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치훈 9단이 챔피언스컵에서 첫 승을 거뒀다. 상대는 오유진 7단. 사진=한국기원 제공
조치훈 9단은 2017년부터 시니어리그에 선수로 참가했다. 부산 KH에너지팀은 지역 연고 1지명으로 조치훈을 선택했다. 처음에 조치훈은 “한국말도 잘하지 못 하는 나를 한국 기사들이 잘 받아줄까”라고 걱정했다. 이후 3년 동안 리그에 출전했고, 팀은 3년 연속 우승했다.
그는 매년 MVP에 올랐다. 2지명 장수영, 3지명 강훈, 4지명 이기섭과 형제처럼 지내며 대회마다 술잔을 같이 기울였다. 이젠 ‘한국 기사’가 아니라 ‘동료 선후배’라고 표현한다. 이 팀은 승부 후에 뒤풀이가 더 재미난 팀으로 유명하다. 조치훈은 “셋이 나가 대국하고, 한 사람이 져도 두 사람이 이기면 같이 기뻐했다. 자신이 이겨도 두 사람이 지면 같이 슬퍼했다. 이기든 지든 우리는 함께 열심히 했다”고 지난 3년을 표현했다.
시니어리그 폐막식을 마친 지 20일이 지나 조치훈은 다시 한국을 찾았다. 2020 대방건설배 ‘시니어 vs 여자 바둑리그’ 챔피언스컵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이 대회는 매년 시니어리그 우승팀과 여자리그 우승팀이 자웅을 겨루는 단체전 3번기다. 시니어리그 대표팀으로 KH에너지가 3년 연속 출전했다. 여자리그 우승팀들에겐 계속 졌다. 첫 해 포스코켐텍팀, 지난해엔 SG골프팀에 패했다.
올해 상대는 부안 곰소소금팀. 김효정 감독이 이끄는 오유진(1지명), 허서현(2지명), 이유진(3지명) 선수가 상대였다. 생각시간은 각자 20분에 초읽기 40초 5회. 여자리그 속기대국이 10분 40초 5회, 시니어리그가 30분 40초 5회여서 이 둘을 절충한 시간이다. 우승상금 1000만 원, 준우승 상금 500만 원.
대회를 앞두고 KH에너지 김성래 감독은 고민이 깊었다. 지난 대회 1차전과 2차전을 모두 0-3으로 패해 여자리그팀에 우승을 내줬다. 무엇보다 시니어 선수들이 단 1승을 못했다. 총전적은 0승 12패. 조치훈은 2018년 김채영과 조혜연 선수를 상대해 고배를 마셨고, 2019년은 최정 선수에게 두 번 연속 졌다. 김성래 감독이 미리 조치훈에게 의견을 물었다. 조치훈의 답은 단호했다. “한 판이라도 이길 때까지 한다”였다.
조치훈 9단이 뛰고 있는 시니어바둑리그 KH에너지 팀원들이 국후 복기하고 있다. 사진=사이버오로 제공
2월 22일 오후, 바둑TV스튜디오에서 1차전이 열렸다. 장수영은 허서현에게 졌지만, 강훈이 이유진을 이겼다. 1-1 상황에서 조치훈은 중반 한때 인공지능 승률이 96%까지 갔던 좋은 바둑을 종반 착각으로 역전패했다. 팀도 패했다. 즐기려는 마음으로 참가한 대회에서 무려 5연속 패배. 이번에는 ‘반드시 이기겠다’는 마음으로 나왔는데 또 역전패다.
국후 호텔에 돌아가서도 잠을 못 이루고 침대에 앉아 머리를 치며 자책했다. 불면의 밤을 보내고 23일 오전에 열린 2차전, 다시 상대는 오유진이었다. 조치훈은 백을 잡고 삼삼과 소목, 필승포석을 선보였다. 중반 들어 타개에 올인하는 작전으로 대역전. 결국 과거 전성기 수법으로 대역전승을 거뒀다.
국후 소감을 묻자 “기뻐요. 기쁩니다”라는 말을 연발했다. 조치훈은 “바둑이 약해졌다. 약해지니 바둑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예전엔 세 번 이겨도 한 번 지면 슬펐다. 지금은 두 번 둬서 한 번 이기면 기뻐한다”고 말했다. 이번 챔피언스컵에서 거둔 승리가 그런 1승이었다. 아쉽게 KH에너지 강훈과 장수영 선수가 져서 팀은 패했다. 이번에도 3차전은 없었다. 그래도 조치훈의 얼굴은 밝다. 승패는 이미 잊은 표정이다. “오늘은 술이 빨리 시작되겠네”라며 미소 지었다. 이어진 이날 점심은 자연스럽게 팀 해단식 자리가 되었다.
강훈과 장수영은 보호지명 기간이 다 되어서 올해 팀을 떠나지만, ‘지역연고’ 조치훈은 2020시즌에도 KH에너지에 남기로 했다. 지난 폐막식 인터뷰에서 조치훈이 “조훈현 선배님이 시니어리그에 나오면 진짜 좋잖아요”라고 말하다 잠시 뜸을 들인 뒤, “뭐, 나와 봤자…”라고 웃음 폭탄을 던진 적이 있다. 시니어리그에서 조-조 대결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올해 시니어리그는 7~8월경에 다시 열릴 예정이다.
박주성 객원기자
조치훈 전성기 시절의 타개솜씨로 회심의 1승 2020 대방건설배 ‘시니어 vs 여자 바둑리그’ 챔피언스컵 2차전 ● 오유진 7단 ○ 조치훈 9단 (202수 백불계승) 장면도 1차전과 달리 2차전 주장전에선 거꾸로 오유진이 90% 승률을 찍고도 역전당했다. 계속 유리했던 오유진은 흑1로 가르며 백이 양곤마(세모 표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치훈은 전성기 시절과 같은 타개 솜씨를 보여주며 이 돌을 모두 살렸다. 타개가 완성된 순간 AI승률그래프가 처음으로 백에게 기울었다. 조치훈의 반전 액션이 볼만했다. 바둑이 유리해졌는데도 한 수를 둘 때마다 자신의 머리를 콩콩 쥐어박는다. 갑자기 무릎을 ‘탁’ 치며 소리 없이 한탄한다. 때로는 먼 곳을 쳐다보며 후회하는 표정과 포즈가 재미났다. 박주성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