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여파로 올여름 도쿄올림픽이 제대로 열릴 수 있을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도쿄올림픽과 패럴림픽 개최까지 남은 날짜를 표시한 광고물. 사진=AP/연합뉴스
최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도쿄올림픽, 코로나19의 희생양 되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타임은 도쿄올림픽의 슬로건인 ‘감동으로 하나가 된다’에 빗대어 “지금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는 건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올림픽이 취소되거나 개최지가 변경될 경우 일본 경제에 주는 타격이 엄청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도 “과학자들이 도쿄올림픽 개최 불가를 주장하고 있다”면서 관련 문제를 보도했다. 이미 겪고 있는 관광객 감소가 올림픽 때까지 이어질 거란 전망이다. 영국에서는 “도쿄가 어렵다면 런던이 올림픽을 개최하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션 베일리 런던시장 후보는 “도쿄올림픽이 취소될 경우 런던이 대체할 수 있다”면서 “우리는 모든 준비가 돼 있다”고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본 정부는 노심초사다. 참가국들의 불안과 걱정을 불식시키느라 정신이 없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2월 21일 기자회견을 열어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적절히 대응한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며 “선수나 관객들에게 안전한 대회가 되도록 개최 준비를 착실히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어떻게든 올림픽만큼은 살려보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세계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영국 공중보건 전문가 존 애슈턴 박사는 도쿄올림픽 조직위를 향해 이렇게 경종을 울렸다. “코로나19 확산 추세를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상태다.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미리 계획을 세워둘 필요가 있다. 어쩌면 도쿄올림픽은 무관중으로 경기를 치러야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대회 중지를 상정하지 않는다는 건 미숙한 대처다.”
세계보건기구(WHO) 서태평양지역 사무국장을 지낸 오미 시게루도 “전염병이 언제 종식할지를 논의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는 “바이러스가 이미 일본 전역에 퍼져있다는 전제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공식발표에 의하면, 도쿄올림픽 성화 채화식은 3월 12일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이뤄진다. 그리스에서 7일간 봉송된 성화는 3월 19일 일본으로 건너갈 예정. 이후 성화는 3월 26일 후쿠시마현에서 출발해 7월 24일까지 일본 전역을 돈다. 일본 성화 봉송 행사에는 약 1만 명이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올림픽 조직위 무토 도시로 사무총장은 “성화 봉송에 문제가 없도록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예정대로 성화 봉송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하시모토 세이코 올림픽 장관은 “가급적 시민들이 성화 봉송 현장에 나오지 말고, TV 시청 등 다른 형태로 참가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는 방안을 각 지역에서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성대하게 치르려 했던 성화 봉송 행사도 최대한 간소하게 치르기로 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하시모토 세이코 도쿄올림픽·패럴림픽 담당 장관, 아카바네 가즈요시 국토교통부 장관,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 엔도 도시아키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 부위원장(왼쪽부터)이 지난해 12월 15일 올림픽 메인스타디움 준공식에 참석했다. 사진=연합뉴스
이처럼 일본 정부는 “대회 개최엔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자국에서조차 의구심을 드러내는 이들이 많다. 스포츠칼럼니스트 고바야시 신야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올림픽인가”라며 일본 정부를 비판했다. 그는 “지금 도쿄올림픽은 모래 위에 쌓은 집이다. 안전한 환경이 마련되지 않으면 중단하는 것이 맞다”고 덧붙였다.
도쿄올림픽의 한 관계자는 “올림픽만 보고 달려왔는데…. 몇 개월을 앞두고 이런 비상사태에 직면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이번만큼은 개최를 미루는 것이 현명하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과거에도 전염병이 올림픽에 영향을 준 사례가 있다. 2016년 브라질 리우올림픽 때는 ‘지카바이러스 감염증’이 유행해 주요 선수들이 줄줄이 불참 선언했다. 세계골프랭킹 1위였던 제이슨 데이(호주), 여자프로테니스 세계랭킹 5위 시모나 할레프(루마니아) 등이 대회에 나오지 않았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올림픽 자체가 취소된 적도 있다. 공교롭게도 1940년 도쿄올림픽과 1944년 런던올림픽이다. 각각 중일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으로 열리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올림픽 강행을 위해 일본 정부가 코로나 확진자를 축소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한다. 크루즈선을 제외한 일본 내 감염자(2월 26일 기준 170명) 수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또한 “검사를 받는 사람이 적다 보니 감염자 수가 적은 것처럼 보이는 것일 뿐 실제로는 넓게 번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견이 많다.
최근 산케이신문이 실시한 2월 여론조사에서 아베 정권 지지율은 1월 조사 때보다 8.4%포인트 떨어진 36.2%로 나타났다. 특히 “대형 크루즈선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집단감염 방역 실패로 지지율에 직격탄을 맞았다”는 분석이다. “허술했던 초동 대처로 대량 감염이라는 참사를 불러왔다”면서 여기저기서 “코로나19 대응이 미덥지 않다”는 일본인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해외에서도 ‘방역 강국’이라는 명성은 옛말이 됐다. 미국 폭스뉴스는 올림픽이 런던으로 변경될 가능성과 함께 “일본 정부가 안일한 대응으로 귀중한 시간을 점점 잃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에 호의적이었던 대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대만 일간지 연합보는 ‘흔들리는 일본 방역신화’라는 기사를 통해 “위생관리와 의료, 감염증 대책 등 오랫동안 모범으로 생각해온 일본이 코로나19 방역에서는 실망스러운 모습뿐”이라고 전했다.
7년 전 아베 총리는 도쿄올림픽 유치 연설에서 원전 피해를 입은 후쿠시마에 대해 ‘언더컨트롤(통제하)’이라고 단언하며 ‘올림픽 개최를 쟁취’했었다. 하지만 세계는 지금,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일본이 통제할 수 있다고 여기지 않는 듯하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도쿄올림픽 취소하면? 직접 경비만 15조 원 날린다 만약 도쿄올림픽이 취소될 경우, 일본은 어느 정도의 피해를 입을까. 이와 관련, 나가하마 도시히로 수석연구원은 “계산하는 것은 꽤 어렵다. 다만 올해 일본 경제가 유일하게 믿고 의지한 것이 도쿄올림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일본은 올림픽을 위해 많은 인프라를 정비해왔다. 일례로 호텔업계는 주요 도시에 8만 개의 객실을 새로 만들고 있고, 도쿄 나리타 국제공항은 내부 시설규모를 2배로 확대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도쿄도가 도로정비 등에 투입한 직접 경비만 1조 4000억 엔(약 15조 원)에 달한다. 그러나 올림픽이 중단되면 불필요한 인프라로 전락하고 만다. 나중에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나가하마 수석연구원은 “현재 올림픽을 개최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봄에도 코로나19가 종식될 기미가 보이지 않을 시 일본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건 불가피하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