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본인의 이름이 아닌 동생과 매니저의 이름으로 진료기록부를 작성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의 주장대로 ‘불법 투약’이 아니라면, 굳이 ‘차명진료’를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차명진료’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아니었는지에 대한 의혹도 제기된다.
‘국민 배우’ 하정우가 프로포폴 불법 투약과 차명 진료로 데뷔 이래 처음으로 대형 논란에 휩싸였다. 사진=박정훈 기자
#쟁점은 ‘차명진료’…왜 타인의 이름을 썼나
하정우는 차명진료를 인정했다. 그는 ‘차현우’란 이름으로 알려진 소속사 워크하우스컴퍼니의 대표이자 자신의 동생인 ‘김영훈’ 씨의 이름으로 진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정우 측은 이에 대해 “원장이 프라이버시를 중시했고, (진료 과정에서) 하정우에게 ‘소속사 대표인 동생과 매니저의 이름 등 정보를 달라’고 요청했기에 별 다른 의심 없이 전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정우 역시 이와 같은 행위가 막연히 ‘프라이버시 보호 차원’이라고 여기고 의심을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후 하정우의 법률대리인인 조광희 법무법인 원 변호사가 직접 “하정우는 식당 예약도 자신의 이름으로 하지 않을 정도로 매사 조심스러워 한다”며 이 같은 ‘프라이버시 보호 주장’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차명진료는 다른 이의 이름으로 식당을 예약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사안이다. 앞서 2013년 연예계를 강타한 프로포폴 불법 투약 사건에서도 차명진료는 큰 문제가 됐다. 당시 방송인 현영은 “차명으로 진료 카드를 작성해 프로포폴을 맞아왔다”고 진술해 강남 성형외과나 피부과에서 알음알음 행해지던 프로포폴 차명진료 논란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바 있다. 연예계 관계자들이라면 이 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진료기록부를 거짓으로 작성하는 것은 의료법 제22조 제3항 위반 사항으로 진료를 담당한 의사와 기록부를 작성한 관계자의 처벌이 가능하다. 하정우의 주장대로라면 의사는 하정우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처벌 위험을 무릅쓰고 위법을 권유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더욱이 ‘프라이버시를 목적으로 한 이름의 대여’를 하정우는 물론, 그의 동생도 인지한 상태에서 진행했다면 이들에겐 의료법 위반 방조 혐의가 적용될 가능성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 왜 이 진료에 대해서만 차명진료를 택했는지도 의문이다. 실제로 하정우는 2016년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유명 클리닉에서 피부과 진료를 받는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린 바 있다. 피부 진료는 실명으로 하면서 왜 프로포폴 진료는 차명으로 받았느냐는 지적을 피하기 힘든 대목이다.
#의료 목적 프로포폴 투약 인정될까
하정우가 받았다는 피부과 시술에 프로포폴이 반드시 필요했는지 여부도 이번 사건의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박정훈 기자
실제로 흉터 등을 치료하기 위한 레이저 시술 중에는 수면마취가 필요할 정도로 고통이 큰 시술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시술조차 최근에는 수면마취를 진행하지 않는다는 것이 피부과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시술 진행 과정에서 환자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체크해야 하고, 수면마취의 부작용이 크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 추세라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강남의 한 피부과 전문의는 “이전에는 레이저가 강하게 들어가는 시술의 경우 수면마취를 진행하기도 했으나 최근에는 대다수가 국소마취 또는 연고마취로 고통의 강도를 줄이는 방식으로 시술하고 있다”며 “수면마취 부작용이 크고, 시술에까지 프로포폴을 이용한 수면마취가 늘어나면 병원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씌워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말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일부 성형외과나 피부과 사이에서 암암리에 퍼지는 ‘프로포폴 전문병원’이라는 인식이다. 강남의 일부 병원에서는 상담실장이 환자들에게 “실제 시술은 카드로 결제하고, 현금으로 10만 원가량 내면 프로포폴 마취를 추가로 해드린다”며 오히려 수면마취를 먼저 권유하는 경우도 있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온다.
성형외과 전문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회원 L 씨는 “피부 관리를 위해 갔을 뿐인데 갑자기 프로포폴을 권유해서 깜짝 놀랐다. 시술보다 프로포폴 장사가 메인인 곳”이라며 “이런 방식으로 하루에만 프로포폴로 대여섯 번씩 마취해주는 곳도 있다. 지난해부터 피해자들이 신고를 위해 사례를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한 피부클리닉 관계자는 “프로포폴이 반드시 필요한 시술이 있고 그렇지 않은 시술이 있는데, 필요하지 않은데도 일부러 권했다면 문제”라며 “예컨대 1~2년에 한 번씩 진행하는 리프팅이라면 몰라도 회복 상태를 보며 단기간에 진행하는 레이저 시술의 경우는 아프다는 이유만으로 매번 프로포폴을 맞을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하정우는 이 같은 시술의 치료 경과 관찰 과정이나 병원 방문 일시 예약 과정 등이 기록된 수개월간의 문자 내역을 통해 ‘진료를 목적으로 한 프로포폴 투약’을 주장했다. 다만 하정우가 이처럼 ‘강도 높은 시술’을 받으며 회복기를 거친 기간은 영화 ‘백두산’의 촬영 기간인 2019년 2~7월과 맞물린다. 프로포폴이 필요할 정도로 강도 높은 시술을 받으면서 동시에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 촬영에 임했다는 것에 대해서도 하정우의 명확한 해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2013년 연예계 프로포폴 불법 투약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시술을 위한 투약이더라도 적절한 처방이 아니거나 과다 투약일 경우 불법”이라고 밝힌 바 있다.
#문제의 병원은 ‘VVIP’만 위한 곳?
하정우가 진료를 받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I 의원은 재벌 총수일가에게도 프로포폴을 투약해 준 곳으로 지목됐다. 하정우는 평소 친분이 있던 채승석 애경개발 전 대표에게 이 병원을 소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취재 결과, 이 병원의 김 아무개 원장은 유명 다단계기업 A 사를 통해 이른바 ‘VVIP’들과 친분을 쌓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비트코인 개발에도 관여하고 있는 K 그룹 3세와 현재는 없어진 H 그룹의 2세가 A 사의 사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김 원장의 병원은 A 사의 주요 지점 중 하나로, 2014년부터 김 원장은 전국 각지에서 열린 회사 세미나에 참석하는 등 회원 모집에도 힘을 쏟아 왔다.
김 원장의 병원은 A 사 관계자들이 모이는 ‘사랑방’ 역할을 하기도 했다. 골프 라운딩 모임, 연예계 관계자들이 참석하는 VIP 파티 등 A 사의 사업에 도움이 될 만한 인맥 만들기도 김 원장과 그의 병원이 주축이 됐다. 병원의 고객들은 이 같은 인맥을 통해 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병원은 “재벌가와 연예인들이 드나드는 VVIP 전용 성형외과”로 A 사 내에서도 유명세를 떨쳤다.
실제로 이 병원은 일반인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같은 이름으로 강남에서만 20년 넘게 운영돼 온 것으로 알려졌으나 일반 성형외과 커뮤니티에서는 언급조차 되지 않는 곳이다. 일부 언론을 통해 홍보 보도자료 등을 내긴 했으나 이마저도 2011~2012년에 그쳤다. 한 성형외과 관계자는 “인맥이나 소개로만 고객 관리가 이뤄지는 곳은 일반인 손님이 들어오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홍보를 적게 하는 편”이라고 귀띔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