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교육부는 코로나19의 확산 방지를 위해 개학 연기, 휴업 등 학사일정을 조율해 수업일수를 조정할 수 있다는 공문을 내렸다. 이를 두고 한 언론이 자의로 해석해 “교육부가 코로나19를 천재지변으로 판단해 수업일 단축을 허용했다”는 보도를 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최근 각 종 행사와 공연 등이 취소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반적으로 항공사나 여행사를 비롯해 제조사 등의 약관에서는 천재지변에 의해 물품이 손상되거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을 경우 주관사의 ‘면책사항’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그 반대의 약관도 존재한다. 외식업 등에서는 천재지변을 제외한 모든 경우를 고객의 변심으로 간주해 환불불가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한마디로 어떤 약관에서는 천재지변일 경우 환불이 불가하고 또 다른 약관에서는 천재지변일 경우에만 환불이 가능하다.
한 소비자는 “돈을 이미 받은 업체는 천재지변이라며 전액 환불이 어렵다 하고, 돈을 받아야 하는 업체에서는 천재지변이 아니니 원칙대로 계약 이행을 요구하니 혼란스럽다”고 토로했다. 사업체나 약관에 따라 다른 환불 규정 때문에 소비자의 혼란이 큰 상황이다. 이에 공정거래위원회는 “코로나 19가 활성화 되어 감염이 확실시 되는 상황이라면 불가항력(천재지변)이라고 할 수 있지만, 현재와 같이 우려에 의할 경우는 상황과 사업체의 약관에 따라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여행과 숙박 등의 경우, 공정위 홈페이지의 ‘소비자 분쟁 품목별 해결기준’에서 국외여행, 국내여행 시 천재지변으로 인해 여행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사유로 취소할 경우 계약금을 환급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숙박업과 골프장, 공연에도 천재지변에는 입장료를 환급해 주도록 되어 있다.
공정위는 ‘소비자 분쟁 품목별 해결기준’에서 국외여행, 국내여행, 숙박, 공연 시 천재지변으로 인해 여행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사유로 취소할 경우 계약금을 환급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사진=공정위 홈페이지 캡처
실제 여행업에서는 이런 공정위 권고가 반대로 적용되고 있다. 대형 여행사 관계자는 “원칙적으론 천재지변이 발생하면 여행사에 귀책사유가 없다. 다만 도의적인 차원에서 어느 정도 커버해주는 것”이라 전했다. 업체에 따라서도 대응방침이 다르다. 다른 대형 여행사 관계자는 “천재지변 발생 시기나 상품 구성에 따라 환불 범위가 달라진다. 천재지변이 일어나기 전이지만 천재지변이 현저히 우려될 경우 100% 환불이 가능하지만, 출발 후 천재지변이 일어났다면 환불 불가”라고 말했다. 같은 상황이라도 해당 업체가 먼저 취소했느냐 소비자가 먼저 취소했느냐에 따라 면책대상과 보상범위도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웨딩홀이나 컨벤션의 경우 일반적 약관에는 “천재지변 등 불가항력적인 사유로 계약을 이행할 수 없는 경우 서로에게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쌍방면책)”는 공정위 권고와는 정반대 약관이 존재한다.
자동차보험에 있어서는 같은 천재지변이라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태풍이나 홍수는 자차 보험이 있을 경우 보상이 되지만 지진이나 해일, 화산폭발 등은 보험대상에서 제외된다. 또 천재지변이라고 해서 일괄적으로 처리되지 않고 개인이 든 특약이나 보험사 약관에 따라 보장 내용이 달라진다. 보험사에 따라서는 전쟁, 내란, 사변, 폭동 등을 천재지변이라 규정해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지만 지진에 대해서는 보험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정부가 국가재난 사태를 선포할 경우 보험사의 지급 면책 사유에 해당해 보험금 지급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항도 있다.
사업체나 약관에 따라 다른 환불 규정 때문에 소비자의 혼란이 큰 상황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예약 취소 관련 컨벤션회사 관계자가 네이버 지식인에 올린 글.
공정위는 지난 20일 일요신문에 “천재지변에 따른 환불 관련 사항은 전적으로 각 사의 약관에 따른다”며 “공정위와 한국소비자원이 권고나 피해보상 합의점 제시 정도는 할 수 있지만 법적 효력이 없어 시비를 따지고자 할 경우 민사소송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불공정약관이라 할지라도 이에 대해서는 약관법에 따라 약관심사청구를 할 수 있지만 이 역시 사후심사제 원칙을 따르기 때문에 약관이 개정된 후의 소비자부터, 심사청구를 한 대상자만 적용된다.
또 국제 행사 취소와 관련해 공정위는 “국내에 사업장이 없는 외국 기업이나 국제 행사 등에 관해서는 국내법 적용이 어려워 소비자가 약관을 잘 보고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소비자가 국제소비자포털 등에 이의를 제기할 순 있지만 이 역시 해결 방안에 대해 지원할 뿐 직접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현재로선 억울하거나 불합리한 취소를 당해도 현실적으로 손 쓸 방법이 없다.
천재지변과 그 보상 범위에 대해 한 변호사는 “갑작스러운 기상이변이나 전염병 등이 발생했을 경우 천재지변을 명확하게 정의해 해당 여부를 구분하는 것은 어렵다. 사안별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예를 들어 공항이 폐쇄되거나 국가로부터 여행금지국으로 지정되는 등의 경우가 아닌 한, 현재로서는 소비자가 취소 수수료를 부담할 수밖에 없다고 보인다”고 전했다. 특히 전염병 등에 관한 경우는 판례가 거의 없는데다 천재지변에 대한 정의나 상황에 미묘한 부분이 많아 법원의 판결에도 일관성이 없고 그러다보니 판례도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2016년 대법원 판례에는 “불가항력 등 당사자의 책임 없는 사유로 인한 계약 불이행, 계약해지, 계약종료 시 면책되어 귀책사유 없는 상대방에게 손해배상 책임 물을 수 없다”는 전례가 있지만 불가항력에 대한 해석 자체가 분분한 실정이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