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진 평균 연령 25세 298일의 ‘젊은 팀’ 토론토는 어느덧 베테랑이 된 류현진에게 많은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사진=이영미 기자
2020시즌부터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활약할 류현진은 다양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팀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위상이다.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야수진의 평균 나이가 25세 298일로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어린 편이다. 지난 3년간 토론토는 270패를 당했고, 베테랑들을 트레이드 카드로 활용하고 나이 어린 유망주들 위주로 팀을 꾸리며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캐나다 유일의 메이저리그 팀이라는 자부심을 안고 사는 토론토 팬들에게 이 팀이 보이는 빈약한 투자와 성적은 절망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지난겨울 토론토 구단은 FA(자유계약) 시장에 나온 류현진 영입을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였고, 덕분에 4년 8000만 달러의 계약으로 류현진을 붙잡을 수 있었다.
지난 시즌 토론토는 무려 21명의 투수가 선발 등판한 불명예를 안고 있다. 선발진이 일찍 무너지는 바람에 여러 명의 투수들을 돌려막기용으로 마운드에 올렸기 때문이다. 급박한 상황에서는 오프너(불펜 투수가 첫 1, 2이닝을 던지고 이후 선발 투수가 등판하는 변칙 형태)가 올라갔고, 21명의 선발 투수 중 6명이 오프너로 기록되기도 했다.
이런 팀에서 류현진에게 8000만 달러를 안긴 이유가 무엇일까. 나이 어린 선수들 사이에서 무게 중심을 잡아줄 베테랑 선수가 필요했다는 점과 메이저리그 평균자책점 1위인 선수가 투수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플로리다주 더니든 TD볼파크의 토론토 훈련장에서의 류현진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LA 다저스와 달리 대부분의 일정이 류현진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어느 리그나 실력이 뛰어난 선수를 우대하는 것처럼 토론토는 류현진을 에이스 대우하며 주차장, 라커, 불펜피칭 자리까지 모든 부분에서 최고 대우를 하고 있다. 다저스에서의 류현진과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젊은 선수들이 류현진을 대하는 태도다.
지난 17일, 류현진이 두 번째 불펜 피칭을 마치고 내려왔을 때의 일이다. 우완 투수 트렌트 손튼이 류현진에게 다가가 커터 잡는 그립을 물어봤다. 류현진은 통역 없이 공을 잡는 그립을 보여주며 친절하게 설명했다. 손튼은 류현진에게 배운 그립을 팀 동료인 라이언 보루키에게 알려줬다. 보루키는 정보가 부족했는지 자신이 직접 류현진을 찾아갔다. 그도 류현진에게 커터 그립을 알려달라고 부탁한다. 류현진은 공을 잡는 모양을 보여주며 설명을 이어갔다.
당시 류현진은 그 장면을 지켜본 취재진들에게 “이제 같은 팀이니까 숨기는 것 없이 다 알려줄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가 알려준 대로 던진다고 해도 모두가 류현진처럼 던질 수 없는 게 함정이지만 류현진도, 선수들도 서로를 존중하고 배워가는 장면들은 신선한 느낌을 선사했다. 유니폼만 바꾸면 그곳이 한화 이글스 훈련장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류현진은 젊은 선수들을 살뜰히 챙겼다.
류현진이 자신을 찾아온 두 선수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오픈한 이유는 그들이 앞으로 토론토 마운드를 이끌 미래의 자원이기 때문이다. 이들 중 트렌트 손튼은 지난해 빅리그에 데뷔해 32경기 6승 9패 평균자책점 4.84를 기록하며 블루제이스의 유망주로 떠올랐던 선수다. 그는 자신이 류현진에게 커터 그립을 물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지금 내가 잡는 커터 그립이 류현진이 이전에 잡았던 그립이라고 하더라. 나도 커터를 던져야 하기 때문에 그의 조언이 필요했고, 그는 직접 공을 잡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어떻게 공을 던져야 하는지를 조언해줬다. 앞으로 체인지업에 대해서도 물어볼 예정이다.”
손튼이 류현진한테 더 배우고 싶은 부분은 그립만이 아니었다. 그는 류현진을 통해 빅리그에서 성공하려면 완벽한 제구와 타자의 타이밍을 뺏는 구종 변화도 중요하지만 마운드에서 평정심을 잃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많은 선수들이 그냥 빠른 공만 던지면 되는 줄 알지만 류현진은 다양한 공을 섞어 가며 상황에 따라 구속 조절을 하는 등 타자들을 요리해 나간다. 그는 마운드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법을 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한결같은 모습을 보인다는 게 그의 가장 큰 장점이다.”
류현진과 새로운 인연을 맺고 있는 토론토의 찰리 몬토요 감독은 새로운 ‘블루 몬스터’에게 무한 신뢰를 보이고 있다. 몬토요 감독은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젊은 투수들이 류현진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상황은 좋은 현상이다”며 “류현진은 좋은 투수로 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류현진은 단순히 선발 투수뿐만 아니라 팀의 무게를 잡아주는 베테랑의 역할도 해야하는 상황에 놓였다. 사진=이영미 기자
올 시즌 젊은 선수들의 성장과 팀 성적을 목표로 내세운 몬토요 감독한테 류현진은 특급 도우미 역할을 해야 한다. 류현진은 몬토요 감독의 자상하고 인자한 지도법을 마음에 들어 했다. LA 다저스의 로버츠 감독이 구단의 운영 방침에 전적으로 따르는 지도자였다면 몬토요 감독은 코치들과 선수들에게 많은 부분을 일임한 채 ‘매니저’ 역할에 충실한 스타일이다. 어찌 보면 류현진의 스승인 전 한화 이글스 김인식 감독과 비슷한 분위기다.
류현진이 다저스 때와 또 다른 모습을 보이는 건 훈련량에서도 엿볼 수 있다. 다저스 시절 류현진은 스프링캠프 때 시범경기 전에는 오후 1시 즈음에 퇴근했다. 그러나 토론토에서는 오후 3시를 훌쩍 넘긴다. 이전보다 상체 훈련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때문이다. 류현진에게 상체 훈련에 더 집중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대답 대신 미소만 지어 보인다.
토론토의 마크 샤피로 사장은 21일(한국시간) 스포츠넷 캐나다와의 인터뷰에서 “류현진 계약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우리는 이 계약이 필요했고, 류현진이 토론토를 더 좋은 팀으로 만들 것이라고 확신했다”는 내용을 전했다. 올 시즌 토론토의 1선발로 활약하게 될 류현진에 대한 구단의 의지와 기대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미국 플로리다=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