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이 입수한 음원 사재기 견적서. 사진=최훈민 기자
일요신문은 최근 한 음반업체에서 진행했던 ‘마케팅 견적서’를 입수했다. 음원이 나왔을 때 인터넷 전반에 음원 홍보를 대행하는 이른바 바이럴 마케팅 업체가 만든 견적서였다. 발행 업체명은 나오지 않았지만 담당자 이름이 정확히 적혀 있다.
이 견적서에는 음원 사재기와 차트 조작으로 한동안 시끄러웠던 멜론 순위 조작 가격이 명시돼 있었다. 차트 50위권은 1일에 2억 5000만 원, 100위권은 1일에 8800만 원이었다.
이는 음원 사재기 의혹을 받는 가수 송하예의 소속사 더하기미디어 이성권 대표를 두고 최근 불거진 이른바 ‘음원 사재기 중개 의혹 사건’과 맞닿아있다.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TV조선 ‘미스터트롯’의 한 출연 가수 소속사가 2018년 말 앨범을 발매한 뒤 이 대표에게 음원 차트 조작을 의뢰하며 8000만 원을 입금했다는 녹취가 최근 폭로됐다. 이 소속사가 이 대표에게 건넨 금액은 부가세를 제외하면 이 견적서에 나온 멜론 차트 100위권 가격과 동일한 가격이다(관련 기사 총공 테스트? ‘송하예 음원 사재기 의혹’ 프로듀서 김대건의 해명).
멜론에서 음원을 재생해주는 스트리밍 음원 작업은 1시간에 3000곡까지 동시 재생이 가능하다고 나왔다. 가격은 1곡 재생당 1만 원이었다. 다운로드는 1시간에 1000개까지 가능했다. 곡당 1만 2000원이었다. 댓글은 하나당 6000원, 좋아요 버튼을 누르는 것도 개당 6000원에 1시간 1000개까지 가능하다고 나타났다. 40만 원을 내면 멜론에 올라온 뮤직 비디오 조회수를 1만 회 올릴 수 있었다.
네이버 뮤직비디오 조회수 5000회 올리는 가격은 단돈 30만 원이었다. 네이버 TV 채널인 TV캐스트 조회수 작업에는 조회수 5만 회에 200만 원이 들었다. 유튜브 조회수 10만 회 올리는 데에 드는 비용은 70만 원이었다. 하루 최대 100만 회를 올릴 수 있었다. 멜론 급상승 검색어도 작업이 가능했다. 500만 원이면 멜론 급상승 검색어 순위 10위 안에 올릴 수 있다는 설명도 함께했다.
멜론과 함께 음원 시장을 이끌어 가는 지니도 음원 사재기 업체의 손아귀에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지니 실시간 차트에 1시간 머무는 데에는 5000만 원에서 8000만 원이 필요했다.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1시간 올라와 있는 데엔 400만 원이 들었다. 카카오 뮤직 차트도 가능했다. 5000만 원이면 카카오 뮤직 차트 10위권에 안착이 약속됐다. 3000만 원만 있으면 카카오 뮤직 차트 50위권에 곡을 올릴 수 있다고 나왔다. 음원 사재기를 넘어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바이럴 업체의 능력이 여실히 드러났다.
조작은 음원 차트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실시간 투표에까지 뻗쳐 있었다. 단순히 아이디만 필요한 실시간 투표에는 1표당 6000원이 필요했다. 최대 7만 표를 끌어 모을 수 있었다. 아이디를 넘어 전자우편 인증까지 필요한 투표는 1표당 7000원이라는 가격표가 붙었다. 최대 3만 표 모집이 가능했다. 휴대전화 인증까지 필요한 실시간 투표는 1표당 8000원이 들었다. 3만 표가 최대치였다.
실시간 투표 조작은 사기 범죄와 연계됐을 가능성이 높다. 투표 업체에서 문자 투표를 유료로 진행하는 까닭이다. 이미 경찰은 실시간 투표 관련 조작에 대해 총력을 기울여 수사를 펼치고 있다. 경찰은 2월 14일 시청자 투표 조작 혐의로 케이블채널 엠넷(Mnet)의 오디션 프로그램 ‘아이돌학교’ 제작진 2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경찰은 이 프로그램 시청자의 유료 문자 투표 결과가 조작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경찰은 2019년 7월 엠넷의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시즌 4의 시청자 투표 조작 논란이 불거지자 수사에 착수했다. 프로듀스 101 시리즈를 담당한 안준영 프로듀서와 김용범 총괄 프로듀서가 2019년 12월 업무방해와 사기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후 경찰은 아이돌학교로 수사를 확대해 왔다.
문제는 이런 조작이 음악계뿐 아니라 주요 포털의 여론 형성에까지 번졌다는 정황이 나온 점이다. 우선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순위권에 1시간 안착시키는 데 드는 비용은 5000만 원이면 충분했다. 다음은 이보다 싼 400만 원이었다. 네이트 랭킹뉴스는 60만 원이면 순위권 진입이 가능했다. 네이버 메인 화면에 소개되는 콘텐츠는 800만 원이었고 다음과 카카오톡 메인 콘텐츠 노출은 7000만 원이었다.
인터넷 커뮤니티도 마찬가지였다. 대표적인 커뮤니티 네이트판은 100만 원이면 인기 게시물로 등극이 가능했다. 다음 카페 게시물을 인기글로 올리는 건 30만 원이면 충분했다. 커뮤니티 15곳에 글을 올리는 데 드는 돈은 고작 180만 원이었다.
일요신문은 견적서에 영업 담당자로 표기된 김 아무개 씨에게 여러 차례 접촉을 시도했지만 아무런 답을 받을 수 없었다. 다만 견적서에 남겨진 정보를 토대로 김 씨 이력을 살펴볼 수 있었다. 김 씨는 과거 H라는 웹사이트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H는 S 사가 운영했다. 2000년대 후반 F라는 상호로 영업을 시작한 이 업체는 2013년 광고대행업을 추가하며 상호를 H로 바꿨다. 재택 아르바이트를 비롯한 유사 다단계 판매와 광고대행이 이 업체의 주 수입원이다. 보통 블로그 글 작성, 댓글이나 설문조사, 웹 페이지 광고 등으로 수익을 올렸다.
김 씨가 과거 단순 댓글이나 글쓰기 이외에 다른 방식으로 영업을 했던 흔적도 나타났다. 블로그나 커뮤니티 글을 작성한 뒤 클릭 수를 올려 인기 글로 만드는 작업 형태였다. 김 씨는 2011년 6월 한 커뮤니티에 ‘광고 글 하루 만에 조회수 엄청 늘려 드리는 작업’이란 글을 작성한 바 있었다. 이 글에는 “클릭 작업을 한 글은 조회수를 많이 올릴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김 씨가 매크로를 기초로 한 프로그램을 돌린 정황도 포착됐다. 넥슨은 2019년 8월 16일부터 8월 20일 사이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한 1124명을 적발해 게임 이용제한 조치를 취했다. 김 씨는 2019년 8월 20일 서든어택 불법 프로그램 단속에 걸린 적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