 대비 28.3% 줄어든 4279억 원에 그쳤다. 2019년 당기순손실은 8536억 원으로 적자 폭이 2018년(4650억 원)보다 2배가량 늘었다. 1인 가구 증가와 이커머스 성장으로 소비시장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바뀐 데 대해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 박주근 대표는 “소비자들이 개인화되면서 디테일한 생활방식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면 소비를 이끌어낼 수 없다”며 “롯데는 형제 간 경영권 싸움과 신동빈 회장의 국정농단 재판 등으로 변화에 대응할 타이밍을 놓쳤고, 그 결과 뼈아픈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라고 봤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내수 부진도 이유다. 유럽에서는 2008년 이후 대형 매장이 사라지는 것이 일상화됐고 미국에서도 폐점이 비일비재한 상황이다. 한국은 그간 고속 성장을 해온 중국 덕분에 이러한 흐름을 피할 수 있었으나 중국 경제성장률이 줄고, 내수 부진과 사드 보복, 일본 불매운동, 코로나19 등의 요인으로 타격이 잇따르면서 구조조정이 빨라졌다는 것.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수축경제로 모든 것이 다운사이징 이코노미가 되는 것”이라며 “롯데의 구조조정은 이마트나 홈플러스 등 다른 대형 오프라인 유통업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롯데쇼핑은 유통회사를 버리고 생활방식을 제안하는 서비스 회사로 거듭나겠다는 비전을 내놨다. 총 330만 5785㎡가량의 매장 공간과 축적된 상품기획 노하우, 방대한 고객 데이터를 활용해 업태 경계를 넘나드는 매장으로 개편한다는 계획이다. 이커머스 사업도 강화해 3월 말 유통 계열사를 아우르는 통합 온라인 쇼핑몰 ‘롯데온’을 론칭한다. 백화점과 마트, 슈퍼, 롭스, 홈쇼핑과 하이마트를 하나의 앱으로 통합하고, 고객 데이터와 인공지능 분석 시스템을 활용해 개인별 맞춤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청사진이다.
업계는 롯데 행보가 유통 패러다임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수순이라고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점포 운영에 따른 인건비와 부동산 임대료 등 고정비용 부담은 여전한데 유통 채널 다양화로 오프라인 매출은 줄어드는 만큼 갈수록 수익성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결과다. 구조조정은 몸집을 가볍게 해 고정비 부담을 줄이는 한편, 온라인 사업을 강화하고 오프라인 고객을 매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해나가겠다는 의지 표현이란 분석이다.
일각에선 롯데가 유통에 힘 빼고 케미칼에 주력할 것이란 전망도 내놓는다. 내수시장은 인구 감소와 소비채널 다변화로 유통업계 경쟁이 치열해졌다. 유통·식품 위주 B2C(기업과 소비자간 거래) 사업에 한계를 느끼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글로벌 위주 B2B(기업과 기업간 거래) 사업인 석유화학사업 육성에 주력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롯데는 유통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금융계열사 롯데손해보험·롯데카드를 2019년 매각했다. 2018년에는 롯데케미칼을 신동빈 회장이 최대주주인 롯데지주에 편입시켰고, 이듬해 울산공장을 증설하고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대규모 석유화학단지를 조성하는 등 연이은 투자를 단행했다. 신동빈 회장이 1990년 한국 롯데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한 계열사도 롯데케미칼 전신 호남석유화학이다. 최근 롯데의 행보는 그룹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해 신동빈 체제를 확실히 구축하기 위한 행보라는 해석이다.
박주근 대표는 “현행법상 지주사는 자회사로 금융사를 둘 수 없어 매각했을 수도 있지만 금융지주사를 만들어 편입시키는 등 매각 외에도 방법은 있었다”며 “유통과 시너지가 큰 금융사를 내놓은 건 그쪽에 집중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라고 해석했다. 이어 “지금까지 식품·유통 내수 위주 B2C가 롯데의 사업 키워드였다면, 앞으로는 해외 위주 B2B로 바뀔 것”이라고 예측했다.
재계 관계자도 “아버지 신격호 세대에는 부동산 자산이 중요했기에 땅을 매입하고 유통을 키웠지만, 신 회장이 자란 일본은 부동산 버블도 많이 겪은 나라로 그 모습을 봐왔을 것”이라며 “그룹 매출에서 석유화학 비중도 커지다보니 더 글로벌하고 지속 가능한 그룹으로 가고자 체제 정비에 나선 것”이라고 봤다.
롯데쇼핑이 대규모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그 배경과 다음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2016년 국회에서 열린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모습.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속내가 어떻든 롯데쇼핑이 업계 절대강자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긍정적으로 전망하는 입장에서는 막강한 자금력과 롯데제과·롯데칠성 등 다양한 식품 계열사를 가졌다는 점에 주목한다. 계열사를 활용해 원가경쟁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업력·노하우와 자금력을 활용하면 과열경쟁으로 적자에 허덕이는 이커머스 업계 사이에서 오래 살아남아 강자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것.
박종렬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이커머스 시장이 절대강자 없이 서로 점유율 경쟁을 하며 성장하고 있다”며 “롯데는 온라인 대응에 늦은 감은 있지만 유통 업력이 오래된 데다 대규모 자본도 있으니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전망했다.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도 “일단 시도해보고 성과가 안 나거나 더 빠른 점유율 확대를 위해 적자 이커머스 업체를 인수하는 수순으로 성공적인 온라인 전환에 나서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회의적 시각도 적지 않다. 이커머스 시장 경쟁은 이미 치열하기 때문이다. 1~2년 전부터 온라인 사업부문을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이렇다 할 실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업계도 미지근한 반응을 보인다. 구조조정에 성공해 움직일 준비가 됐다고 판단하기 전까지는 업계 반응이 있기는 힘들다는 얘기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체계와 마인드 자체가 다르다는 점도 부정적 전망의 이유다.
서용구 교수는 “롯데처럼 보수적이고 오프라인에 길든 유통기업이 계열사를 통합하고 모바일 앱을 만든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성공할 수 있겠느냐”며 “이미 이커머스 시장엔 24시간 배송해주는 쿠팡뿐 아니라 배달의민족까지 들어와 경쟁 중이어서 이를 뚫고 유통업 1위라는 자리를 유지하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커머스 업계 다른 관계자도 “이커머스 업체들은 처음부터 모바일 시장에 최적화된 플랫폼과 전략을 구사해왔다. 오프라인에 최적화된 롯데는 초기 시행착오가 많을 것”이라며 “이미 경쟁이 치열해 롯데가 끼어든다고 해서 단숨에 1위에 오르기는 힘들다. 오히려 업체마다 더한 제살 깎아먹기에 들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롯데가 유통 강자 위치를 유지하려면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 플랫폼을 연결하는 옴니 채널을 얼마나 잘 구축하느냐가 관건일 것으로 보인다. 수익성 떨어지는 매장의 경우 주 52시간제로 여유가 생긴 고객들이 즐길 수 있는 장소로 탈바꿈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롯데쇼핑이 유통이 아닌 서비스 회사로 거듭나겠다고 한 것도 매장을 물건 사러만 가는 공간이 아니라 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서점에서 책을 읽는 등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로 바꿔보겠다는 메시지란 분석이다.
서용구 교수는 “미국 월마트는 이커머스 업체를 인수해 모바일로 주문해서 매장에서 픽업하는 서비스로 실적을 턴어라운드(흑자전환)시켰다”며 “롯데도 월마트처럼 옴니 채널을 구축할 수 있는지가 초미의 관심”이라고 했다. 이어 “이커머스 업체를 인수해 온라인 사업을 유지하고, 오프라인 매장은 소비자들이 즐길 수 있는 먹고 노는 공간을 만드는 등 양측을 분리해서 가져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제언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