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4일 방역작업이 한창인 국회. 사진=국회 사무처 제공
2월 24일 국회는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다. 하윤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는데, 하 회장은 2월 19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했다. 미래통합당은 비상이 걸렸다. 하 회장이 참석한 토론회에 심재철 원내대표를 비롯해 전희경 원내대변인, 곽상도 의원 등이 참석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물론 이들과 접촉한 것으로 알려진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 김무성 의원, 김재원 정책위의장 등이 검진을 받았고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
국회는 폐쇄됐다. 2월 24일 예정됐던 국회 본회의와 상임위원회도 전격 취소됐다. 감염병 여파로 국회가 셧다운 된, 헌정사상 유례 없는 상황이었다. 2월 26일 다시 문을 연 국회는 본회의를 통해 ‘감염병 예방 관리법, 검역법, 의료법 개정안’ 등 이른바 ‘코로나 3법’을 의결했다. 한 미래통합당 의원실 관계자는 “코로나19 전파엔 성역이 없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그러자 국회에선 총선을 미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유세를 비롯한 오프라인 선거 운동이 어려워졌고, 투표소 운용 역시 난관에 부딪힌 까닭에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2월 26일 통화에서 “총선 연기와 관련한 결정은 대통령이 내리게 돼 있다”면서 “대통령이 선거 연기를 결정하면 중앙선관위는 바뀐 선거 일정에 따라 선거를 준비하는 역할만 맡을 뿐”이라고 했다.
2월 21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코로나19 대응 관련 긴급보고를 받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청와대 제공
공직선거법 196조에 따르면 천재지변 기타 부득이한 사유로 인하여 선거를 실시할 수 없거나 실시하지 못한 때 선거를 연기할 수 있다. 결정권을 갖고 있는 대통령이 연기할 선거명과 연기 사유를 관보 등에 공고해야 한다.
물론, 정치권에선 총선 연기와 관련해 부정적인 반응이 주를 이룬다.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은 총선 연기를 공식적으로 검토하고 있지 않다. 2월 23일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기자간담회를 통해 “(총선 연기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심재철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도 “6·25 전쟁 당시(1952년)에도 부산에서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면서 “국민적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정치권이 먼저 총선 연기 이야기를 할 때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2월 24일 기자간담회에서 “입법부 부재상태를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총선을 연기한 적이 없는 것 같다”면서 “총선은 그대로 치를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생각”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흘러나온다. 2월 24일 유성엽 민생당 공동대표는 “총선 연기도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면서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선 어떤 조치라도 취해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 역시 2월 21일 당 최고위원회의 발언을 통해 “중국인 입국을 전면 제한하고, 총선 연기를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내심 총선 연기를 바라는 의원들이 여럿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 의원은 “코로나19가 더 악화되면 현실적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정치적으로 유불리를 따지는 게 아니다. 일각에선 판세가 어려워지니 선거를 미루자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있는데, 선거 연기가 누구에게 득이 될진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설훈 민주당 의원도 2월 24일 BBS 라디오 ‘이상휘의 아침저널’에 출연, “(총선 연기는) 법적으론 가능하지만, 해방 이후 한 번도 없었다”면서도 “현재 조건에선 검토하고 있지 않지만, 상황이 더 악화되면 어떤 상황이 올지 모르니 그때 또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민주당 관계자 다수는 총선 연기론 언급 자체를 꺼리는 모양새다. 한 당직자는 “대통령이 총선 연기를 결정하면 사실상 정권의 방역 실패를 인정하는 꼴로 그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정부·여당이 총선 연기 카드를 꺼낼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했다.
2월 24일 마스크를 착용하고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미래통합당 고위 관계자들. 사진=박은숙 기자
미래통합당은 선거는 예정대로 진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래통합당 복수 관계자는 “선거 연기는 국민적 합의가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연구위원은 “최근 제기되는 총선 연기론의 근거는 있다”면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피해야 하는 상황이라 표심이 정확하게 반영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총선 연기 결정은 대통령의 몫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치권의 합의와 국민들의 동의가 꼭 필요하다”면서 “정치권 관계자들이 각자의 유불리를 따지는 것으로 비치는 행동이 나타날 경우 정치 불신이 가중돼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 신뢰에 금이 갈 수도 있는 문제”라고 했다.
이어 채진원 연구위원은 “(코로나19) 상황이 이렇게 됐다고 해서 투표율이 떨어질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다만 정치권은 어떤 방안이 국민들에게 더 이득이 되는지 면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신중하면서도 종합적인 판단을 내려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여론도 총선 연기에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뉴스1이 여론조사 전문업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2월 24일부터 25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55.7%가 총선 연기론에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감하지 않는다’고 답한 응답자는 39.6%였다(자세한 결과는 엠브레인퍼블릭 홈페이지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2월 28일 국회를 방문해 여·야 대표들을 만난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는 대통령의 회동 제의를 2월 26일 수락했다. 회동에선 코로나19 사태 관련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및 정치권의 초당적 협력 방안이 논의된다. 특히 총선 연기와 관련한 이야기가 오갈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