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숙명여자대학교 게시판에 ‘성전환 남성’의 입학을 환영하는 대자보(왼쪽)와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대자보(오른쪽)가 나란히 붙어 있다. 이와 같이 최근 트랜스젠더가 사회 구성원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사회적 진통’을 일으키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근 ‘트랜스젠더 논쟁’을 본격적으로 우리 사회에 끌고 들어온 사건은 변희수 하사 강제 전역 사건이었다. 변 하사는 남성으로 입대해 부사관으로 복무하던 가운데 2019년 11월 소속 부대 부대장의 승인을 받아 성전환 수술을 했다. 변 하사는 여군으로 복무를 이어나가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육군 전역심사위원회는 양쪽 고환을 제거한 변 하사가 심신장애 3급에 해당한다며 전역을 명령했다.
이어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A 씨가 숙명여대에 합격했지만 결국 입학을 포기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일부 재학생과 각종 여성 단체의 입학 거부 목소리에 부딪히다 내린 결정이었다. 논란이 계속되자 A 씨는 2월 7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에서 “여자대학에는 다시 지원하지 못할 것 같다”며 입학 포기 뜻을 내비쳤다.
두 사건 당사자인 변희수 하사와 A 씨를 맹렬히 비난하거나 비판했던 진영은 다름 아닌 일부 여성이었다. 특히 여성 인권 운동 진영이라고 불리는 페미니스트 여성이나 페미니즘 단체였다. 일요신문이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트랜스젠더 여성은 “변희수 하사 때는 비꼬는 정도였고, A 씨 때는 대놓고 조롱했다”고 설전이 오갔던 양상을 전했다.
실제 A 씨의 입학을 거부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여러 페미니즘 단체에서 냈다. 특히 숙명여대, 서울여대, 이화여대, 덕성여대, 동덕여대, 성신여대 등 서울 지역 6개 여자 대학의 21개 페미니즘 단체는 연합해 집단 성명문을 내기도 했다. 이들은 성명문에서 성전환 수술한 여성을 ‘본인이 여자라고 주장하는 남자’로 지칭했다.
이들은 성명문에서 “본인이 여자라고 주장하는 남자들이 가부장제 속 여자의 실제 삶에 대해 조금이라도 안다면, 여자들의 공간을 자신의 성별 증명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들의 공간을 존중해야 할 것”이라며 “본인이 여자라고 생각하는 남자들은 여성 혐오 사회에서의 여자의 삶을 알고 존중하기보다 여자들의 공간과 기회를 빼앗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성전환 수술을 받은 뒤 강제 전역 판정을 받은 변희수 부사관이 1월 22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군의 강제 전역 조치에 대한 입장을 밝힌 뒤 눈물을 흘리며 경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소수자 혐오로 보기 힘들다. 여성은 메일바디(Male Body), 즉 남성의 몸을 가지고 태어났던 사람, 남성 폭력에 가담하고 동조했던 경험이 있는 이에 대한 공포가 있기 때문에 거부 반응을 당연히 드러낼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트랜스젠더 여성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이 여성의 공간인 여대에 들어오는 것이 아닌 제3지대에서 이뤄질 필요가 있다. 이분들을 위한 성 중립 사회적인 공간을 사회적 비용을 들여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트랜스젠더 여성을 여성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급진적인 페미니즘 집단은 배제적 래디컬 페미니스트인 터프(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t·TERF)라고 알려져 있다. 페미니즘 진영에서도 트랜스젠더 여성을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고 전해진다.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손희정 연세대 젠더연구소 연구원은 “트랜스젠더에 관한 가짜뉴스에 기반해서 만들어진 망상 속 공포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남성 폭력이 메일바디 즉 남성 신체 선천적 특징에서 무조건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일부 트랜스젠더 이미지를 일반화하면서 이들의 존재를 배제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소수자 혐오”라고 꼬집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또 다른 트랜스젠더 여성은 “터프의 발언은 소수자 혐오 이전에 개인의 인권을 존중하는 민주주의에서 벗어난 파시스트적 발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이런 문제가 계속 발생할 텐데 청소년 트랜스젠더에겐 얼마나 지옥일지 상상하기 힘들다”고 전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