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증권가 전경. 사진=박은숙 기자
학성고는 울산시 남구에 있는 공립 고등학교로 1969년 개교했다. 당초 사립이었다가 1982년 공립으로 전환했는데, 고교입시가 있던 시절 입학 커트라인이 200만점에 197점에 달할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평준화 이후 위세는 예전만 못하지만, 예전 졸업생들이 사회 곳곳에서 요직을 차지하며 탄탄한 학맥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 출범 후 학성고 출신의 약진은 두드러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대장으로 진급해 지상작전군사령관에 임명된 남영신 장군(학군장교 23기)이다. 기무사령관의 후신인 초대 국군 안보지원사령관으로 있다가 영전한 남영신 대장은 문재인 정부의 군대를 상징하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밀었던 인물을 밀어내면서 화제를 모았던 복두규 대검찰청 사무국장도 학성고 출신이다. 대검 사무국장은 검찰의 ‘창고지기’에 해당하는 자리로, 검사 출신이 아닌 검찰 공무원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직위다.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총장 간의 파워게임에서 학성고 출신 복 사무국장이 총대를 멘 셈이다.
이밖에 4·15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경기도 여주 지역구 최종경선까지 진출한 최재관 전 청와대 농어업정책비서관, 국세청의 핵심 요직을 두루 거친 이동신 부산지방국세청장 역시 학성고 출신이다.
이렇듯 이번 정부에서 ‘잘나가는’ 학성고는 최근 금융권에서도 모습을 드러냈다. 우선 금융당국에 김우찬 금융감독원 감사가 등장했다. 2018년 말, 금융위원회는 김우찬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를 금감원 감사에 임명해 달라고 청와대에 제청했다. 금감원 감사는 줄곧 감사원 출신들이 맡아왔던 자리인 데다, 김 변호사가 문 대통령과 경희대 법학과 동문이라는 점에서 논란을 낳았다.
사법시험 30회 출신인 그는 청주지검, 부산지검, 서울 서부지검 등에서 검사 생활을 했고, 1998년부터 대구지법, 서울고등법원, 서울지법 판사를 지냈다. 금융권 경력이라고는 2015년부터 2017년 3월까지 KB국민은행 사외이사를 지낸 것이 전부였다.
금감원 감사는 직제상 원장에 이어 2인자이며, ‘금융검찰’로 불리는 금감원을 견제하는 막중한 자리다. 금감원장을 빼면 금감원에서 유일하게 금융위원장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점만 봐도 파워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취임을 앞둔 권광석 우리은행장 내정자도 학성고 출신이다. 새마을금고중앙회 신용공제 대표를 맡고 있는 권광석 내정자는 상업은행에 입행한 뒤 우리은행 미국 워싱턴 지점 영업본부장, 무역센터금융센터장, 우리금융지주 홍보실장, 우리은행 대외협력단장 등을 역임했다. 경력만 놓고 보면 은행장을 맡기에 부족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은행장 인선 과정에서 올해 초 청와대 요직으로 승진한 이 아무개 비서관이 호사가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이 비서관은 학성고 출신으로 문재인 정부의 인재풀 역할을 해온 ‘광흥창팀’의 멤버로 알려져 있다. 광흥창팀은 2017년 대선 당시 서울 마포구 광흥창역 부근에 사무실을 내고 문재인 후보를 도왔던 핵심 참모 그룹이다.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윤건영 전 국정상황실장, 한병도 전 정무수석, 오종식 기획비서관, 신동호 연설비서관, 조용우 국정기록비서관, 탁현민 대통령 행사기획자문위원, 김종천 전 의전비서관 등이 줄줄이 청와대에 입성했다. 광흥창팀에서 청와대에 들어가지 인물은 양정철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장과 안영배 한국관광공사 사장 정도다.
현재 금융권에서 학성고 출신은 다른 명문고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한동환 KB국민은행 디지털금융그룹 부행장 겸 KB금융지주 디지털혁신총괄(CDIO) 전무가 학성고를 나왔고, ‘강성부 펀드’로 불리는 KCGI의 김남규 부대표가 학성고 출신이다. 우영웅 전 신한금융지주 부사장도 학성고를 나왔다. 이렇듯 ‘뜨는 인맥’을 뻔히 보면서도 사람 찾기가 쉽지 않다보니 금융권은 학성고 출신 찾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몇 달 전만 해도 조국 전 장관이 졸업한 부산 혜광고 출신을 물색하느라 바빴는데 지금은 울산 학성고가 대세”라면서 “관료나 법조계에는 학성고 출신이 많은 편인데 유독 금융권에서는 ‘희귀종’이라 애를 먹고 있다. 김남규 KCGI 부대표의 경우처럼 법조계에 있는 인물들에게 거액의 연봉을 제시하며 법률자문이나 감사 등으로 스카우트하려는 금융사들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영복 언론인