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대림그룹이 주목을 받고 있다. 대림그룹은 이해욱 대림산업 회장이 사익편취행위로 재판 중인 상황에서 오는 3월 주총을 통해 대림산업의 사내이사 연임 안건을 상정한다. 사진은 대림산업 본사 전경. 사진=박정훈 기자
국민연금은 대림산업 지분 12.24%를 보유하고 있는 2대 주주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대림산업 주총에서 반대표를 행사하지 않았지만, 올해는 전과 다른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참여연대와 민주노총 등이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요구하고 있고 더욱이 이해욱 회장의 경우 기업가치훼손 및 주주권익 침해 이력이 있는 만큼 국민연금을 비롯한 다른 주주들이 반대표를 던질 명분이 생겼다.
과거 운전기사 폭행 사건으로 ‘갑질 논란’을 빚은 이해욱 회장이 최근 사익편취 논란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회장은 본인과 그의 아들 이동훈 씨가 지분 100%를 보유한 개인회사 APD를 통해 그룹 계열사 오라관광(현 글래드호텔리조트) 등으로부터 31억 원 상당의 상표권 수수료를 챙긴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5월 대림산업을 검찰에 고발하고 13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대림산업은 대림그룹 지주사 대림코퍼레이션이 지분 21.67%를 보유하고 있지만, 지난해 대림산업 외국인투자자 지분율이 높아졌다는 점에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방향이 중요하다. 2018년 초 33%가량이었던 대림산업 외국인투자자 지분율이 서서히 증가해 지난해 8월 50%를 넘어섰고, 이후 소폭 줄어들어 지난해 말 48.59%를 기록했다. 더욱이 대림산업은 재무건전성 및 현금보유 수준 등을 고려했을 때 배당지급 여력이 있음에도 불구, 그간 배당성향 및 배당수익률이 동종업계 대비 낮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KCGI가 지주사격인 대림코퍼레이션 지분을 다수 보유한 것 또한 대림그룹 입장에서는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KCGI는 지난해 9월 대림코퍼레이션 지분 32.65%를 매입해 2대 주주로 올라섰다. KCGI가 매입한 지분은 2016년 이준용 명예회장이 외부 공익재단인 통일과나눔재단에 기부한 것이다. 통일과나눔재단은 증여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분을 매각해야 했고, 난항을 겪다 KCGI에 보유 지분 전량을 넘겼다.
대림코퍼레이션의 경우 이해욱 회장(52.3%) 지분을 포함해 오너 일가가 62.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3분의 1에 가까운 지분을 확보한 KCGI가 압박에 나설 경우, 이를 무시하기 쉽지 않다. KCGI는 대림코퍼레이션 2대주주로 올라설 당시 “지배구조 개선펀드의 정신에 입각해 주식을 매입했다”며 “기업가치를 올리기 위한 지배구조 개선을 회사 측에 요구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대림코퍼레이션을 필두로 지주사 체제 전환 혹은 이사회 개혁 등의 요구를 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대림그룹은 2018년 오라관광이 보유한 대림코퍼레이션 지분 매각을 통해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등 지배구조 개선에 나선 바 있지만, 지주사 체제 전환은 아직 미완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오너 일가가 50% 이상을 보유하고 있어 KCGI라 할지라도 한진그룹처럼 공격을 하기는 어렵다”면서도 “경영권을 흔들 수 없겠지만, 2대 주주로서 반대표를 행사하는 등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KCGI가 이미 오너 지배력이 탄탄한 대림코퍼레이션 지분을 매입하며 다양한 수를 계산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지분 매입 직후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해도, 올해 주총 전까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주총을 통해 향후 행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KCGI와 국민연금이 각각 대림코퍼레이션과 대림산업 2대 주주로서 대림그룹을 압박할 경우, 대림그룹은 대림산업 배당을 확대하거나 나아가 지배구조 개선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도 있다. 이런 가운데 KCGI와 이해욱 회장 측의 만남이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KCGI와 대림그룹이 다른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관측에 힘을 실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림그룹 또한 이를 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대림그룹이 지난해 11월 그룹 인사 이후인 12월 말 대림코퍼레이션 경영진 인사를 또 한 번 단행했기 때문. 대림그룹은 지난해 12월 30일 이상기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하고, 이준우 부사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하는 인사를 발표했다. 당시 대림그룹은 이 부회장과 이 부사장에 대해 각각 향후 투명한 기업문화에 주력하고 강도 높은 경영혁신을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대림그룹은 아직 적극적인 움직임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대림그룹 관계자는 “일각에서 알려진 백기사 물색 등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주총을 준비하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대응 계획을 세운 것은 없다”고 전했다. 이어 “국민연금 등이 별다른 입장을 전달한 바 없고, KCGI 또한 마찬가지다. 대림산업 지분을 보유한 외국인 투자자의 경우도 단순 투자 목적으로 확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